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들-수중회

마음으로 뽑은 면발, 어르신들 맛있게 잡수세요

수원중화요리 모임회

지역내일 2010-08-12 (수정 2010-08-12 오후 8:13:15)

 

2010년 7월 4일 밤, 수원의 어느 중화요리 전문점 주방. 주방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양파를 써는 사람, 감자를 깎는 사람, 고기를 써는 사람, 그리고 면발용 반죽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수십 킬로그램의 재료들은 무언가 특별한 일에 쓰일 것이 분명했다. 요리사들의 손길은 밤새 분주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십시일반 힘을 모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대가를 바란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매년 두 번 이상은 스무명에 가까운 중화요리 전문가들이 하나로 모이는 행사,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자장면 잔치(7월 5일)’는 그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1.자장 소스에 마음을 담아
 권선동과 세류동의 중화요리 전문점 대표 19명이 모인 수원중화요리 모임회(이하 수중회). 이 모임은 8년째 독거노인들에게 자장면을 대접하고 있는 친목 동아리다. 초대 김승기 회장에서, 현재 이복영 회장에 이르기까지 수중회 회원 열아홉명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화요리 달인들이다. 중국음식 특유의 맛을 그려내는 요리의 달인, 척 보기만 해도 고춧가루와 오징어의 상태를 아는 재료의 달인, 먹어보지 않아도 단무지와 양파의 신선도를 단박에 아는 유통의 달인들이 모여 수중회를 만들었다. 수십그릇의 자장면을 만들어도 매출 올리고 이윤 남기기 빠듯한 요즘-그러나 수중회는 일년에 한번 이상 두 팔을 걷어붙이고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로 자장면을 뽑는다. “다들 좋아서 시작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장면, 중화요리 아니겠어요. 이걸로 뭔가 좋은 일을 해 보자 해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거지요.” 인터뷰 내내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복영 회장의 말이다.
 수중회는 2002년 버드내 성당에서 열린 첫 행사를 시작으로 낙원교회, 버드내복지회관, 세류2동 주민센터 등 세류, 권선동의 크고 작은 기관들을 빌려 독거노인들에게 자장면을 대접해왔다. 신종플루가 극심했던 작년에도 쿠폰으로 자장면 잔치를 대신했다. 독거노인들에게 쿠폰을 나눠드리고, 수중회 음식점을 방문하면 무상으로 자장면을 제공한 것. 이렇게 수중회 자장면과 인연을 맺은 어르신들만 해도 3천여명에 달한다.


#2.짬뽕 국물에 사랑을 넣어
“세류비행장 근처에 할머니 한 분은 쪽방에 기거하셨는데, 저희 자장면을 그렇게 맛있게 잡수셨어요. 어느 해던가 안 보이시길래 수소문해봤더니 돌아가셨더라구요. 마음이 아팠어요.”
이복영 회장이 떠올리는 수중회 자장면 잔치의 일면이다. 정부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정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노인복지에는 빈틈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중회의 자장면 봉사는 실질적인 활동과 함께 구체적이다. 매월 셋째 주 월요일 모임에서, 활동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회비의 50%를 자장면 경로잔치를 위해 적립한다. 경로잔치가 임박하면 세류, 권선 지역 주민센터와 복지회관, 경로당 등에 일제히 안내문을 발송하고 회원들이 직접 찾아가 공지를 하기도 한다. 주민센터 사회복지과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가하면, 기다렸던 ‘그 날’을 위해 자원봉사자의 소리없는 손길이 잇따른다. 올해 행사에는 자유총연맹, 세류 권선동 주민자치센터 통친회, 지역내 부녀회 등 사십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동참하기도 했다.


#3.탕수육처럼 바삭한 초심으로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알아주는 이도 드물었다. 그러나 수중회는 처음 결성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이다. 한 해 두 해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회원 간에는 형제애보다 더 끈끈한 정이란 게 생겼다. 중화요리 전문점을 경영하면서 생긴 노하우-좋은 재료 고르는 법, 포장용기 구입하기 좋은 판매선 등-를 공유하는 지식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마련됐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중화요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정작 그들에게 힘든 점은 어르신들에게 자장면을 대접할 만한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 수중회 이 회장은 “해가 거듭될수록 힘이 막 솟고, 의욕이 더 생긴다. 더 많은 분들을 모시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가 없다는 것, 그게 가장 큰 고민”이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수중회의 자장면을 몇 년째 먹어보았다는 김영래씨(69세. 세류2동 거주)는 “젊은 사람들이 고맙지. 자장면 한 그릇 사 먹기도 어디 쉬운 일인가. 이 사람들 마음이 여기 들어가 있으니 먹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어.”라며 웃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멀리 산다는 구실로 부모에게 자장면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는 게 요즘의 자식들이다. 수중회는 독거노인들에게 열아홉명의 아들이요, 딸이다. 수중회가 뽑아내는 길고 긴 면발에는 어르신들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자식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사랑으로 면발을 뽑아 사람의 맛을 전하는 모임-바로 수중회다.


권일지 리포터 gen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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