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나이에 시산문집을 출간했다는 흔치 않은 얘기를 듣고 주인공을 만나러 횡성으로 향했다. 어릴 적부터 책이 너무 좋아서 뭐든 보이는 대로 읽었고 정 안되면 벽지로 붙여놓은 신문까지 읽고 또 읽었다는 한규우(70) 씨는 책에 관한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열여섯 무렵 이웃집 동생이 빌려온 ‘이차돈의 사(死)’를 하룻밤만 읽고 주겠다고 다시 빌려온 한규우 씨는 아버지께 들키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에 안방 창문은 담요로 가리고 홀로 등잔불을 밝히고 책에 몰두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벌컥 열리며 등장한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책상위의 책을 모두 쓸어가지고 나가서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이웃집 동생도 빌려온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절절하게 떠오르는 이런 삶의 기억들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 조금씩 써 두었던 글이 아들의 눈에 띄었고, 칠순 기념으로 가족들만 나눠 가지자고 했던 일이 출판사 ‘천년의 시작’을 만나면서 커져버렸다고 한다.
어릴 적 겪어낸 6·25, 남편과의 만남, 38살에 받은 시한부선고, 50이 넘어 막내딸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첩첩산중에서의 삶 등 그녀의 마음에 남아 있던 삶의 모든 기억들이 시산문집 ‘바람할머니, 산골에서 유럽으로 날다’를 통해 되살아났다. 얼마 전 자신의 책을 이웃집 그 동생에게 선물하며 평생 가지고 있던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는 그녀.
“책이 출간되고 나서 남편이 그렇게 책이 좋았으면 말하지 그랬냐고 해요. 지금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쌓아놓고 실컷 읽어요.”
인터뷰의 즐거움을 새삼 깨닫게 해준 가슴 따뜻한 시간이었다.
배진희 리포터 jul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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