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우리 주변에는 할 일을 잃은 노인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띈다. 누군가는 ‘노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젊음의 잣대로 인생을 잰다면 나이 듦은 죄악이며 늙음은 불필요한 과정이겠지만 노년이야말로 생의 후반에 맞이하는 가장 자유로운 시기이며 그동안 시달리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설파한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필자에게 손수 녹차를 만들어 대접하는 신덕수(64) 이사는 “나이 들수록 할 일이 더 많은데 무슨 소리냐”면서 무슨 일이든 하려고만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녹차의 향기로 아침을 열다
바람이 상쾌한 가을아침에 자택에서 만난 신 이사는 하얀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함박 웃는 모습이 건강해 보여 보는 사람마저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거실에 들어서니 멋스러운 찻잔과 다양한 종류의 차로 장식된 찻상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커피나 다과를 하는 것 보다 차를 준비하면서 함께 마시면 대화도 잘 풀리고 금방 친해질 수 있지요”. 그는 지인들과의 모임은 물론 집에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무조건 이곳으로 안내한다. 녹차의 그윽한 향이 거실 가득 퍼진다. 30여 년 전,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은 대기업에 근무하다 우연한 기회에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엑스선 장치를 비롯해 관계부품 공급과 기타 의료기기의 공급판매, 의료장비의 사후관리 등 방사선 장치 전문업체인 범양메디컬을 인수하게 된 것. 신 이사는 “초창기엔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살면서 꾸려나갔던 터라 어려움이 많았다”며 당시 시부모님도 모시고 있었고, 직원들 점심식사까지 해주면서 갖은 고생을 했지만 당연히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다보니 나이 오십 즈음에 온 몸 구석구석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고된 세월 속에 찾아온 몸의 고장신호
갱년기까지 겹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원인모를 통증과 불면증으로 시달려야 했고 우울증도 동반해 금세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갱년기증세라는 진단과 호르몬 등을 처방해주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선 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등산을 시작하게 된 거지요” 그는 그 후 국내에 있는 산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등산 마니아가 되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산에 올랐고 녹차, 죽염 등을 복용하며 건강이 차츰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단다. 어느 정도 건강에 자신감을 찾은 그는 남편대신 의료기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본인처럼 병원에서조차 알 수 없는 병을 가진 주변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심했다. 그는 이혈침이 건강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건국대학교 평생교육원(이혈아카데미) 귀심리지도사 과정에 등록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동안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수업에 동참했고 이제 곧 수료식을 갖는다고 한다. “귀는 신장과 연결된 선천지본이고, 정기를 모으는 곳이기도 하며 사지 백해를 통한 기맥이기도 합니다. 귀를 보고 건강을 확인하고 그 사람의 심령과 살아온 과거, 현재까지도 파악할 수 있지요”
이혈침 봉사로 건강과 사랑 나눠
신 이사는 우리의 작은 귀에 몸 전체가 들어있으며 귀는 우리 몸의 작은 변화에도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질병의 진행정도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혈침은 핀셋으로 혈자리를 잘 잡은 후 작은 침을 붙이는 것인데 처음에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실습(?)을 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아프던 곳이 치료가 되고 효과가 있어 차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수강생들은 건국대학교 내에서 일반인은 물론 교직원들, 학생들에게 한 달에 한번 봉사활동을 편다. 그리고 건대입구 지하철역에서도 정기적으로 무료 시술을 해주고 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는 “목에 가래가 끓어 고생하시는 어르신, 허리가 아프다고 찾아오는 아주머니, 심한 편두통으로 힘들어하는 새댁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며 이왕 온 김에 녹차 한잔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인생 상담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사업장에서는 세무관계, 물품재고관리, 해외송금 등 전반적인 일을 도맡아 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이혈침을 통한 봉사활동도 열심히 다닌다는 그는 “그래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고 아플 새도 없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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