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자기 방을 필요로 한다. 자기 방이란 단지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물리적 공간이 아닌 자기 세계를 뜻한다. 이때는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어디를 같이 가려고 해도 따라 가려 하지 않는다. 부모한테 종속되어 규제받는 것이 싫을뿐더러, 자기만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지라도 혼자만의 자기 시간과 경험이 성장에 필요하다. 자기만의 정신세계가 필요한데 이걸 모르고 부모들이 굳이 데리고 가려고 고집한다.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가족 사이에서 경계 없이 살아온 경우가 흔하다. 대가족의 틀 안에서 관계들에 섞여 돌아가는 삶이었다. 이때 자아 경계가 아직 발달하지 않은 더 어린 사람은 당연히 상대방에게 휘둘려 끌려가며 살아간다. 독립적인 한 개체로 존중받고 산 것이 아닌 한,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아도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Y씨는 시골집을 나와 혼자 살며 이제 단주를 시작한지 반 년 쯤 된 직장인이다. 그가 요즘 가장 부담스럽고 괴로운 사람은 독신의 동생이 외롭고 힘들 거라며 불쑥불쑥 찾아와 계속 조언하고 강요하는 형이다.
괴로우면서도 그는 형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듣기만 한다. 이런 답답함과 억압감은 어려서부터 그러하였다. 매사를 강제하는 부모로부터 늘 삶의 영역을 침범 당해왔던 그였다. 자신의 입장과 마음이 어떤지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참고 살아온 터였다.
부모는 물론 형과 누나들도 철없는 어린 막내라고 여기며 존중해야 할 독립적인 개체란 사실을 모른 채 동물적인 애정으로 오로지 보호하려고만 해온 것이었다. 이러한 행태의 기저에는 가족 관계에서 서로간의 경계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계를 알고 느껴야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벽의 유용성은 바로 자기의 영역을 존중받는 것! 인간은 피부라는 담이 있어 이를 경계로 외계와 구분한다. 담장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듯 피부는 몸을 보호한다. 그래서 악수라는 의식으로 정중하게 손을 내밀지 않은 채, 함부로 남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금기다.
인간의 마음도 몸과 마찬가지다. 자아에는 경계가 있어 각자 자신만의 정신세계가 따로 있다. 아무리 어리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이는 존중해야 한다. 이 정신의 담장을 보지 않고 함부로 침범하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뜻이었다 할지라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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