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Life, 느리게 사는 것은 아름답다③

지역내일 2010-10-04

느린 교육으로 아이 키우는 사람들_1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의 행복을 바랄 것입니다. 아이의 행복에 대한 기준은 다양해서 부모가 가진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요.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는 책을 펴낸 소아정신과 교수 신의진 씨는 조기교육을 비판하면서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면 느리게 키워야 한다. 느리게 키우면 엄마까지 행복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느린 교육은 무엇이고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내일신문 Slow Life, 세 번째 이야기로 아이를 느리게 키우는 사람들을 2회에 걸쳐 만나보겠습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홈스쿨링으로 세 아이 키우는 정미희 씨>
홈스쿨링은 획일적 삶에 대한 거부...느린 교육은 원하는 길 찾게 해줘요

 백은서(15), 현서(13), 해서(8) 세 아이를 키우는 정미희 씨는 세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우고 있다. 느리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고 추천을 받아 찾아왔다는 리포터의 말에 그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느린 교육 하려는 사람이 더 바빠요. 어딘가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다 해야 되니까요.”

느린 삶에 가치를 두고 선택한 홈스쿨링
정 씨는 책을 통해 홈스쿨링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했던 것이 홈스쿨링 속에 담겨 있다고 판단,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다. 남편을 따라 간 미국유학길에서였다. 2년간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가르치다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들어와서 느리게 살자고 하며 차 없이 살았어요. 버스정류장까지 20분을 걸어야 하는데 당연히 느리죠. 없어야 느리게 살지 있으면 느리게 되지 않죠. 더 급해지죠.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도농 직거래와 지역살림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 활동, 부모들이 아이들을 함께 모여 가르치는 품앗이 공동체 이든혜윰 활동, 교회 활동을 하며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아이들 키우는 데는 이든혜윰(cafe.naver.com/ddungeschool)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일곱 가정의 아이들이 나이 상관없이 어울려 놀고 배우며 자랐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그림을 가르치고 수학에 재주 있는 엄마는 수학을 가르치면서 네 아이 내 아이 없이 자라며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유치원에 맡겨 놓으면 아이들이 어떤지 알 수 없는데 품앗이 공동체는 엄마들이 다 지켜보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갈등도 겪고요. 공동체가 환상적인 것이 아니고 사사로운 갈등도 있고 지지고 볶는 힘든 일들의 연속이에요.”
그렇게 힘든 데도 홈스쿨링을 쭉 고집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홈스쿨링은 획일적 삶에 대한 거부예요. 다양한 삶의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것이죠. 공동체 삶이 어렵지만 함께 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정씨의 교육철학에 차츰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자신감이 있었죠. 학교 다니지 않고도 자기 삶을 누리면서 얼마든지 좋은 교육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이제는 이 길이 답이라는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아이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들과 딸이 다르고 타고난 성향이 달랐다. “내가 정해놓은 대로 강요하거나 따라오게 할 수 없겠더라고요. 애들에게 맞추고 따라가야지.” 

자신의 세계를 가꾸며 배움에 진지해 지는 느린 교육 홈스쿨링, 한계도 있지만 선택 후회하지 않아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한 큰 딸 은서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엄마의 생각과 상관  없이 아이는 시험도 잘 보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어 한다. 수의학을 전공하려면 이과계열이라 수학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부모와 공동체가 도와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배움의 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힘들어하던 아이는 지금 외고에 가고 싶어 한다. 외국에 살았던 경험으로 영어에 강점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의지만으로 진학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원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대개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자녀가 순응하거나 힘겨워하는 여느 가정의 모습과 퍽 달라 보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감옥처럼 사는 생활인데 아이는 하겠다고 해요. 품앗이를 하면서 자기보다 어린 또래들만 만났던 것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어요. 분명히 학교에 가면 조미료를 쓰는 음식이 나올 테고 채식을 하는 아이가 고기 중심의 학교 음식을 세끼 먹어야 되는데 말이죠.”
고민은 또 있다. 함께 품앗이 교육을 하는 가정들이 느낄 위화감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다시 세상의 틀에 묻어가게 되는 것도 안타깝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이들이 결국 ‘능력이 되는 부모들의 자녀’라는 것도 정 씨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려고 공개강좌를 여는 등 품앗이 공동체의 문턱을 낮추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를 느낀다.
그는 큰 아이가 제도권 고등학교를 선택하더라도 홈스쿨링으로 아이들을 키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의 개인적 성향, 적성, 자질 등의 개별성을 고려하고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 느린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고, 나이가 들수록 배움에 진지하게 임하게 됩니다.”

** 홈스쿨링이란?
 제도화된 학교 교육에 반대하여 가정에서 배우는 것을 말한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뜻에서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합법화된 제도로 5∼17세 어린이와 청소년 중 학교에 전혀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교육받는 경우, 그리고 학교에 가더라도 일주일에 25시간 미만의 수업에만 참석하고 나머지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도 홈스쿨링을 실시하는 가정이 있지만, 현행법상 의무교육으로 규정된 교육 과정을 무시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어 있는 등 제도적 규제가 있다. 

[공동육아와 대안학교 창립 멤버 박종숙 씨]
옳은 길이니 따라오라는 부모 욕심 내려놓고 아이 입장에서 느긋하게 기다렸죠
 “느리게 키우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애가 좀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한 거죠.”
박종숙 씨가 건축 설계사로 맞벌이를 하던 시절, 어린이집에 맡기면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바라보기가 애처로웠다. 즐겁게 지내는 어린이집이 없을까 고민하다 내일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공동육아 준비모임에 들어갔다. 

공동육아로 시작해 초등대안까지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대안교육을 고민하다
 마당이 넓은 농가주택을 구해 공동육아 야호!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아들 찬(18)이 5살 때였다.
“공동육아에 다니고부터 상황이 거꾸로 되는 거예요. 집에 오기 싫어하죠. 일단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신발부터 벗어놓고 풀밭을 헤매고 놀았어요.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 땀에 젖은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아이들은 행복하고 부모들은 아무 걱정 없이 맡길 수 있는 곳이라 좋았다. 3년을 다닌 다음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2000년 이었다.
 “입학식 첫 날 호루라기 불고 줄을 세우는데 30년 전 제가 다닌 학교랑 변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암담했죠.”
 담임교사는 입학 첫 날 주의 사항으로 하면 안 되는 것만 이야기했다.
“엄마 학교에 왜 가야돼?” 아이의 질문 앞에 답할 말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 학교는 당연히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질문이 엄마의 물음으로 되돌아왔다. 박 씨는 공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의 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안에서 현실을 바꾸어야 하지 않냐’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학교는 너무나 강건해 보였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먼저 시작해보자 해서 문을 연 것이 고양자유학교의 전신인 자자학교였다. 맞는 길인지 걱정되고 처음이라 불안했지만 아이들이 행복해 했기에 중학교도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 학교를 선택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나는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는 엄마다. 그때는 그것이 저의 간판이었죠.”
그러나 중등 대안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학교를 거부했다. 밥도 먹기 싫다고 하고 죽고 싶다고 하기까지 했다.
 “지금껏 삶을 지탱해온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밑바닥부터 뒤집히는 느낌이었죠. 경쟁률도 센 곳에 힘들게 보냈더니 얘가 왜 이럴까 생각했죠.”
돌아보니 아이는 엄마의 가치관에 맞추어 살았다. 좋은 것이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엄마 밑에서 숨 쉬지 못하고 살았던 아이는 사춘기가 시작되며 적극적으로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을 만들어 주기에만 급급했고 아이의 마음을 읽기에는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결국 박 씨는 아들 찬이의 자퇴를 결정하고 함께 중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느슨한 분위기에서 생활했다. 늘 맞벌이를 하며 엄마가 같이 하지 못하고 애착 형성이 되지 않아 자존감이 떨어졌던 아이의 마음이 차츰 되돌아 왔다.
 “욕하더라도 함께 뒹굴 수 있는 엄마가 필요했던 거죠.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리라고 아이가 보낸 신호라고 생각해요. 감사한 일이죠.”

엄마가 제시한 길에 순하게 따르던 아이, 사춘기가 되자 모두 거부...아이의 입장으로 돌아가 믿어주면서 관계 회복
 한 학기를 엄마와 함께 보내며 사이가 회복되자 아이는 대안학교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엄마가 정해 준 학교에 대한 거부’였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중등 대안학교를 졸업한 다음 하자센터의 길찾기 과정을 거쳐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아들의 뜻에 따라 고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제 박 씨는 아들이 하는 일에 판단하지 않는다. 오롯이 아이 입장이 되어 그 리듬에 맞추고 기다려 주기만 한다. 게임을 몇 시간 하든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할 뿐 강요는 하지 않는다. 선택은 아이의 몫으로 맡긴다.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하지 않으니 아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나 위주에서 아이 위주로 바뀐 것이죠. 특별히 이 세상에 나온 뜻이 있을 것이라고,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잘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바라 봐요.”
도둑질과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니 아이는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스스로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간당 385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를 바라보고 미래를 고민했다. 시사 문제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이제는 대화를 나누기에 엄마가 지식이 모자랄 정도라고. 공부도 스스로 시작해 학교에서 일등을 하며 장학금을 받을 만큼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세계와 만나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곱게만 자랐으면 재미없었을 텐데 파도 속에 허우적거리며 힘들게 지내고 보니 그게 다 파도타기였다는 걸 알겠네요.”
 박 씨는 연신 아들이 스승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옳은 일에 목숨 걸던 자신이 이렇게 바뀐 데는 불교를 만난 영향이 컸다고 고백했다. 법륜 스님과 함께 하며 사회 참여를 활발히 벌이는 불교 수행모임 ‘정토회’ 활동에도 열심인 그는 아침마다 108배를 올린다. 장독대에서 빌던 옛 엄마의 마음가짐으로 아이에게 안 좋게 대한 것은 없었는지 불편한 게 없었는지 돌아본다. 부모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예전에는 주변을 좋게 해서 거기에 나를 넣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 마음을 정돈하는 게 먼저가 됐어요. 내 안으로 눈을 돌리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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