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 볼 것 많고 마트대비 2~30% 저렴
짤랑거리는 엿장수 가위 소리에 간간히 섞여 들려오는 뻥튀기는 소리까지. 한가위를 앞둔 전통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잘 마른 빨간 고추는 자루에 가득, 제철 과일들도 좌판 위에 가득, 생선들도 널찍하니 펼쳐놓아 푸짐하고 풍성한 모양새에 마음마저 넉넉해졌다. 생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이 조사한 차례상 비용도 대형마트에선 21만 원, 전통시장은 16만 6천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꼭 값이 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 굽고 지지는 음식 냄새, 흥정하는 목소리,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통 시장에서는 삶의 생생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까. ‘고객님’이 아닌 ‘이웃 사람’으로 부담 없이 다녀갈 수 있는 곳, 우리 지역 전통 시장 세 곳을 둘러보고 시장에만 있는 것들과 시장마다 자랑하는 유명한 집을 찾아보았다.
# 시장에만 있는 것 세 가지
첫 번째. 달인이 있다
“코다리는 이 뱃살을 만져 봐야 돼. 뱃살이 어떻게 건조가 됐는지 보면 좋은 코다리를 고를 수 있지.” (일산 시장에서 만난 해산물 상인)
“100% 도토리묵은 향이 틀려. 전분 가루 섞인 건 냉장고에 넣으면 알지. 껍데기가 딱딱하게 굳어버려 먹지를 못해.” (일산 시장에서 두부와 묵을 파는 김동훈 씨)
전통 시장의 상인들은 고용된 ‘판매원’하고 다르다. 길게는 30년까지 한 물건을 취급하며 ‘달인’ 수준에 오른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고르는 방법에서 손질법까지 달인들이 들려주는 노하우 속에는 알뜰 살림꾼이 갖추어야 하는 지혜들이 쏙쏙 들어있다.
두 번째. 지역 농산물이 있다
“재래시장은 아무래도 돈보다는 물건 위주예요. 손님한테 맞추니까 싱싱한 물건들을 가져와서 팔게 되죠.” (일산 시장에서 만난 과일 상인)
전통 시장의 물건들은 싱싱하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지역농산물. 사는 곳에서 1~2km 근처에서 파는 음식을 먹으면 푸드마일리지(food-mileage)를 낮출 수 있다.
푸드마일리지는 특정 중량의 먹을거리가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이동하게 되는 거리를 계산한 것으로, 산지와 가정의 ‘거리’를 줄이자는 운동의 한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가까운 농장에서 오니 싱싱하고 지역 경제도 살릴 수 있어 좋다. 전통 시장도 원산지 표시를 하고 있으니 꼼꼼히 체크할 것.
세 번째. 情이 있다
“어머니! 햇사과 맛보면 아오리 사기 싫어져요. 맛없으면 공짜! 4개에 5천원인데 지금 사면 5개 드려요!” (일산 시장 ‘푸른유통’ 최재필 씨)
“오늘 사시는 분들한테는 바지락을 서비스로 드려요. 팔려고 떼 온 건데 해감이 너무 잘 돼서 입을 벌렸어. 공짜로 드려야지 팔지는 못해.” (일산시장 ‘연안수산’ 상인)
인터넷 쇼핑이 아무리 편하다 한들 이런 횡재를 꿈이나 꿀까.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변수가 생기고, 그 틈에서 재미난 일들이 벌어진다. 흥정 끝에 덤을 얻을 수도 하고, 운 좋으면 공짜로 받기도 하는 전통 시장에는 정이 있다.
# 우리 동네 전통 시장의 자랑거리
[일산시장]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산 시장은 3, 8일에 오일장이 선다. 역사만큼이나 풍성하고 다양한 품목이 많아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산시장 명물 <중앙식당>
일산에서 순대 좀 먹어 본 사람 치고 중앙식당 순대 한번쯤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10년째 옛날 방식 그대로 순대를 만들어 온 조한순 씨는 야채를 넣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 맛의 비결이라고 자랑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깔끔해서 사랑받는 <연안수산>
“생선이 맛있고 싱싱하니까 자주 와요. 깔끔하게 다듬어 주니까 집에 가서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좋죠.”
단골들이 칭찬하는 연안수산은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린 일산 시장의 명물이다. 사장 오순옥 씨는 도마 옆에 수도꼭지를 두고 생선을 씻으며 손질해준다. 깔끔하게 다듬은 생선을 하나씩 비닐에 포장해 주는 것도 인기의 비결.
대형마트보다 20% 싸요 <푸른유통>
과일이 비싸다고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손님들이 겁을 내서 걱정이라는 최재필 씨. “그래도 명절에는 과일을 사야 제 맛이죠. 전통시장 상품권도 받으니까 싸게 살 수 있어요.” 금촌유통의 과일은 산지 직송으로 싱싱하며 대형 마트보다 2~30% 저렴하다.
[금촌시장]
수수부꾸미를 먹으며 둘러 본 금촌 시장은 소박한 시골 장터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상설 시장 내부는 리모델링하여 간판과 골목이 깔끔하다. 1, 6일에 오일장이 선다.
민물고기 30년, 없는 게 없어요
“자연산 참붕어야. 수험생이 먹으면 눈이 반짝거려.”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민물고기를 파는 노점은 금촌 시장의 자랑거리. 30년간 민물고기를 취급해온 이들은 모란장, 김포장, 안산장, 안 가는 곳이 없단다. 잉어, 장어, 붕어, 자라 등 충청도 서산에서 구해 온 30여 종 민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깔끔한 맛 <맷돌 순두부>
“고소하고 맛있어요. 마트랑 완전히 다른 맛이죠.” 단골들이 추천한 맷돌 순두부는 미리 만들어 오지 않는다. 곽보영 씨는 “미리 만들면 일도 쉽고 편한데 따뜻하게 드시라고 즉석에서 만들어요”라고 말했다. 한모에 2천 5백 원으로 조금 비싸지만 그만큼 값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고소한 냄새 솔솔 <즉석 김구이>
“다들 좋아하니까 가격을 올릴 수가 없네요. 물가가 너무 비싸 가격을 올릴 수가 없어요.” 이옥임 씨가 운영하는 즉석 김구이는 16개들이 김이 1봉지에 2천원, 3봉지에 5천원으로 저렴하다. 요새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며 반기는 눈치다.
[원당시장]
오밀조밀 작은 가게들이 늘어 선 원당 시장은 시장 길 가운데를 따라 특색 있는 노점들이 재미있는 곳이다. 주차가 어려우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엄마, 딸, 사위가 함께 만드는 <순대렐라 떡볶이>
강예자 씨가 딸, 사위와 함께 운영하는 순대렐라 떡볶이는 쫄깃한 떡볶이도 맛있지만 100% 집에서 만드는 튀김으로도 유명하다. “공장물건 납품받아 쓰지 않아요. 모든 재료를 집에서 깨끗이 손질하고 김말이, 고추, 깻잎 튀김도 직접 만들어요. 재료비를 안 아끼는 것이 맛의 비결이죠”
수구레를 아세요? <왕십리 곱창>
장미선, 권재준 부부가 운영하는 왕십리 곱창은 깔끔한 손질과 독특한 양념으로 소문난 곳이다. 원당시장에서 파는 곳이 두 군데 뿐이라는 수구레 볶음도 독특하다. “수구레는 소의 머리 부분 껍질하고 살 사이 부위를 말해요. 체인점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저희가 직접 양념해서 만들어요. 손질도 식당에서 다 해요.”
집에서 직접 만드는 50가지 반찬 <아저씨 반찬>
김현석 씨 부부가 20년간 반찬을 만들어 팔아 유명한 집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까지 남편이 가게를 지키고 아내는 집에서 만든 반찬을 자전거로 실어 나른다. 김 씨의 부인이 개발한 ‘11가지 양념을 넣은 된장 고추’가 올 여름 히트상품이다. “오징어채 맛을 보세요. 정말 부드럽죠. 저희만의 노하우가 있어요.”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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