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아이들 가르치며 저희가 더 많이 배워요
지난 주말 아침. 경기도 광주 오포읍에 위치한 ABR(아브라건설 회장 강동우) 앞마당에는 은빛 에어돔 안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전통가락 소리에 온 마을이 흥겨움에 빠져들었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흰색 티를 맞춰 입은 학생들이 밝은 표정으로 관객들을 안내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날 행사는 성남지역 다문화가정의 학습 봉사를 맡고 있는 학생 동아리 ‘분당 민들레’와 다문화 가정의 야외학습 및 문화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 밴드보컬과 민속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는 물론 도예체험, 가족대항 윷놀이, 경단 만들기, 장기자랑 등 알찬 내용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분당 민들레’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월 2회 이주민센터에서 한글 영어 가르쳐
“아! 도가 나왔네요. 걸이 나오면 앞서가는 말을 잡을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깝네요.”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다문화가정 네 가족이 팀을 나눠 윷놀이에 한창이다. 아빠 품에 안겨 윷가락을 던지는 두 살 배기 영중이는 베트남에서 온 엄마 한호하(28) 씨와 중장비 일을 하는 아빠 용환승(44) 씨의 삼남매 중 막내로 분당민들레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행사에 처음 참석했다는 아빠 환승 씨는 “아내와 아이들이 분당 민들레 학생들 얘기를 자주해 항상 궁금했다”면서 “특히 학생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한글이나 영어공부를 봐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 노현주(35) 씨를 만나 결혼한 후 지난 2008년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옮긴 방글라데시인 모르셋(36) 씨. 아들 태양(5)이와 딸 태희(3)까지 함께 한 가족나들이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딸 소아(3)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졸리(36 방글라데시) 씨도 즐겁기는 마찬가지. 다만 아들 지산(9)이가 함께 오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지산이는 분당민들레 회원들과 친숙해지면서 이젠 유난히 잘 따르는 형, 누나가 따로 생겼을 정도라고.
“지산이가 센터에 가는 걸 좋아해서 빨리 가고 싶다고 그날만 기다려요. 형 누나들과 공부하면서 한글도 많이 늘었구요.”
카네이션, 군고구마 판매수익금 후원하기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분당민들레는 성남이주민센터와의 연계를 통해 성남지역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의 학습 지원봉사를 펼치고 있다. 회장을 맡고 있는 강하연(이매고 2 회장) 양을 비롯한 분당지역 중고등학교 학생 15명이 모여 동아리를 결성했다.
분당민들레의 역할은 한 달에 2번 성남이주민센터에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고 놀아주는 것. 아이들은 물론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 엄마 아빠도 이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행사장에서 만난 성남이주민센터 장윤순(60) 다문화팀장은 “분당 민들레 동아리는 5월엔 카네이션을, 겨울엔 군고구마를 팔아 그 판매수익금을 센터에 후원하는 등 물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며 “어린 학생들이 처지가 다른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가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보람 있는 활동을 거들기 위해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부모님들. 이제영(43 분당구 이매동) 씨를 비롯한 18명의 엄마 아빠들이 행사에 참석해 아이들을 격려했다. 아들 민제(이매고 1) 군과 함께 참석한 김태배(48 분당구 이매동) 씨는 “그동안 아들의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심 가져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일방적으로 베풀고 가는 행사가 아니라 서로 배우고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모님께 받기만 하던 사랑을 이젠 되돌려 줄 때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맛있는 식사가 시작된다. 낙생고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지원(동아리 부회장) 양은 “어차피 노는 토요일에는 집에서 밀린 잠을 자거나 뒹굴거리기 쉬운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더 즐겁다”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민선(한영외고 2 동아리 부회장) 양도 “그동안 부모님께 받아오기만 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며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며 뿌듯해했다.
한편 이날 장소를 제공한 아브라(ABR)는 확대 실물 모형제작, 건축물 거푸집 제작, 대형 풍선 조형물 연출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이 회사 강동수 사장은 “지역기업으로써 성남지역 다문화가정 관련 행사를 도울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지역 노인잔치 등 의미있는 행사에 보탬이 되는 활동들을 실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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