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원장이 추천하는 책이야기-9.아픈 아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넨 인물이야기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 실천문학
아픈 아이가 있다. 희귀난치질환으로 6년째 투병중이고 2년 전에 골수이식을 받았으나 몇 달 전 재발해 두 번째 골수이식을 앞두고 있다. 원래 고3이 되었어야 할 나이지만 병으로 인한 휴학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다 병원 입원을 앞두고 며칠 전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아주 나온 다음 날,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다더니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나, 체 게바라처럼 살기로 했어요.”
아픈 아이의 가슴에 불을 당긴 이름, 체 게바라.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 할 만큼 이제는 신화가 되어 버린 인물. 그가 누군지 잘 모르는 이도 서점이나 카페, 하다못해 술집에서까지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초상화 속의 낯익은 얼굴. 별이 그려진 검은 베레모, 강렬한 눈빛,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칼, 수염 더부룩한 그 얼굴이 바로 체 게바라다.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고, 의학박사 출신이며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을 성공시켰고, 그 이후 볼리비아 혁명을 실천하다가 1967년, 서른 아홉의 나이에 총살당했다. 의사, 게릴라, 작가, 시인, 혁명군 사령관, 대사, 장관, 한 가정의 아버지 등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임무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고,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다가 그 끝에까지 다다른 인물이기 때문에도 유명하다. 프랑스의 석학 사르트르가 ''21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칭송한 한 것도 그래서일 게다.
하지만 그가 운명 같은 천식을 평생 안고 산 환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기 때부터 시작된 천식으로 학교를 쉬는 일은 다반사였고, 운동을 좋아해 럭비선수로 뛰면서도 천식발작이 오면 누군가 호흡보조기를 갖고 뛰어와야 했던, 천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우곤 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이렇게 천식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책을 읽던 독서열은, 혁명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했고, 그 책들은 세상을 보는 눈과 그 자신의 시각을 탄탄하게 세우는 바탕이 된다. 게다가 청년시절 친구와 함께 남미를 여행했던 경험이며 이후 쿠바혁명에 뛰어들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체험을 통해 다져진 사상과 신념은 결국 행동으로 옮겨졌고 혁명은 성공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의 연설 중에서
평전은 한 인물을 통해 시대를 읽는 작업이다. 우리는 평전을 읽으며 역사를 보는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배우기도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행적과 그 시대를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평전의 저자들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연구를 거듭한다. 이 평전을 쓰기 위해 10년 넘게 자료를 수집했다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장 코르미에는, 체 게바라가 활동했던 지역들을 직접 답사하고 주변 인물들을 숱하게 인터뷰했으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체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낸다. 한편, 체 게바라가 직접 썼던 편지와 일기까지 삽입해 그 유명한 이름 뒤에 감춰진 인간으로서의 참 모습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이 책은 객관적이고도 냉철하게 쓰여진 평전인 동시에 주인공의 인간적인 고뇌와 따듯한 마음결을 만나게 되는 문학작품이기도 하고, 평생 병과 함께 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매순간 마지막이라도 되듯 꽉 찬 생을 살다간 이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에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의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단다.”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고, 자기 생각대로 끝까지 행동한 사람이기 때문에만 아픈 아이가 그 인물을 마음에 품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잘생겼다거나 그의 삶이 멋있어 보여서만도 아닐 것이다. ‘체 게바라처럼 살겠다.’는 게 꼭 체와 같은 혁명가가 되겠다는 말도 물론 아닐 것이다.
늘 병을 안고 살면서도 절망의 나락에 빠지기는커녕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끊임없는 노력, 당시로서는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하던 꿈을 마음에 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끝까지 나아가는 모습,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것과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까지 모두 이 아픈 아이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아닐까. 그 불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꿈과 희망까지 새로이 품게 한 것은 아닐지.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만, 특히 아픈 아이한테는-몸뿐이겠는가, 마음이 아픈 아이도 마찬가지겠지- 그 꿈과 희망이 한결 가치 있고 특별할 것이다. 두 번째 골수이식이 잘 되고 몸도 완쾌되면 가장 먼저 친구들과 캠핑카를 타고 여행부터 떠나리라 마음먹고 있는 이 아이 안에는 이미 희망의 싹이 탄탄히 뿌리내려, 앞으로의 투병과 회복에 좋은 기운을 보태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현실이 암울하고 답답해도 그걸 딛고 앞으로 나아갈 때 저 앞에서 희망이 손짓한다는 변함없는 진실을, 우리는 평전 읽기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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