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금표비에 담긴 고양의 아픈 역사, 영상으로 알렸죠”
백양중학교 3학년 송영재 군이 올해 열린 8회 우리역사바로알기 대회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쇄편찬위원회가 해마다 주관하는 이 대회에는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한다. 참가자들은 가문이나 마을의 역사, 인물, 유적, 유물, 풍속 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조사ㆍ연구하거나 이를 영상매체로 형상화 한 작품을 제출한다. 송 군은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연산군 금표비를 주제로 영상작품을 만들었다.
제작기간 다섯 달, 땀방울의 값진 결과로 대상 수상
송 군이 연산군 금표비를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송 군은 다음과 같이 이유를 말했다.
“연산군 금표비는 역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비석입니다. 연산군이 폭정을 했다는 기록을 확인시켜주는 유물이거든요.”
금표비는 왕의 유흥지를 표시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연산군은 조선의 10대 왕으로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수십 명을 살해하는 등 폭정이 극에 달했다. 언론은 마비되었고 왕은 금표 안에서 궁녀들이나 기생들과 함께 매우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연회를 베풀었다. 금표지역은 고양, 파주, 양주, 서울, 인천 일대로 지나치게 넓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고양지역이었다.
“금표 구역 안에 고양 관청이 있었는데 관청을 옮기게 된 거예요. 결국 고양이라는 이름도 없어지고 백성들도 터전을 떠나야 했죠. 고양은 파주 장단지역과 합치게 되었고 4년 정도 역사가 없습니다.”
송 군의 영상에 담긴 인터뷰에서 정동일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양시 문화재위원인 정씨는 처음 연산군 금표비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백성들이 만약 금표 지역으로 들어가면 국가 물건을 훼손한 사람으로 여겨져 처참하게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정 씨가 1994년에 관련 논문을 쓰다 발견한 금표비는 1995년 8월 7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었다.
왕의 폭정을 피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고양 백성들의 아픔이 서린 금표비. 송 군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금표비에 얽힌 이야기를 더 알아보기 위해 대자동 간촌마을을 여러 차례 찾았다.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곳에 있어서 처음에는 찾아 가기도 어려웠다. 그 후 수차례 금표비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글자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료에 담았다. 지역민을 상대로 조사도 벌였다. 제작 기간만 다섯 달. 올해 3월부터 7월 말까지 땀 흘린 결과로 대상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영상으로 우리 역사의 숨은 이야기 널리 알리고 싶어
“연산군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습니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라고 숨길 것만 아니라 그 의미를 살펴서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대회 출전 영상에 담긴 송 군의 마무리 발언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를 찾으면 송 군이 제출한 영상자료를 볼 수 있다. 송 군이 만든 작품은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만든 영상이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높다. 교회 기자단에서 봉사하며 영상 기술을 배운 경험에 역사 지식을 적절히 활용한 결과다. 어릴 때부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아버지, 과학관이나 박물관을 데리고 다닌 어머니가 만들어 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송 군의 담임교사인 안혜령 씨는 “영재는 토론대회나 역사대회에 관심이 많아요. 책도 많이 읽고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학생”이라며 칭찬했다.
그러나 송 군은 혼자서 영상 작품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모아놓은 수많은 자료들을 5분 안팎의 영상물 안에 어떻게 배치할지, 또 어디를 버리고 살릴지도 고민이었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역사 사실을 재미있게 구성하고자 인형극의 형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어요. 교회에서 배운 영상 기술을 역사와 접목해서 제 특기로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이 대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송 군은 한국사 능력검정대회 4급을 딸 만큼 국사에 관심이 높은 학생이다. 그는 결정적인 계기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문화센터에서 한국사 관련 강좌를 들은 일을 꼽았다.
“세이브존 문화센터에서 신기자 선생님한테 <인물로 보는 세계역사>를 배웠어요. 보통은 시대 순이나 정치, 문화 등 순서대로 살펴보는데 인물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중학교 1학년에는 답사반 활동을 하며 박물관, 고적들을 답사했다. 2학년 부터는 방송반 활동을 하고 있다. 송 군은 “역사는 과거에 갇힌 것이 아니라 현실과 접목해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역사 연구원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영상과 역사가 어우러진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송 군이 요즘 공부하고 있다며 보여준 책은 ‘TV구성 다큐멘터리 이렇게 쓴다’였다. 앞으로 국사를 쉽게 풀어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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