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담아 올린 두 번째 인생의 맛
쉰을 넘긴 나이에도 이렇게 반짝거릴 수 있는가. 그를 만나고 오는 길, 빛 가루를 뿌린 듯 마음이 다 환해졌다. 마흔 여덟에 요리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푸드스타일리스트 김경아(51) 씨. 세상이 세워 놓은 편견의 벽을 진심어린 손맛으로 녹여내며 두 번째 인생길을 개척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그 속에서 찾은 두 번째 꿈
세운상가에서 절연 전자 부품을 만드는 남편을 도우며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던 김경아 씨는 마흔 여섯에 인생의 고비를 맞게 된다. 친구에게 억대의 사기를 당한 것이다. 친구도 잃고 돈도 잃은 그는 우울증의 수렁에 빠졌다. 그는 그 시절을 ‘나를 잃어버린,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힘들어 하는 엄마를 지켜보던 아들이 군대에 가면서 “엄마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이름을 걸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울림으로 남았다. “내가 꿈꾸던 일, 가장 잘하는 일이 뭘까? 하고 묻기 시작했어요. 요리 테이블 셋팅을 좋아하고 취미로 사진을 배웠던 것이 생각났죠.”
지금이야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많지만 3년 전만 해도 흔치 않은 직업이었다. 고민 끝에 찾아간 곳은 대전의 ‘쿠킹 스튜디오 라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김성희 씨의 지도로 쿠킹클래스, 파티플래너 과정 등을 공부했다. “푸근한 상차림 뿐 아니라 정성, 사람을 상대하는 포용력을 배웠지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기쁜 마음으로 행복하게 배웠지만 케이터링(뷔페)업체에서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나이 때문이었다.
“실습을 많이 나가야 하는데 나이가 있어 뽑히지 않는 거예요. 직접 찾아 갔죠. 나이가 많다고 뽑지 않는 건 불공평하다, 한번 써보시고 안되면 다음에는 안 써도 된다고 말했어요.”
정성과 실력이 통한 것일까. 그 이후로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업체에서는 그를 불러주었다. 컨셉에 맞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필요한 요리를 골라 준비하는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공부를 마치고 아동 요리 자격증을 딴 김 씨는 이제 쿠킹 클래스 ‘안다미로(블로그 jpf1004.blog.me)’를 열었다. 안다미로는 정성을 다하여 그릇에 넘치도록 한 아름 답아 대접한다는 순 우리말이다.
간절함이 열어준 푸드스타일리스트의 길
그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감은 후배가 맡겨준 아기의 돌잔치였다. “언니를 믿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이 말에 보답하기 위해 잠을 설치며 준비했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그 뿐 아닌가.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러나 그는 ‘감정 없는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는 신조로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려낸다. 회사 오프닝, 전시회 오프닝, 생일파티와 와인파티, 단체 피크닉 도시락과 아동요리교실을 진행하며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인천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강의를 맡게 된 일화도 감동적이다. 그는 강사 지원서에 ‘나는 경력이 짧지만 모든 것을 다 해서 가르치겠다’고 썼다. 이를 본 문화의 집 쪽에서는 ‘모든 것을 불문하고 선생님을 선택했다’고 말하며 강좌를 맡겼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이가 맑은 마음으로 세상에 내민 도전장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50대가 되어서는 감사함이 늘었어요. 가진 돈이 다 없어졌지만, 그 일이 없었다면 교만했을지도 모르죠. 그냥 편안하게 살려고 했을지도 몰라요. 힘든 일들을 겪고 나니 삶의 성숙도가 올라간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하는 것도 모두 감사하고 주어진 일 모두가 인생의 행복한 선물 같아요.”
아침에 눈 뜨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손익 계산서 따지지 않고 열정으로 하고 있어요.” 현재 소득은 월 200만원 내외. 그것도 들쑥날쑥 하지만 섣불리 욕심내려고 하지 않는다.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게 안타깝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내 나이에 맞는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어야지 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나를 보고 꿈을 키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도움이 되고 싶어요.”
요리가 주는 삶의 기쁨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낯선 파티문화를 보급하고 싶은 것도 그의 바람이다. 그저 ‘돈 있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사치’ 쯤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인식이 안타깝다. “아파트 단지에 피어난 꽃과 열매 한줌으로도 테이블 세팅을 근사하게 할 수 있어요. 학교 다녀온 아이에게 레몬 뿌려 얼린 물수건을 건네주면 사랑받고 대접받는다고 느끼겠죠.”
그는 아주 작은 정성으로 만드는 삶의 소소한 기쁨들이 행복을 만들어 간다고 믿는다. “놀러가서 주워 온 돌멩이를 데워 고기를 올려보세요. 그게 바로 자연주의 상차림이죠.” 기와에 연잎을 깔고 떡갈비를 올리고, 먹고 난 가리비에 해초 샐러드를 담는 것처럼 소박하면서도 자연의 멋을 살린 밥상에 관심이 많다.
“아이 친구들이 놀러오면 닭다리 튀김에 시리얼 부순 것을 묻혀 주세요. 과일도 그냥 담기 보다 꼬치에 꽂아내면 재미있죠. 통감자를 쪄서 내용물을 긁어 뜨거울 때 우유와 설탕을 넣고 당근과 오이를 얇게 다져 다시 감자에 담고 생크림을 올리면 좋아하면서 잘 먹어요.” 치킨과 감자라면 흔히 주는 간식인데 이렇듯 조리법만 조금 달리 해도 전혀 다른 요리가 된다.
“요즘 엄마들이 쉽게 사서 쉽게 먹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손의 온도가 요리에 닿을 때 맛을 살려 준대요. 그게 바로 손맛이지요.”
아동요리 지도사이기도 한 그의 마음속에는 이렇듯 많은 꿈들이 담겨 있다. 손맛을 살려 정성을 담아 차려내는 그가 차려내는 인생의 두 번째 밥상이 기대된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 *푸드스타일리스트 김경아 씨가 귀띔한 가을철 간편 간식&요리
▶ 꼬마 약밥
재료: 찹쌀 800g, 진간장 3T, 계피 1T, 소금 1t, 참기름 2t, 흑설탕 2C, 밤, 대추, 잣, 각종 견과류
[만드는 법]
1. 찹쌀은 5시간정도 불린 후 물기는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
2. 물3C 과 흑설탕 2C를 섞어 중간 불에서 녹인다.
3. (2)의 재료가 녹으면 찹쌀과 모든 재료를 혼합해서 (2)와 섞은 뒤 압력솥에 앉히고, 꼭지 가 흔들린 후 3분후에 불을 끈다. (처음 흔들릴 때 초보일 경우 불을 약간만 줄인다.)
4. 10분후에 김을 뺀다.
5. 2/3는 네모난 틀에 담아 굳히고 1/3은 캐릭터 모양을 만들어 꽂이를 꽂아 아이들 간식으로 주고 틀에 굳힌 2/3는 포장을 하여 냉동실에 넣어 먹을 때 자연해동해서 먹는다.
▶ 묵은지 등갈비 찌개
재료: 돼지등갈비 토막10대, 묵은지 1/2포기, 멸치국물 6~7컵, 들깨가루 1T, 등갈비삶을재료(생강1쪽, 청주3T, 물(갈비가 잠길정도)) 양념 : 김치국물1/2C, 다진마늘 1T, 고춧가루 1T, 들기름1T
[만드는 법]
1. 등갈비는 1시간정도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2. 생강과 청주를 넣고 물이 끓으면 등갈비를 데쳐낸다.
3. 등갈비 양념을 넣고 잠시 재워둔다.
4. 김치는 속을 털어낸 후 적당히 썰어 식용유를 두르고 볶다가 뚜껑을 덮고 조금 더 익힌다.
5. 볶은 김치에 등갈비와 멸치국물을 넣고 끓이다가 불을 줄여 뭉근하게 1시간쯤 더 끓인다.
6. 들깨가루를 넣어 섞은 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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