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식구들과 3년 만에 지리산을 다시 찾았다. 그때는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었고, 이번엔 단풍이 선명하게 붉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계셨고 이번엔 아버지의 부재를 큰 아버지가 채워주셨다.
주렁주렁 달린 어린 아이들 때문에 산행 대열에 끼진 못했지만 이 좋은 가을, 지리산 언저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탈의 행복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단풍과 계곡이 어우러져 가을 정취가 아름다운 삼성궁 입구
오전 9시경, 남자 어른들과 큰 조카들은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코스로 지리산 산행을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과 친정 엄마, 언니들과 예정에는 없었지만 가까운 청학동 삼성궁으로 가기로 했다.
삼성궁 입구 푸른 학을 형상화한 조형물의 생뚱맞은 모습이 웃음이 피식 났지만 매표소 입구를 지나는 산책길 초입부터 우리 일행은 “와~ 멋지다” 감탄사를 쏟아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의 선명한 빛깔과 청명한 계곡의 물빛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삼성궁으로 가는 산길 곳곳에서 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둑과 담과 통로 솟대를 만났다. 누군가 하나하나 쌓아 만들었을 텐데 그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이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신비로운 마력을 지닌 삼성궁은 블랙홀처럼 초입부터 우리를 매료시켰다.
고조선의 ‘소도’를 복원해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수행하는 도량
20여분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어 허름하고 작은 출입문 앞에 도착했다. 출입문 옆 표지만에 “삼성궁은 고조선의 신성불가침 지역인 ‘소도’(삼한시대 때 제사를 지내던 곳)를 복원하여 잃어버린 배달 선도문화를 재조명하고 민족문화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청학동에서 태어난 한풀 선사가 이 곳을 복원했다”고 설명돼 있었다.
삼성궁의 삼성은 환인과 환웅과 단군이다. 삼성궁의 본래 기능은 삼성을 모시고, 한풀 선사를 중심으로 한 수행자들이 모여 선도(禪道)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량이다. 한풀선사(속명 강민주)는 1983년부터 지리산 자락 약 10만 평에 삼성궁을 지어왔다.
이 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일 년에 네 번 개방될 때만 도량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일정한 개방 동선을 만들어 방문객을 맞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여는 개천대제 행사 때 일반인에게 무예도 공개한다.
출입문 옆 징을 세 번 치면 수행중인 도인이 나와 객을 맞는다는 문구가 무색하게 관광객들은 줄지어 서서 ‘칭~칭~’ 징을 울려댔다.
돌로 쌓은 솟대, 태극 문양의 연못 등이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
출입문에 들어서는 순간 삼성궁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와, 깊은 산 중에 이런 곳이 있다니!’
현실 속 세계가 아닌 정말 도인들의 나라, 천혜의 요새 같다고나 할까. 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과 4만 여 기가 넘는다는 돌로 쌓은 높은 솟대들이 호위 군사처럼 늘어서 있었다. 풍수지리를 잘 모르지만 한 눈에 봐도 최고의 명당이다 싶었다. 푸른 학이 날개를 펼쳐 품고 있는 성스러운 곳 같았다.
너른 앞마당엔 주춧돌과 다듬잇돌, 멧돌, 절구통, 옹기독, 장승들이 원과 직선으로 어우러져 있고 그 주위로 연못이 태극 모양으로 어우러져 있어 장대하고 신비로우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삿갓을 쓴 수행자가 관광객들에게 참배와 관람 순서를 안내했다. 돌로 만든 구조물들과 돌층계들이 기하학적 구도로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는 앞 마당을 지나 민족의 국조 환인과 한웅, 단군 영정을 모신 건국전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삼배를 하고 오른쪽 국악원으로 가니 한 도인이 세인들의 관심에는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다.
청학루와 단풍나무 숲을 지나 거북이 모양이 바위가 섬처럼 가운데 놓여 있는 연못을 지나 다시 소박한 삼성궁 출입문 앞에 섰다. 다시 눈길을 돌려 삼성궁을 내려다 보니 한민족 배달민족의 기운이 서린 듯 새삼 감격스러웠다. 깊어가는 가을 우연히 만난 ‘삼성궁’은 푸른 빛이 감도는 신선하고 신성한 새벽 같은 곳이었다.
바로 인접해 있는 도인촌에도 가 보고 싶었지만 일행과 약속한 시간에 쫓겨 서둘러 길을 떠났다. 산행을 마친 일행과 만나 향한 곳은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한우촌으로 유명한 덕산이라는 곳의 ‘보현갈비’라는 식육식당이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부드럽고 고소한 한우 맛에 우리 아이들은 육회도 국수 먹듯 후루룩 먹어댔다. 야들야들 맛있는 차돌박이, 육즙 풍부한 등심, 짜지도 달지도 않고 감칠맛 나는 맛있는 밑반찬, 장아찌, 묵은지 등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음식 맛에 우리는 “정말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는 지리산 붉은 단풍잎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각자의 뇌리에 되새기며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삼성궁 위치 :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터골
홈페이지 : www.bdsj.or.kr
삼성궁 관리사무소 : 055-884-1279
주변 관광지 : 하동 쌍계사, 하동 최참판댁, 산청 대원사, 남사 예담촌 등
박성진 리포터 sj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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