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무조건적이고 평등한 사랑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도 분명 있다는 데 공감하는 부모들도 많을 터. 내 배 아파 낳았지만 유독 정이 가는 아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 입장에서 부모의 그럴듯한 주장은 분명 ‘편애’. 자녀를 왜곡된 경쟁으로 내모는 편애가 아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6학년 정은(가명)이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과 비교를 일삼으며 편애하는 엄마 때문에 괴롭다. 동생이 밥을 먹다 일부러 물을 쏟고 숟가락을 자꾸 식탁 밑으로 떨어뜨려 야단을 쳤는데, 동생이 울자 다짜고짜 “동생 하나 돌보지 못한다”며 야단을 맞았다고. 아무리 억울함을 설명해도 엄마는 나이 많은 누나가 참아야 한다고 주장. 늘 어떤 사건이든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엄마 때문에 동생의 모든 점이 미워진다고.
남매를 둔 오정희 (가명)씨네 가족. 아내는 아들, 남편은 딸 편에 서서 지지를 하는 케이스다. 각자 지지하는 자녀가 명확하다 보니 자녀들도 이런 분위기를 익숙하게 받아들여 딸은 엄마의 편애를, 아들은 아빠의 편애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삼남매 둘째인 중3 형석(가명)이는 공부 잘하는 누나와 운동 잘하는 동생 사이에서 갈 곳이 없다. 겉으로는 부모님이 “형석이도 잘하는 게 있겠지”라고 응원해주지만, 누나와 동생을 향해 보내는 사랑의 눈빛을 자신은 느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부모님은 절대 편애가 아니라고 하지만, 형석이는 누나와 동생 앞에서 언제나 주눅이 든다.
중2 현정(가명)이 엄마는 대학생인 오빠 걱정밖에 없다. 여자보다 남자가 취업이 어렵고 세상 살기 힘들다는 게 엄마의 변. 자신은 중학생인데 혼자 밥 차려 먹으라는 일이 잦지만, 오빠는 대학생인데도 열일 제쳐두고 정성껏 식탁을 차려주는 엄마. 남녀 차별이라고 항변해도 묵묵부답이다.
엄마의 70퍼센트가 자녀 편애해
위 사례처럼 친자녀 중에서도 어느 한 명만 아끼고 사랑한 엄마 밑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훗날 중년이 됐을 때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엄마의 사랑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마음에 상처가 된다는 것. 미국 코넬대 칼 필머 교수팀은 2명 이상 자녀를 둔 60~70대 엄마 275명과 그들의 자녀 671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엄마의 70퍼센트는 어느 한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더 친근감을 느꼈고, 자녀의 15퍼센트만 “우리 엄마는 모두 똑같이 사랑하셨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자녀를 편애하는 부모의 심리는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오산아동발달센터 조기연 원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부모의 기대치에 따른 편애입니다. 특히 첫째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강해 강박적 사고가 작용하고, 자녀를 잘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기대 심리는 아동의 문제점만 보는 경우가 많죠. 이런 부모는 둘째를 출산하는 시점에서 심리적으로 긴장을 늦추다 보면 첫째 아이의 기대치보다 낮아지기 때문에 둘째 아이의 행동이 마냥 예쁘게만 보여 편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함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 시댁이나 처가와 갈등이 심할 때 편애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자녀 중에 배우자를 닮은 아이가 있을 때 그 아이에게 배우자가 투사되어 아이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배우자를 본다는 것.
조 원장은 편애 당사자인 부모가 어릴 때 양육 과정에서 편애를 경험을 했을 때 자신의 자녀를 편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강박적 사고가 되고, 실제로는 반대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동기간 질투 장애 유발,
상실감 채워주는 게 우선
“편애를 받고 자란 아이의 가장 큰 심각성은 편애의 부작용으로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양상을 띤다는 겁니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동기간 질투 장애로 피해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 가장 흔한 부작용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지나친 경쟁심으로 형제간 잦은 싸움은 물론 그로 인한 상실감, 반복되는 부모의 편애로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갈 공산이 크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런 내제된 감정이 어느 순간 폭발했을 때 어떤 양상으로 표출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 “우울증은 상실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편애는 단순히 자격지심이나 자신감 결여, 질투심으로 간단하게 부작용을 설명할 수 없어요. 인생의 의미 자체에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손 원장은 편애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채워주는 게 치유의 출발이라고 강조한다. 부모가 편애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우선. 동시에 부모의 양육 태도와 행동이 변해야 치료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 만큼 아이와 함께 부모 치료도 필수적이다.
“미술 심리 치료를 하다 보면 편애를 받은 아이들은 가족화를 그릴 때 자신만 빼놓는 경우가 있어요. 열등감에서 자기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거죠.”
조 원장은 편애로 상처 받은 아이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일깨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편애의 상실감은 치유될 수 있다고. 시장이나 서점 나들이를 함께 하면서 아이 중심으로 다양한 대화를 하는 것도 효과적인데, 이때 다른 형제나 자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물이다.
심정민 리포터 rerquest0863@naver.com
도움말 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
조기연 원장(오산아동발달센터)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
“편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편애는 자녀의 일생에 가장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모들은 대부분 입으로는 편애를 부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편애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아주 작은 편애와 비교하는 말이 아이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심각히 고려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편애하는 원인부터 찾으세요. 그리고 작은 말투 하나, 행동부터 고쳐나가는 게 중요해요.” 손 원장은 앞서 언급된 네가지 사례에 대한 간단한 해법도 함께 제시한다.
“사례 1의 정은이는 어른이 아니에요. 여섯 살 터울은 엄마가 만든 거지 정은이가 만든 터울이 아니죠.” 정은이 사례는 우선 동생을 돌보고 맡기는 것을 멈추라고 조언한다. 엄마와 아빠가 편을 갈라 남매를 편애하는 사례 2는 가정불화가 일어나기 가장 쉬운 케이스. 가족 전체가 함께 하는 활동을 많이 하고, 남편과 아들 vs. 아내와 딸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사례 3의 형석이는 칭찬이 약이 될 수 있다고. 장점을 10개 이상 발견해 일주일 내내 칭찬하고, 형석이 앞에서 누나와 동생의 잘하는 점을 부각하는 언행을 삼가는 게 중요하다. 사례 4 현정네 사례는 전통적인 남녀 차별. 먼저 현정이에게 당당하게 항변할 것을 권하고, 엄마는 노년이 된 부모를 더 잘 챙기는 자식은 아들보다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손 원장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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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정은(가명)이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과 비교를 일삼으며 편애하는 엄마 때문에 괴롭다. 동생이 밥을 먹다 일부러 물을 쏟고 숟가락을 자꾸 식탁 밑으로 떨어뜨려 야단을 쳤는데, 동생이 울자 다짜고짜 “동생 하나 돌보지 못한다”며 야단을 맞았다고. 아무리 억울함을 설명해도 엄마는 나이 많은 누나가 참아야 한다고 주장. 늘 어떤 사건이든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엄마 때문에 동생의 모든 점이 미워진다고.
남매를 둔 오정희 (가명)씨네 가족. 아내는 아들, 남편은 딸 편에 서서 지지를 하는 케이스다. 각자 지지하는 자녀가 명확하다 보니 자녀들도 이런 분위기를 익숙하게 받아들여 딸은 엄마의 편애를, 아들은 아빠의 편애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삼남매 둘째인 중3 형석(가명)이는 공부 잘하는 누나와 운동 잘하는 동생 사이에서 갈 곳이 없다. 겉으로는 부모님이 “형석이도 잘하는 게 있겠지”라고 응원해주지만, 누나와 동생을 향해 보내는 사랑의 눈빛을 자신은 느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부모님은 절대 편애가 아니라고 하지만, 형석이는 누나와 동생 앞에서 언제나 주눅이 든다.
중2 현정(가명)이 엄마는 대학생인 오빠 걱정밖에 없다. 여자보다 남자가 취업이 어렵고 세상 살기 힘들다는 게 엄마의 변. 자신은 중학생인데 혼자 밥 차려 먹으라는 일이 잦지만, 오빠는 대학생인데도 열일 제쳐두고 정성껏 식탁을 차려주는 엄마. 남녀 차별이라고 항변해도 묵묵부답이다.
엄마의 70퍼센트가 자녀 편애해
위 사례처럼 친자녀 중에서도 어느 한 명만 아끼고 사랑한 엄마 밑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훗날 중년이 됐을 때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엄마의 사랑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마음에 상처가 된다는 것. 미국 코넬대 칼 필머 교수팀은 2명 이상 자녀를 둔 60~70대 엄마 275명과 그들의 자녀 671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엄마의 70퍼센트는 어느 한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더 친근감을 느꼈고, 자녀의 15퍼센트만 “우리 엄마는 모두 똑같이 사랑하셨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자녀를 편애하는 부모의 심리는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오산아동발달센터 조기연 원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부모의 기대치에 따른 편애입니다. 특히 첫째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강해 강박적 사고가 작용하고, 자녀를 잘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기대 심리는 아동의 문제점만 보는 경우가 많죠. 이런 부모는 둘째를 출산하는 시점에서 심리적으로 긴장을 늦추다 보면 첫째 아이의 기대치보다 낮아지기 때문에 둘째 아이의 행동이 마냥 예쁘게만 보여 편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함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 시댁이나 처가와 갈등이 심할 때 편애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자녀 중에 배우자를 닮은 아이가 있을 때 그 아이에게 배우자가 투사되어 아이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배우자를 본다는 것.
조 원장은 편애 당사자인 부모가 어릴 때 양육 과정에서 편애를 경험을 했을 때 자신의 자녀를 편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강박적 사고가 되고, 실제로는 반대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동기간 질투 장애 유발,
상실감 채워주는 게 우선
“편애를 받고 자란 아이의 가장 큰 심각성은 편애의 부작용으로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양상을 띤다는 겁니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동기간 질투 장애로 피해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 가장 흔한 부작용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지나친 경쟁심으로 형제간 잦은 싸움은 물론 그로 인한 상실감, 반복되는 부모의 편애로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갈 공산이 크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런 내제된 감정이 어느 순간 폭발했을 때 어떤 양상으로 표출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 “우울증은 상실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편애는 단순히 자격지심이나 자신감 결여, 질투심으로 간단하게 부작용을 설명할 수 없어요. 인생의 의미 자체에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손 원장은 편애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채워주는 게 치유의 출발이라고 강조한다. 부모가 편애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우선. 동시에 부모의 양육 태도와 행동이 변해야 치료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 만큼 아이와 함께 부모 치료도 필수적이다.
“미술 심리 치료를 하다 보면 편애를 받은 아이들은 가족화를 그릴 때 자신만 빼놓는 경우가 있어요. 열등감에서 자기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거죠.”
조 원장은 편애로 상처 받은 아이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일깨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편애의 상실감은 치유될 수 있다고. 시장이나 서점 나들이를 함께 하면서 아이 중심으로 다양한 대화를 하는 것도 효과적인데, 이때 다른 형제나 자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물이다.
심정민 리포터 rerquest0863@naver.com
도움말 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
조기연 원장(오산아동발달센터)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
“편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편애는 자녀의 일생에 가장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모들은 대부분 입으로는 편애를 부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편애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아주 작은 편애와 비교하는 말이 아이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심각히 고려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편애하는 원인부터 찾으세요. 그리고 작은 말투 하나, 행동부터 고쳐나가는 게 중요해요.” 손 원장은 앞서 언급된 네가지 사례에 대한 간단한 해법도 함께 제시한다.
“사례 1의 정은이는 어른이 아니에요. 여섯 살 터울은 엄마가 만든 거지 정은이가 만든 터울이 아니죠.” 정은이 사례는 우선 동생을 돌보고 맡기는 것을 멈추라고 조언한다. 엄마와 아빠가 편을 갈라 남매를 편애하는 사례 2는 가정불화가 일어나기 가장 쉬운 케이스. 가족 전체가 함께 하는 활동을 많이 하고, 남편과 아들 vs. 아내와 딸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사례 3의 형석이는 칭찬이 약이 될 수 있다고. 장점을 10개 이상 발견해 일주일 내내 칭찬하고, 형석이 앞에서 누나와 동생의 잘하는 점을 부각하는 언행을 삼가는 게 중요하다. 사례 4 현정네 사례는 전통적인 남녀 차별. 먼저 현정이에게 당당하게 항변할 것을 권하고, 엄마는 노년이 된 부모를 더 잘 챙기는 자식은 아들보다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손 원장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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