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재미중 일하는 재미가 최고죠!!
인터뷰를 하기로 한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카페 아지오에 들어서는 어르신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무더운 날씨에도 중절모까지 올 블랙으로 맞춰 입고 들어서는 이기철 어르신, 옷차림에서부터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 느껴진다. 올해 나이 일흔 다섯, 하지만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자신감과 활기에 넘치는 멋진 실버. 덕양노인종합복지관 노인일자리사업 중 하나인 ‘신바람지하철택배’ 이기철 어르신을 만났다.
재산이 많던 적던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행복
인터뷰 중간 중간 어르신을 찾는 핸드폰 벨소리가 바쁘다. 유독 어르신만을 찾는 단골고객의 전화란다. 이기철 어르신이 신바람지하철택배 일을 한 지 7년 째, 이제 척 하면 어디로 배송을 해야 할 것인지 눈 감고도 찾아갈 정도로 익숙한 단골고객도 꽤 된다는 어르신.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다보니 어느 사이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웃는다.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갖는 것이 노년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놀다보면 노는 재미도 잘 모르지만 열심히 일하고 나서 쨤쨤이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잖아요. 그리고 내가 아직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뿌듯하죠. 난 노년의 행복이 그냥 安樂아니라 열심히 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성품 탓인지 어르신은 지금까지 작은 일이던 큰일이던 꾸준히 일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고. 건설관련 일을 했다는 어르신은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근무할 때 주변에 노인복지관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노인정만 있는 줄 알다가 노인복지관란 것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데 또 그곳에 노인들을 위한 유용한 교육프로그램들이 많더라고요. 그래 나중에 나도 퇴직 후 복지관을 이용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퇴직 후 명동 한복판에서 전단지 배포 일을 했었다는 어르신은 “당시 어떤 이는 아직까지 뭐 이런 일을 하느냐는 이도 있었지만 이런 일을 하실 양반이 아닌 것 같은데 일을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심지어 존경스럽다는 이들이 많았어요, 그때 느꼈죠. 노년에도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좋은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을...”
그러다 92년 고양시 덕양구로 이사를 오면서 마침 집 가까이에 있던 덕양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고. 덕양노인종합복지관이 원당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 어르신이 복지관과 인연을 맺은 지도 17~8년 째. 그동안 복지관의 이런저런 노인일자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렇다고 일에 욕심내면 안 돼, 즐겁게 즐기면서 일하기
행복한 노년? 어르신의 지론은 재산이 많던 적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역량이 닿는 일을 신나게 즐기면서 사는 삶이라고 한다. 현재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신바람지하철택배에서 일하는 어르신은 모두 18명, 이기철 어르신은 “수익금의 10%를 적립해 상해보험도 들고 영업활동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는 등 작은 규모지만 여느 기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전한다.
신바람택배는 지하철을 이용해 당일배송으로 꽃바구니, 작은 화분, 생일선물, 서류, 샘플, 원고, 도면, 사진, 민원서류 발급 대행 배송 등 보통 ‘퀵서비스’가 하는 일들을 주로 담당한다. 하지만 배송료는 퀵서비스의 절반 수준. 여기에 정확하고 꼼꼼한 어르신들의 서비스로 지금은 보험회사나 치과기공소 등 단골도 꽤 많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항은 아니었다. “처음 멋모르고 은행이나 보험회사, 관공서 등 영업을 다녔어요. 서류배송이 많으리라 생각했었지. 하지만 팩스나 인터넷으로 서류가 오가는 걸 헤아리지 못한데다 또 퀵서비스를 이용한다 해도 단골들이 이미 다 있더라고요.” 또 처음엔 꽃집영업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화분 배달이 어렵더라고 털어놓는다. “화분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꼼짝없이 바로 들고 가야 하는 일이 보통 어렵지 않아요. 이젠 신참들이 멋모르고 꽃 배달을 자처하고 나서면 슬그머니 맡겨버리지.(웃음)”
초기에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복지관 담당직원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어르신들의 발품으로 차츰 ‘신바람택배’를 찾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어르신은 지금도 배송주문이 없는 시간엔 영업활동으로 바쁘다. 그 덕분에 어르신만을 찾는 단골고객이 많다고. 사무실에서 배송일이 맡겨지기만 기다리는 것보다 자기가 찾아나서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인기 배송기사로서의 노하우를 살짝 털어놓는다.
하지만 무조건 일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또 어르신의 철칙. “노년에 무슨 돈 욕심을 내나, 처음부터 무리해서 돈 욕심을 내는 이들도 있는데 그러다보면 오래 못가요. 자기 컨디션 조절하면서 일을 즐겨야지. 일에 얽매이면 노년에 견딜 재간이 있겠소?” 물론 돈을 벌어 용돈도 쓰고 식구들에게 생색도 낼 수 있어 뿌듯하지만 그보다 규칙적인 출퇴근으로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사는 요즘, 행복지수 100%라고 한다.
다급하고 중요한 일이 택배서비스로 성사됐을 때 보람 느껴
신바람 활동을 하면서 보람과 긍지를 느꼈던 에피소드도 많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인천공항 내 유명 커피숍 오픈에 맞춰 간판디자인에 쓸 시트지를 배송했던 일. 오픈을 앞둔 커피숍에서 유리창을 장식할 시트지를 잘못 계산해 길이가 부족한 것을 오픈 시간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알게 됐던 것. 수서에 있는 시트지 매장에서 인천공항까지 촌각이 급한 시간 내에 배송해줘 무사히 오픈식을 치를 수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뿌듯하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올 1월 1일 전국적으로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 날의 에피소드. 여행사로부터 여권을 받아 공항에서 건네주기로 한 고객이 청주에서 눈 때문에 3시간이나 늦게 왔지만 끝까지 기다렸다 무사히 여권을 전해줬던 일이 기억난다고 한다. 중요한 일로 외국출장을 가야했던 그 고객은 기약 없이 공항에서 기다려 준 어르신 덕분에 무사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고. 다급하고 중요한 일이 자신 때문에 성사됐을 때 그보다 더 보람되고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지하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덕분에 지하철노선도는 꿰뚫고 있다며 환하게 웃는 어르신.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멋진 실버, 영원한 현역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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