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년이 아름답다/ 시인 성기조

한국 문단을 이끌어 가는 영원한 문인

지역내일 2010-10-21

‘고향으로 가는 길엔 하늘이 높고 흰 구름이 피어올랐다……’로 이어지는  성기조 시인의 ‘고향으로 가는 길’.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시로 고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고향의 아늑한 의미를 영상처럼 전한다.
이 시의 저자이며 원로 문인인 청하 성기조 시인은 매주 화요일 역삼동 강남문화원에서 현대시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그는 76세의 나이에도 한국문인협회 명예이사장이고 한국문학진흥재단 이사장이며 문예지인 『수필시대』와 『문예운동』의 발행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평생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며 문단이나 교단에서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경륜을 쌓았던 그는 요즘도 한결같이 글을 쓰고 있다. 


스케이트 대신 동화책을 사준 아버지
충남 홍성 태생으로 예산에서 성장한 성기조 시인은 어렸을 때 논두렁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애들을 보고 아버지에게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아버지는 위험하다고 사주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스케이트 대신 동화책을 선물했다. 동화책을 읽은 그는 이런 세상도 있구나 신기해하며 책의 주인공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 세계문학을 탐독한 그는 앞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문학은 배고픈 일이라며 아들에게 법과에 진학해 고시를 보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국문과에 진학했다. 아들의 처사에 실망하고 화가 난 아버지는 학비를 대주지 않았고 서 시인은 고학으로 대학을 마쳐야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문학도로서 청마 유치환선생에게 간절한 편지를 보냈다. 그의 편지를 읽은 유치한 선생은 격려어린 답장을 보냈고 그 인연으로 성기조 시인은 문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지금은 50년도 더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유치환 선생에게 받은 편지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는 젊은 날 천상병, 이형기 시인과 친구로 지내면서 그들과 함께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었다. 


유명하고 유능한 현대문학의 산 증인
글쟁이는 가난하다며 시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아버지의 우려와 달리 시인은 문인이지만 여유 있게 살았다. 교편을 잡으면서 다수의 책과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집필했다. 또한 사직공원과 장충공원에 국내 최초로 국제규격의 수영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70년대 말 반체제문인들이 구속되었을 때 변호사 비용이나 차입금, 생활비 등을 부담하곤 했는데 당시 문단에서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울 수 있고 또 돌보았던 유일무이한 문인이었다.  
평생 문인으로 유명했고 또 경제적인 면에도 유능했던 그를 보면서 1988년에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너는 늙을수록 일이 많아 바쁘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비로소 전에 아들이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혼내고 심하게 반대했던 것을 사과하기도 했다.
성기조 시인은 한국현대 문학의 산증인이다. 그는 강남문화원 화요시반 강좌에서 현대문학 100년의 역사를 생생하고 막힘없이 말한다. 평생 작가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교수로 또 문단의 중요한 정책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일했던 그는 “글은 돈이 될 수 없어 문인은 가난하다”는 세상의 편견을 무너트린 문인의 표본이다. 
또한 그의 시 ‘고향으로 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교육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하면서 그가 평생 소장해온 장서 1만7천권을 고향의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예산캠퍼스)에 기증하기도 했다. 한편 해마다 예산에서 ‘청하 전국 청소년 백일장’을 개최해 젊은이들의 문학적인 소질을 개발하고 또 그들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심어주고 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 노년
그의 하루는 무척 짧다. 매일 새벽 5시에 500m 정도 수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20년간 당뇨가 있지만 건강하게 지낸다. 요즘도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의 글을 쓴다. 그는 원고를 쓸 때 고치지 않아도 될 만큼 글이 잘 써지면 성취감에 환희를 느끼며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짜릿하다”고 청년처럼 말한다.    
그동안 살면서 큰 고비는 없었다는 그는 지금도 충정로 사무실에서  문예지인 『수필시대』와 『문예운동』을 발행한다. 충정로에서도 그는 유명인사다. 충정로 초입에 ‘충정로 사람들’이란 성기조 시인의 시비가 있다. 요즘도 그는 문인들의 권익이나 복지 향상을 위해 문단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1년 내내 할 일이 계획되어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할 일이 많아 바쁘다고 말하는 그는 76세란 나이가 무색하게 젊은 열정을 갖고 지낸다. 평생을 문인으로서 선비다운 강직한 마음으로 살아온 성기조 시인. 그의 수려하고도 다정한 모습에 낭만적인 시인의 풍미가 느껴진다.

이희수리포터naheesoo@dreamwiz.com 




고향으로 가는 길 -성기조


고향으로  가는  길엔
하늘이 높고
흰 구름이  피어 올랐다


흰구름  그 뒤엔
남댕이 푸른  바다가 널렸고
간월도 건너, 안면도
소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보리 누름에
살랑이는 바람은
짙은 고향 냄새를 날리고
느르실  논 두렁엔
개구리도  울었다.


인정이 구수하기
고구마 같은데
콩서리 모닥불에  입술도 검고


고향으로  가는 길엔
피어 오른  구름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인연설  -성기조

어둠이 밀려올 때
눈이 사락사락 내릴 때
바람이 불어올 때
매서운 추위가 몰려올 때
목화 같은 따사로움으로
바위 같은 침묵으로
들꽃 같은 향기로
무르익은 과육으로
개화하는 꽃잎의 부드러운
눈짓으로
눈오는 밤 당신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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