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Life, 느리게 사는 것은 아름답다

지역내일 2010-10-19

건강과 환경에 유익한 ‘자연의 빛깔’로 옷 짓는 사람들

 옷장을 가득 채운 옷들, 하지만 막상 입으려고 보면 입을 것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는 유행 따라 충동 구매한 옷들이 몇 년째 입지도 않고 그대로 걸려 있는 옷장, 입지 않으니 결국 싸서 버리는 일이 되풀이된다. ‘빠르게’에 편승해 저지른 옷들은 결국 환경오염문제를 일으키는데 일조를 하는 셈, 최근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공정한 옷 입기 ‘슬로우 패션’이 점차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천연소재를 사용하고, 재활용하고, 생산과정을 윤리적으로 관리하는 ‘슬로우 패션’은 최신유행을 만들어내는 패스트 패션을 거부하고 내 몸에 맞는 ‘세상 유일의 나만의 옷’을 지향한다.
한 땀 한 땀 오랜 시간 공들여 옷 짓기, 그 천마저도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며 천천히 수 십 번 공들여 물들인 천으로 옷을 짓는 사람들. 천연염색으로 ‘슬로우 패션’을 실천하는 주부들을 만났다.

양모 털실을 천연염색한 뜨개질 옷, 대화마을 탁금자 씨
 여고시절부터 손으로 만들어내는데 관심이 많았고 재주도 있었다는 탁금자 씨는 결혼 후에도 손쉽게 사는 것보다 “천천히 정성들여 만드는” 살림살이가 더 좋았다고 한다. 천연염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염색연구가 이종남 선생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천연염색’이란 책을 만나면서부터. 10년 이상 전통염색법을 연구해온 이종남 선생의 지침서는 그를 매료시겼다. “전통 염색법에 현대 감각과 실용성을 더해 오늘날에 맞는 천연 염색으로 승화시켜 초보자라도 손쉽게 천연 염색을 접할 수 있도록 염색과정과 50가지의 다양한 염색법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놓았는데 정말 흥미로웠어요.” 평소 자연의 빛깔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그때부터 이종남 선생을 찾아가 천연염색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둘러보니 집안 곳곳에 십 수 년 그가 “느리고, 천천히, 정성들여” 살아온 흔적들이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1년 여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한 모시조각보가 커튼을 대신하고,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그의 옷은 감물 들여 느리게 지은 옷이다.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미술에 관심도 많고 소질도 있어 자투리 천으로 색감 좋은 옷들을 뚝딱뚝딱 만들어 입던 양재솜씨와 규방공예는 천연염색과 접목, 세상에 하나뿐인 자연의 빛깔을 담은 ‘작품’으로 탄생되곤 한다. 특히 그가 슬로우 패션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양모털실로 뜨개질한 스웨터나 가디건은 2009년 8월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천연염색연구원 주관 〈자연의 빛깔-의 식 주 展〉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예전처럼 양모 실이 타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실꾸리에 감겨 나와 일부러 그 실을 다 풀어내 염색을 하고 다시 실꾸리에 감아 뜨개질을 해야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 참을성과 끈기가 정말 많이 필요했다”고 웃는다. 쪽 꼭두서니 소목 등으로 물들여 슬로우 슬로우 지은 스웨터의 색감, 인공염료로 물들인 색에 비할 수 없이 깊고 은은한 멋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터. 탁금자 씨는 “천연염색으로 지은 옷은 쪽이나 홍화 감 등 재료가 가진 약효가 그대로 우리 몸에 전해져 웰빙 라이프가 따로 없다”고.  덧붙여 그는 천연염색은 철저히 환경 친화적인 참살이라고 말한다. “매염제도 천연의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물들이고 남은 물을 버려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아요. 천연매염제를 사용하면 미생물을 죽이는 효과가 있어 남은 염색물을 그냥 두면 완전히 썩어버리거든요. 그런 후에 버리면 환경에 전혀 해가 없답니다.”
 사실 한 계절 우리 입성을 들여다보면 그리 많은 옷이 필요치 않다. 매번 옷을 사들여도 입는 옷은 마음에 드는 몇 벌만 번갈아 입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결국 그 외의 것들은 필요이상의 과잉인 셈. 언제 물들이고 바느질해 옷을 지어 입느냐고 묻는 것은 그래서 愚問이다. 천천히 느리게 지은 단 몇 벌의 옷만으로도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품위 있게, 멋진 옷차림”이 되기 때문에. 

오래 공들여 지은 옷이 가족건강도 지켜 줘, 천연염색 모임 ‘빛감’ 정임숙 최은숙 씨
 염색연구가 이종남 선생에게서 배움을 같이한 지역 주부들 5명이 함께 만든 ‘빛감’. 그들의 작업공간인 백석동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사동 한 쪽을 뚝 떼어 온 듯한 멋스런 공간에서 두 여인네가 바느질에 여념이 없다. 천연물들인 모시가리개며 앙증맞은 버선, 전통 실꽂이, 가방이며 목도리가 고가구와 어우러진 공간에서 바느질 삼매경에 빠진 이들은 대화동 대화마을 정임숙 씨와 행신동 햇빛마을 최은숙 씨.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의 식 주 어느 한 곳만 ‘슬로우’가 아니라 모두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하긴 어느 한 곳만 ‘슬로우’를 지향한다면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가 될 수 없을 터. 천연염색을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먹성 입성 모두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며 ‘천천히 느리게’ 사는 경우가 많다. 정임숙 씨와 최은숙 씨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은 먹성부터 천연재료로 양념을 만들어 먹는 등 인공적이고 패스트한 것보다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며 살았단다. “원래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염색을 배우면서 규방공예, 바느질 등을 함께 배우게 되더라”는 정임숙 씨. 평범한 듯 예사롭지 않은 그의 입성 또한 모두 천연재료로 물들인 것들. 염색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천연염색이 간강에 좋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더 깊이 빠져 들었다는 그는 “그 때는 바느질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터라 쪽물들인 천으로 토시를 만들어 아토피 있는 아이의 팔에 끼워줬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피부가 말끔해져서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염색을 하고 그 천으로 바느질을 하다보면 마음공부가 따로 없다”는 그는 자연의 빛깔에 매료되어 규방공예며 천연염색, 바느질 등 ‘색감’있는 작업을 10여 년 째 하다 보니 아이들도 옆에서 ‘색깔’과 교감을 나누는 것 같다고 웃는다. “
 결혼 초부터 슬로우 라이프에 더 매력을 느꼈다는 최은숙 씨는 현재 미술을 배우고 있을 정도로 미적감각이 남다르다. “그냥 사면 될 것을 왜 굳이 힘들게 물들이고 바느질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질박하고 투박하면서도 볼수록 품격 있고 빨려드는 멋은 어느 것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그가 〈자연의 빛깔-의 식 주 展〉에서 선보인 쪽, 황토, 소목 등으로 물들여 만든 모빌과 인형들은 여린 아이의 살갗에 닿고 입에 넣어도 걱정할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은은한 색감이 아이의 정서에도 도움을 줘 주목을 받았다. “천연염색은 색감 뿐 아니라 재료가 가진 효능이 그대로 몸에 전해지는 효과가 우리들도 놀랄 정도”라는 그는 특히 여름철 속옷이 쓸리고 땀이 많아 생기는 습진에도 쪽물들인 천이 닿으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고 천연염색예찬론을 펼친다. “처음엔 무슨 이런 걸로 만든 속옷을 입느냐고 타박하던 남편도 이젠 쪽물들인 속옷만 입으려한다”고 웃는 정임숙 씨와 최은숙 씨. 고양시농업기술센터 천연염색반에서 만나 서너 번의 천연염색 강좌를 함께 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진 그들은 이후 십 여 년 째 ‘자연의 빛깔’을 함께 공부하고 작업하는 동료가 됐다. 그들의 꿈은 전통 염색법에 현대 감각과 실용성을 더한 ‘자연의 빛깔’ 작업과 공부를 더 깊게 배워 “느리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란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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