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립합창단과 지역 주민이 이뤄낸 감동의 하모니

지역내일 2010-11-02 (수정 2010-11-02 오후 6:49:20)

“우리 지휘자님은 박칼린 선생과도 안 바꿔요”

얼마 전 TV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모집한 오합지졸 합창단이 박칼린이라는 매력적인 지도자와 함께 엮어낸 감동스토리가 장안의 화제였다. 평소 합창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였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 박칼린의 리더십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우리는 왜 그들의 좌우충돌 하모니 스토리에 빠져든 것일까? 아마도 우리는 여럿이 함께 서로를 배려하고, 마음을 맞추어나가며 작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일에 스스로를 소외시켜 외로웠나보다. TV에만 그런 감동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지역에 아름다운 하모니 스토리가 있는 현장을 다녀왔다. 

애교만점 김윤경 선생님, 박칼린과도 안 바꿔
화요일 오후 수정노인종합복지관 3층 대강당 문을 빠끔히 여니, 어여쁜 여성 한 분이 20여명의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합창을 가르치고 있었다.
“글씨가 깨알 같아서 하나도 안 보이네~”
“어머! 어르신들 죄송해요. 제가 큼직한 글씨로 다시 써온다는 걸 잊었네요. 저도 4학년5반(45세)이 되니까 깜빡깜빡해요. 그래도 이 노래는 다들 아실 거예요. 저 따라 해보세요. ♪나의 살던 고향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악보를 뚫어져라 보면서 선생님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부분은 음이 높아서 힘드시죠? 높은 음이 나올 때는요, 보톡스 맞은 것처럼 미간을 당겨 주셔야 목소리가 올라가요. 가성으로 예쁘게 뽑아주세요~”
수정노인복지관 합창반을 이끄는 선생님은 다름 아닌 성남시립합창단의 김윤경 소프라노. ‘남자의 자격 합창단’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박칼린 선생이 있었다면, 수정노인복지관 합창단원들에게는 애교만점 김윤경 선생이 최고다.
“선생님이 참 친절하시고 잘 가르쳐주셔요. 저 선생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니까. 저런 분 계실 때 빨리 배워놔야지. 내가 자꾸 나이가 드는 게 아까워요.” 합창단원 김광혁(79·성남 산성동) 할머니의 말이다. 

불가능은 없다. 우리도 노래한다!
수정노인복지관 합창반이 모여 노래를 시작하게 된 사연은 TV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합창단 보다 한 수 더 뜬다. 2년 전 성남시립합창단 멘토팀은 수정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합창반을 모집했다. 그러나 당시 합창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성남시립합창단 김지현 멘토팀장은 “노인 분들이 편한 대중가요나 민요에는 관심이 많으신데, 합창은 어렵게 느끼시나 봐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복지관 노인정에서 화투치며 소일하시던 어르신 6~7분을 모셔다놓고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윤경 소프라노가 지난 10월 이곳에 왔을 때도 정말 난감했었다고 한다.
“가곡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대중가요나 가르쳐달라는 분도 계셨고, 쉬운 노래만 대충 하자는 분들도 계셨죠. 과연 이분들과 함께 합창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어요. 악보를 볼 줄 아시는 분도 거의 없고 눈도 침침하셔서 그냥 제 목소리 듣고 외워서 부르셔요.”
하지만 불가능이란 없었다. 김윤경 씨는 크게 욕심내지 않고, 한 소절씩 따라 부르게 지도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면 언젠가는 노래 한 곡을 완성할 수 있겠지’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한 곡씩 연습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6명으로 시작한 합창반이 이제는 23명으로 구성된 어엿한 합창단이 되었다. 이제는 무대에도 꽤나 자주 서는 인기 합창단이다.
복지관 행사는 물론이고 성남시청에서 열리는 각종 기념행사 무대에도 선다. 복정역, 남한산성 역사 공연도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뜻 깊은 공연이었다.
지난 6월에는 성남시청에서 개최된 ‘멘토음악회’에 나가기도 했다. 멘토음악회는 성남시립합창단 멘토팀이 가르치는 관내 초등학교 합창단 8개 팀과 수정노인복지회관 합창단이 참여해 그동안 쌓은 실력을 뽐내는 자리였다. 전문합창집단과 지역주민이 함께 이뤄낸 감동의 하모니였다.  
 오은정 리포터 ohej0622@nate.com

 Mini Interview ‘성남의 박칼린’ 김윤경 씨
“나날이 자신감 갖고  발전하는 모습에 뭉클합니다”

“어르신들께서 저만 보면 예쁜 선생님 오셨다고 반겨주세요. 제가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이렇게 예쁨을 받겠어요. 어떨 땐 저희 친정엄마 같이 푸근하기도 하고, 어떨 땐 애기같이 순수하세요. 본인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제 말 한 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고맙죠.”
현재 성남시립합창단원들 중 13명이 지역사회에서 멘토링에 참여하며 합창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김윤경 소프라노만 유일하게 수정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립합창단원으로서 성남시로부터 월급을 받는데, 저희 공연을 보시는 분들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멋있는 합창연주로 관객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진 재능을 지역주민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조금씩 발전하는 서로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관계 속에서 인간성이 싹트는 것이 비단 합창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윤경 소프라노는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합창으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기쁘다.
“어르신들이 조금씩 알아가면서 재미를 느끼는 모습에 신이 나죠. 처음 무대에 서실 때에는 너무 겁내시더니 갈수록 자신감을 갖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무대에서 내려오실 때 잘하셨다고 칭찬하면 다들 애기들처럼 너무 기뻐하세요. 요즘은 무대에 서실 때 제가 직접 화장도 해드리는데, 할머님들이 그걸 또 그렇게 좋아하셔서 서로 해달라고 줄을 서세요.”
노인합창단이다보니 김윤경 소프라노는 합창지도 시, 여러 가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어르신들께 친숙하면서 어렵지 않은 곳으로 선곡하고, 고음처리나 화음이 어려운 곡은 직접 악보를 바꿔오는 수고도 마다 않는다. 알아보기 편하게 큰 글씨로 써오기도 하고, 영어노래에 한글로 일일이 토를 달아 가르치기도 했다.
“손자들이 우리 할머니가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도 아시고, 영어노래도 부를 줄 아신다며 놀라더래요. 정말 가르친 보람을 느낍니다.”
오은정 리포터 

성남시립합창단의 재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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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유일한 지역연계 멘토링

성남시립합창단에서는 3년 전부터 멘토링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전문인으로서 재능을 지역사회에 기부하고, 합창의 순기능으로 지역주민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취지이다. 성남시립합창단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안한 박화일 단무장은 “합창 멘토링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활동을 하고 있는 시립합창단은 성남이 최초이자 유일하다”며, “화음을 통해 하나가되는 협동심은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정서”라고 강조했다.
박 단무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현재 전국 초·중·고 교내 합창단이 90% 이상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학창시절에는 반대항 합창대회가 큰 행사였잖습니까? 요즘에는 그런 걸 볼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쳐주시는 풍금에 맞춰 노래 부르며 나누던 인간적인 교감은 사라지고 아이들이 컴퓨터와 TV 모니터를 따라 노래 부르면서 정서가 메말라가고 있죠.”
가르쳐 줄 선생님이 없어 노래동아리나 합창부를 만들지 못하는 학교에 전문가를 투입하여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건강한 노래를 되살리는 학교 멘토링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멘토링의 대상을 노인들과 지역의 소외계층에게도 확대하고자 2년 전 시범적으로 수정노인복지회관 합창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우리지역의 다문화가정 합창단을  만들 계획입니다.”
성남시립합창단이 멘토링의 선두주자가 되어 많은 활약을 보이자, 성남시립예술단에 속해있는 시립국악단도 내년부터 지역사회 멘토링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는 전문가집단과 지역사회의 만남. 문화예술을 매개로 서로 마음을 맞추어나가며 작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감동의 하모니가 여기저기에서 울리기를 기대해본다.
오은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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