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서러운 사람들

지역내일 2010-09-19
"이명박 정부 건설현장 노동자 IMF보다 힘들다"
노동청, ''건설노동자는 노조찾아가는 게 빠르다'' 외면
원청․하청업체, "우린 책임없다" 버티기


"밀린 임금 받으려고 한 달째 건설노동조합과 노동청, 원청과 하청업체를 찾아다니며 해결을 부탁해도 소용이 없심더. 8월 20일 받아야 할 일당을 한 달째 못받고 있으니 추석 쇠는 것은 고사하고 밥도 굶게 될 판입니다."
공공건설현장인 경북 상주시 실내체육관 공사장에서 목수로 일했던 김재구(47․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씨는 일을 하고도 한 달이 지난 이달 19일까지 일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받아야 할 일당은 4일치 44만원이다. 기업주에겐 하루 저녁 소주값이겠지만 김씨에겐 병을 앓고 있는 여동생의 한달 약값이고 노부모를 모셔야할 생계비이다. 김씨는 이 돈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도움을 청하고 뛰어다니느라 한 달째 일도 못하고 있다. 그는 "같이 일하는 팀장으로부터 20일 준다는 약속만 믿고 기다리지만 지켜질 지는 의문"이라며 "추석이 지나도 주지 않으면 상주시청을 찾아가 시장실이라도 점거해야 겠다"고 말했다.
13년째 목수일을 하고 있는 김씨는 팔순의 노부모와 장애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일거리를 찾아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결혼도 못했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조기발주다 4대강 사업이다 떠벌리며 건설경기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IMF때보다 더 살기가 힘들다"며 "조기발주하면서 원청업체에 지급한 선급금 40%는 어디로 갔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목수일을 하는 권오준(47․대구시 달성군)씨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권씨는 경남 고성군의 축협건물 신축현장에 일한 일당을 받지 못해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사무실을 찾아 해결을 호소했다.
목수경력 13년인 권씨는 8월 20일 받아야할 임금을 지난 14일에야 받아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일당이었지만 공갈협박(?)에 애원하듯 호소해 겨우 받아냈다. 권씨가 이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70여일만에 처음 돈을 손에 쥔 셈이다. 권씨는 7월 2일부터 25일동안 일을하고 8월 20일 임금을 받기로 했으나 하도급업체 책임자가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며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원청과 하청업체를 찾아가 항의하며 임금투쟁(?)을 벌였다. 권씨는 "원청업체를 찾아가니 담당과장이 ''임금문제는 현장에서 해결할 일인데 왜 본사로 찾아와 항의 하냐''는 말만 들었다"며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구조가 복잡해 한번 꼬이며 일도 못하고 돈받으러 다니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13평 임대아파트에서 노모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부양하고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올해 권씨가 번 돈은 이번에 받은 290만원을 포함 700만원이 고작이다. 일거리가 없어 4곳의 건설현장에서 일한 대가다.
권씨는 "죽도록 일하고도 돈을 받는 것은 기약할 수 없으니 정상적인 가계를 꾸려 갈 수 없다"며 "건설현장의 유보임금관행(속칭 쓰메끼리:한 두달씩 임금지급을 미루는 건설현장의 관행)은 가정파괴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권씨의 부인은 불안정한 가계를 꾸리지 못하겠다며 오래전 권씨 가족을 떠났다.
전국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적게는 10일, 많게는 60일이 지나서야 일당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건설노조가 7월 20일 전국에서 유보임금 신고센터를 개설해 현재까지 유보임금을 접수 받은 결과다.
건설노조가 전국 104개 건설 사업장의 유보임금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 유보기간은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32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지역은 43일로 가장 길었고 심한 곳은 60일 지나서 임금을 받기도 했다.
박성원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박성원 사무국장은 "발주처, 원청, 하청으로 이어지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줄이도로 제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유보임금을 근절하려면 발주처는 기성 중 임금 부분을 따로 떼 노동자들이 제때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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