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경기연극올림피아드에서 공연을 마치고 편히 쉬던 일요일 오후, 정도영(30, 본오동)은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경기연극올림피아드 최우수연기자 상 수상을 축하 합니다.’ 연출가가 보내 온 문자는 그가 받아 본 문자매시지 중 가장 기쁜 내용이었다. 신념은 있었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던 연극의 바다! 그곳에서 마침내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여보, 10년 후 10배 더 벌어다 줄께
그 길은 아주 멀리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안산 시니어클럽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그가 전업 연기인이 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낸 것은 지난 6월. 남들은 회사를 그만둘 때 고심을 한다고 하지만 그는 일말(?)의 갈등 없이 회사를 그만둔다. 이유는 오직 하나. 연기를 하기 위해서! 불러줄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자신이 있었다. 시간은 좀 걸리리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표를 쓰면서 부인에게 “10년 후 10배 더 벌어다 줄께”라고 말했다. 말이 씨가 됐을까? 집에서 이틀 정도 쉬고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연극단체로부터 ‘같이 작업하자’라는 러브콜을 받았다. 한 달여 정도를 연습하고 공연을 끝내자 이번에는 지인으로부터 ‘같이 작업하자’는 출연 제의를 받았다.
팀은 단체 금상, 나는 최우수연기자상
그가 최우수연기자 상을 수상한 경기연극 올림피아드에는 경기도내 시,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30개 연극단체가 참여 했다. 안산팀은 ‘색동 가죽신’이라는 초연 창작극을 가지고 출전 했다. 내용은 6.25전쟁으로 실향민이 된 할머니의 일상과 주변인들 이야기. 그는 치매기가 있는 실향민 할머니의 색동 가죽신을 닦아주고 할머니를 살펴주는 구두닦이 나광삼역을 맡았다. ‘전직이 구두닦는 사람이 아니었을까?’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두를 닦았던 것이 인상적. 그만큼 그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무대 전체에 흘렀다. ‘수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살짝 하기는 했지만 막상 최우수연기자상을 타게 됐다는 말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 깜박 거리는 문자를 한동안 뚫어지게 보았다고 한다. ‘내가 150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 최우수상을 타다니...’게다가 팀이 금상이라는 단체상 까지 타 기쁨이 두 배가 되었다.
언제나 투입 가능한 준비된 배우 되고 싶어
결혼 전 그는 대학로에서 무명 개그맨 생활을 하며 연기의 기본을 다지고 있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거의 개그맨 데뷔 1주일 전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후 안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부인이 너무 힘들어해 데뷔를 포기하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 왔다. 하지만 개 버릇 누구 못 준다고 안산에 와 착실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어디 무대에 설 자리 없나’ 기웃거렸다. 마침 눈에 잡힌 것이 문예당의 직장인 연극반 모집. 한걸음에 달려가 접수를 하고 워크샵 작품으로 ‘우동 한 그릇’과 ‘아빠와 돈가스’를 올렸다. 부침이 심한 직장인 연극반을 3년 넘게 끌고 온 것도 그의 열정의 소산. ‘도덕적 도둑’과 ‘리투아니아’ 두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도 하며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가로도 인정을 받았다. 설 무대도 없어 보이던 안산이 그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이 된 것이다. 그의 꿈은 어떤 역이나 투입되면 바로 연기가 가능한 준비된 배우가 되는 것. 인터뷰 말미에 그의 휴대폰이 반짝 거렸다. 쑥스러운 듯 리포터에게 보여준 휴대폰에는 ‘최우수연기 배우! 지금 모해?’라는 부인의 메시지.‘최우수연기 배우, 지금 신문사 인터뷰 중이야’라는 문자를 보내며 그는 흥얼거렸다.
남양숙 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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