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휴일

남편과 단둘이 서먹한 분위기를 어찌할까?

지역내일 2010-08-09 (수정 2010-08-09 오전 10:15:53)





이 서먹한 분위기를 어찌할까?
아이가 없는 시간은 부부에게 해방의 시간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집일수록 간절하면서도 막상 주어지면 둘 사이 드리우는 어색한 적막에 ‘애 없으니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는 명언에 공감한다. 남편과 단둘이 있는 게 서먹서먹해 아이 없는 휴일이 두렵다는 부부들 얘기.

첫아이 출산 후 가장 힘든 점이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라 말하고 다닌 황서경(39)씨. 밥도 번갈아가며 먹고 대화할 여력도 없던 육아 전쟁 틈에, 용케 아이를 맡기고 심야 영화 보러 가던 시간은 ‘달콤한 외출’ 그 자체였다. 그러나 결혼 9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애 봐줄 테니 둘이 바람 쐬고 오라’는 친정 엄마 말이 부담스럽기만 하다는데. “예전엔 기를 쓰고 애 맡길 기회를 만들어 남편이랑 단둘이 호프집이라도 갔죠. 그래야 부부로 사는 것 같고, 사는 재미가 났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둘이 있는 시간이 반갑지  않더라고요. 그냥 애 보는 게 낫지 남편이랑 단둘이 무슨 재미로 있나 싶고….”
둘만의 시간이 아쉽던 연애 시절과 신혼을 거치지 않은 부부야 없겠지만, 몇 년 사이 부부만 집 안에 있을 때를 직시해보자. 가장 쉽게 아이가 학교에 간 토요일 오전,  휴무인 남편과 단둘이 무얼 했나? 모르긴 해도 남편은 부족한 잠을 자고, 아내는 청소나 요리를 한 집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 깨어 있었다면 둘 사이 오가는 팍팍한 공기 속에 ‘애 올 시간 안 됐나’ 자꾸 시계를 보는 장면도 여기저기 펼쳐졌을 법.
곰곰 계산해보면 집 안에서 남편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단둘이 있는 시간에 그리 갈증이 생기지 않는 것은 왜일까? 어쩐지 둘이 있으면 할 말도 없고 어색한 부부 사이를 애써 숨길 생각 마시라. 아이가 집에 없는 주말이 두려운 건 비단 나뿐만 아니니.

단둘이 오붓한 시간?
이런, 할 얘기가 없네…
아이가 하나였던 3년 전만 해도 퇴근하면 남편과 한 시간은 무조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는 조연희(37)씨. 남편 시선이 딴 데로 가면 “20분이면 돼. 내 얘기 들어!” 하면서까지 시시콜콜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조씨가 이제는 한 다리 건너서나 남편과 대화를 한다니. “직접 말하기도 귀찮고 자초지종 설명하기도 싫어서 그냥 아이한테 ‘아빠한테 뭐 하자고 해’ 하는 식으로 전달하죠. 휴일에 애들 낮잠 잘 때는 둘 사이에 침묵만 흐르는데 정말 어색해요.” 아이들한테 지치다 보니 남편이 말을 걸면 무시할 때가 많았는데, 그 이후 점점 남편이 말을 걸어오는 일이 줄더라는 분석이다. 
한때는 영화 얘기며 정치 얘기로 남편과 논쟁까지 벌이던 박민희(37)씨는 어느 날부턴가 오가는 대화가 ‘아이 얘기’‘시댁 흉’‘돈 걱정’밖에 없더란다. 게다가 이마저도 하다 보면 싸움이 되니 결국 할 얘기가 없어지더라고. 근래엔 그나마 월드컵 덕분에 얘깃거리가 풍성했는데, 이 같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고는 활기 도는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며 혀를 찼다.
요즘에는 기혼 여성들의 생활이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남편이 아니어도’ 얘기할 사람이 많아진 게 원인일 수 있다. 주 3일은 문화센터에서 취미 생활을 하고, 매주 아파트 엄마들과 브런치 모임도 한다는 이아무개(39)씨의 말이다. “집에만 있을 때는 스트레스 풀 곳이 없으니 남편 붙잡고 분풀이하는 게 유일한 해방구였죠. 그런데 이제는 밖에서 다 해결되잖아요. 더 잘 이해해주는 대상이 있으니까 굳이 남편한테까지 말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남편도 수다 공해에 시달리지 않는 게 내심 좋은지 외출을 적극 권한다는 후문이다. 

TV라도 같이 보면 다행,
각자 할 일에 몰두
남편은 컴퓨터, 아내는 독서 신혼 초부터 단둘이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이렇게 따로 논다는 주아무개(37)씨. 집에 TV를 없앤 뒤로는 둘이 나란히 앉을 시간마저 없어졌단다. 그렇다고 꼭 남편이랑 뭔가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아이들이 없는 금쪽같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지 왜 남편이랑 보내느냐’는 반문. “남편은 마트라도 가자고 하지만, 그건 애들 있을 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내 시간 버려가며 하기엔 아깝죠. 아이한테서 해방되면 내 생활부터 챙기지, 남편 사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어진 것 같아요.” 
모처럼 남편이 일찍 퇴근하고 아이는 친구 집에서 파자마 데이를 하던 날, 이아무개(38)씨는 부부만의 맥주 파티를 준비했다. “남편이 어색한지 TV부터 켜더군요. 별다른 대화 없이 술만 마시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사라져 전화해보니 만화방에 가 있더라고요. 애 있을 때 가면 애랑 안 놀아준다고 잔소리하니까 애 없을 때 간 거라는데, 남편도 저처럼 자기 시간이 간절했나 보다 이해하고 넘겼죠.” 신혼 시절에는 단둘이 있을 때 남편이 책을 읽거나 TV 본 걸로 부부 싸움을 한 적도 있지만, 부부라고 해서 꼭 상대를 위해 시간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엄마들한테 아이 없는 시간이 천국이듯 남편도 그러리라 이해한다면 각자 할 일에 몰두하는 게 최상의 시간 활용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부부만의 시간을
원천 봉쇄하는 게 제일?
연년생 두 자녀를 둔 한찬영(40)씨는 ‘여름방학 캠프도 둘이 같이 보내면 되겠다’는 부러움을 사지만, 정작 일정을 달리해 한 아이씩 번갈아 보낸다고 한다. “남편이랑 둘이 뭐 해요. 애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집 안에 생기가 도니까 되도록 따로 보내요. 평소에는 아이들끼리 자는데 이런 날은 오히려 제가 아이랑 자고 남편은 따로 자는 걸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남편이 출장 간다면 일주일 전부터 심란했는데, 이제 남편이랑 있으면 오히려 이것저것 챙겨주랴 잔손만 가는 탓에 단둘이 있는 시간은 아예 ‘원천 봉쇄’한단다.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가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외식을 했다는 강은선(40)씨는 ‘데이트 잘 했냐’는 질문이 무섭다. 데이트는커녕 ‘다시는 단둘이 안 나간다’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니까. 차라리 말없이 영화 보는 게 낫지, 마주 앉아 애 얘기나 하며 밥 먹는 일이 그렇게 어색할 줄 몰랐다고. 아마도 아이와 나누며 사는 감정이 더 많다 보니 남편을 통해 얻는 행복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는 게 나름대로 찾아낸 문제점이다.
남편이랑은 뭘 해도 재미가 없어 다가올 여름휴가도 애써 딴 가족들이랑 엮었다는 집, 바쁜 척하려고 안 하던 바닥 물걸레질에 땀을 뺐다는 집, 적막을 깨고자 애꿎은 애완견 붙잡고 오버하며 놀았다는 집까지 어느새 ‘어색커플’이 돼버린 부부들의 모습이다.

어색함 타파할 둘만의 시간 활용책 없을까?
아이랑은 못 가는 곳으로,
남편도 혹할 스케줄 잡기
친정이 집 근처로 오면서 아이를 자주 맡길 수 있게 된 정미경(38)씨는 덕분에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 “둘만 있는 날에는 평소 아이 데리고는 못 가던 곳을 찾아가요. 쇼핑이나 외식은 아이 데리고 늘 하던 일이라 남편에게도 기분 전환이 될 만한 아이템은 아니죠. 외식을 하더라도 애 데리고는 엄두를 못 내던 포장마차나 고품격 호텔 레스토랑에 가요.” 남편도 혹할 수 있는 스케줄을 잡아야 어느 한쪽이 ‘희생’하지 않고 둘 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제안이다.

집안일에 남편 유인 작전을
외출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라면 집 안에서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다. 김소영(44)씨는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간 주말 오후는 인테리어를 바꾸는 시간. 남편과 함께 가구 배치도 바꾸고, 벽 장식도 한다. “TV 앞과 싱크대가 각자의 포지션일 정도로 집 안에서도 눈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한두 시간 인테리어를 바꿔보는 건 남편도 좋아해요. 일방적으로 아이 책장 정리해달라고 하면 못마땅해하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부추기거나 보상책을 활용하면 전집도 번호순으로 정리해두는 의욕을 보이죠.”
송희정(39)씨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제안한다. “같이 TV 보며 재료를 다듬고 밀가루 반죽도 하다 보면 얘깃거리가 많이 생기죠. 아내 입장에서도 가족을 위해 혼자 희생하는 요리는 스트레스지만, 남편과 같이 하다 보면 이벤트가 될 수 있거든요.” 이때 남편 손에 조리 기구를 들게 하려거든 무조건 남편이 먹고 싶어하는 아이템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남편 취향에 맞춰 할 일 적극 탐색
허미연(40)씨는 아이가 교회에 간 일요일 낮이면 남편과 함께 등산을 한다. 운동을 싫어하는 남자는 거의 없으니 딱 두 시간만 같이 움직이자고 제안하는 것. 등산이 버거울 때는 아파트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체육공원에서 몸을 풀기도 한다.
물론 그 시간 전후로는 아무 잔소리 없이 늦잠과 낮잠을 허용하는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게 룰이다.
‘소파에 누워 있는 남편을 내버려두면서부터 부부 사이는 소원해진다’며 손톱 깎아주기, 마사지 팩, 흰머리 뽑기처럼 사소한 접근을 시도한다는 아내도 있다. 힘들지 않고, 시간 많이 걸리지 않으면서 가까워진 자리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도 좁힐 수 있는 방법이다. 

최유정 리포터 meet1208@paran.com
일러스트 홍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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