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1.6명으로 1명대의 출산율을 기록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점점 줄어 현재 1.2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이런 한 자녀 추세로 집집마다 귀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적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자녀교육도 부부가 분담해야하는 상황에서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들의 모습이 두드러져 보인다.
아버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이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되어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얼마 전의 중학생 방화사건처럼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 참여로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잘 하면 약이 되고, 잘못하면 독이 되기도 하는 아빠들의 교육 참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으로 좋고 나쁜 아빠들의 자녀 학습 도우미 사례들을 모아 소개해 본다.
<이렇게 해보세요>
* Good #1 학습 매니저형
학원이나 학교 설명회를 다녀 보면 학부모석 중간 중간에 청일점으로 자리 잡은 아빠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아빠들의 모습이 시선을 끌었지만 최근에는 낯익은 풍경이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을 둔 도곡동의 K씨도 이런 아빠다. K씨는 시간 활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직 종사자로, 시간이 되면 입시 관련 설명회를 듣고 최근 쉴 새 없이 바뀌는 교육 정책의 흐름을 파악해 아이 교육의 방향을 잡고 있다. 또한 학습법 관련 세미나에도 참석해서 주먹구구식이 아닌 전문가적인 소견으로 아이에게 공부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엄마의 말은 잔소리쯤으로 받아들이는 딸 K양도 아빠의 조언에는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K씨는 과목별로 아이에게 적절한 학원을 정하기 위해 학원에서 실시하는 교육과정 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참관수업을 해보고 학원을 결정하기도 한다. K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아빠의 이런 노력을 보고 공부하기 힘들다고 하다가도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을 둔 대치동의 P씨도 K씨 못지않은 학습 매니저다. P씨의 아들 P군은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고 인터넷 강의(이하 ‘인강’)만으로 공부하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원을 다니기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P씨는 어떻게 하면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좋은 학습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강을 선택했다. P씨는 아들이 아직 직접 강의를 선택할 만큼 학습경험이 없는 점을 감안해 본인이 직접 선생님별 맛보기 강의를 들어보고 아들에게 강의를 추천해주고 있다. 또한 월별 학습계획표 작성을 도와주고, 계획표대로 실천했는지 아닌지를 점검한다. P군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학습관리가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덕분에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한다.
* Good #2 맞춤 도우미형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곧잘 했던 딸이었기에 중학생이 된 후 첫 중간고사 결과에 은근히 기대가 컸던 아버지 B씨. 주요과목은 학원에서 대비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과목은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혼자 힘으로 준비해보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과목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은 딸이 사회과목에서 예상치 못한 낮은 점수를 받아 전교 상위권을 놓치고 말았다.
사회과목 공부에 자신감을 잃은 딸을 위해 B씨는 기말고사 대비에 직접 도움을 주기로 했다. 되도록 일찍 퇴근해 시험범위까지 교과서를 미리 읽어 보고 내용을 파악한 후 서술형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문제집에 나와 있는 출제유형도 훑어봤다. 중간고사에서 틀린 문제를 분석해 본 것은 물론이다.
먼저 아이 혼자 충분히 공부를 하도록 한 후 아빠가 책에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점검을 했다. 이해가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출제빈도가 높은 문제는 강조를 하는 식으로 두 번 정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다. 결과는 대성공, 만점을 받았다며 아빠가 최고라는 아이의 문자에 덩달아 성취감이 컸다.
B씨는 유독 사회와 한문과목을 어려워하는 둘째 아이도 같은 식으로 지도해 공부 방법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동안 아이들의 학습에 대해서는 결과만 듣던 아빠였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과정에 함께 참여해 맞춤 학습도우미 역할을 하는 아빠로 톡톡히 인정을 받은 셈이다.
* Good #3 즐기는 도우미형
목동에서 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인 J양은 현재 외고에서도 반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하다. J양이 학교 친구들에 비해 특히 자신 있는 과목은 수학이다. 외고 학생들은 영어는 다 잘하기 때문에 별로 차별화되지 않지만 수학은 다르다고 한다. J양이 이렇게 차별화된 수학실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덕분이다. J양은 중학교 때까지 수학공부를 할 때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수학학원에 다니는 것을 최소화하고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의문을 가졌던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퇴근한 후 물어봐서 해결했다.
J양의 아버지는 수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수학에 자신 있어 하고 수학문제 푸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수학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본인에게도 즐겁다. 아이가 고민하고 힘들어 했던 문제에 대해서는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직접 출제해서 풀어보게도 하고 시중의 문제집에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골라서 풀어보게도 했다. 틀린 문제에 대해서는 풀이과정도 꼼꼼히 확인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원인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었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J양이 그동안 힘들어했던 문제들을 골라서 정리해줌으로써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심지어는 아이 시험기간에 해외 출장 스케줄이라도 잡히면 스케줄을 조절하기도 하고 해외에 있다가고 아이 시험기간에 맞춰 일을 서둘러서 하고 돌아왔다. 아이의 수학성적이 쑥쑥 향상되는 것을 보고 J씨는 더 열심히 즐겁게 교수법을 연구해 가르쳤고, 아이도 아버지의 이런 도움에 늘 감사한다고 한다. J씨는 딸이 외고에 진학한 후로는 평일에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고 주말에는 약점 과목을 학원에서 보충하느라 함께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아쉬워한다.
<이러면 안돼요>
* Bad #1 용두사미형
대치동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Y군의 학교는 강남에서도 수학, 과학 시험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Y군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Y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고 있는 상태에서 주말에 과학까지 학원에 보내려니 안타깝기도 했고, 과학 선행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비슷한 수준의 많은 아이들과 내신수업을 받게 하자니 수업분위기도 걱정이 되었다. 고심 끝에 카이스트 석사 출신인 Y군 아버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Y군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아주 열심이었다.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과서와 참고서를 미리 읽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을 활용해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외국 사이트의 자료까지 보조 자료로 활용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과학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Y군은 주말에 두 시간 정도 아버지와 함께 한 공부로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과학 100점을 받는 등 과학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학원을 다니면서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Y군은 뿌듯했고 아버지의 도움에 고마움을 느꼈다.
문제는 Y군이 2학년이 되면서 부터다. Y군의 아버지는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피곤해지자 주말에 아들을 가르치는 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준비 없이 건성으로 가르치기도 하고 혼자서 먼저 공부한 후 모르는 것만 질문하라고 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버지의 도움은 줄어든 반면 2학년 과학 교과의 내용은 1학년에 비해 어려워져 Y군의 질문도 많아졌다.
중학교 과학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Y군의 아버지는 갑자기 하는 질문에 준비 없이 답변하다보니 잘못된 경우가 종종 있었고, Y군은 이런 아버지의 일관성 없는 가르침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Y군의 2학년 과학 성적은 춤을 추게 되었고, 3학년인 현재 Y군은 인터넷 강의로 부족한 과학 개념을 보충해 성적을 다시 끌어 올리고 있다.
* Bad #2 눈높이 무시형
중학교 2학년인 K군은 주요 과목 모두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지만 성적은 하위권이다. 타성에 젖어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원을 오가지만 마음은 항상 컴퓨터 게임에 가 있다. 학원을 마치면 으레 PC방으로 향한다. 지켜보던 K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학원을 정리하고 직접 가르쳐 보기로 했다.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직접 지도하기 시작한 K군의 어머니는 수학만큼은 자신이 없어 명문대 공대 출신인 K군의 아버지에게 수학만이라도 가르쳐줄 것을 요청했다.
마지못해 아들의 수학 지도를 시작한 K군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쳐 봤지만 이미 뒤져있는 아들의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아이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가르친 것이다. 기초가 부족한 K군에게 기초공사 없이 빌딩을 쌓는 격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제 학년 수학교과 내용을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K군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런 아들을 보며 K군의 아버지는 “어떻게 몇 번씩 설명해도 모르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어라”하는 식으로 화를 내기 일쑤였다. 또한 본인은 잘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머리가 나빠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탓하기 시작했다. 수학을 잘 했던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수학을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점점 부자지간은 원수지간이 되고, 결국은 “누굴 닮아서 이 모양이냐?”라는 말까지 나와 부부싸움으로 까지 번지게 되었다.
아이의 학업수준과 학교의 시험유형 등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아버지의 교육이 아이의 성적향상은 고사하고 좌절만 안겨준 셈이다.
* Bad #3 역효과형
중학생인 아들이 공부를 못한다며 결과만 놓고 늘 불평을 하는 편인 아버지 K씨. 시험기간에도 공부를 봐주기는커녕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는 등 오히려 아들이 공부에 집중하는데 방해만 되기 일쑤였다.
아들이 아빠와 거리를 두게 된 이유는 또 있다. 평소 혼자서 암기과목을 봐주느라 시험기간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엄마는 야무지게 공부를 해내지 못하는 아들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식으로 반복해서 짚어줘야 할지 알기 때문에 소리를 질러가면서도 시험 준비를 같이 해주긴 했다.
그럴 때마다 K씨는 대신 공부를 봐주겠다며 아들 옆에 앉지만 이해력도 떨어지고 학습태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아들을 보면서 이내 엄마보다 더 흥분을 하고 만다. 게다가 당장 시험이 코앞에 닥친 상태인데 그런 아들을 붙잡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빠는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했는지’ 등의 기본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시간만 허비하는 바람에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아이는 아빠와 함께 공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고 점점 아빠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피하게 되었다. 물론 K씨는 여전히 성적만 놓고 아들을 혼내는 역할만 계속하고 있다.
평소 아이의 학습상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섣불리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가 오히려 역효과만 낸 경우이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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