보호자의 의존성과 힘

지역내일 2010-11-04

알코올의존인 사람을 돕자면 보호자가 힘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힘이란 완력이나 권력, 금력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특히 알코올중독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힘이란 상대를 향한 힘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향한 힘이다. 상대와 상황이 어떠하든 자기를 신뢰하고 자신을 의지하여,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의 운명을 열어가는 힘 말이다.
알코올의존인 사람들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예외 없이 공동의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배우자가 흔하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조차 의존적이어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안정감을 얻고 살아가더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중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몸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정신과 마음과 판단력과 분별력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가족 관계의 맥락에서 자신이 어떻게 역할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술에 취하면 고함지르고 난폭한 남편에게 꼼짝도 못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이 혼돈스러운 가족관계에서 자신은 얼마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보호자가 오히려 과음의 문제가 있는 병약한 남편에게 더 의지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 보이는 수가 흔하다. 자신이 돌보고 지켜야 할 어린 자녀에게 기대어 그 등 뒤로 숨어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상대가 무력한 환자라면서도 가족이니까 서로 의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인 줄로 착각하는 수도 있다. 많은 보호자들이 자신과 관련하여 이러한 의문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이러한 개념조차 없다.
아기를 돌보자면 어머니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잘 돌보지 않으면 아기의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한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나머지 가족들이 나서서 그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힘을 낸다. 과음의 문제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정말 큰 위기이다. 각종 신체 질환과 여러 사고나 자해와 자살과 범법으로 과음의 문제는 사실 치사율이 굉장히 높은 질환이다.
알코올중독은 세상의 어느 다른 질환보다 심각한 병이다. 그런데도 환자인 그에게 자신의 감정적 욕구의 해결과 충족을 기대하고 의지한다면 난센스이다. 환자에게 의지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도와야 하는 보호자라면 말이다. 상대방과 관계없이 적어도 자신의 상황만큼은 자신이 주도하며 살라는 것이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w.alj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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