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건전한 지역문화에 대한 꿈으로 불혹을 가로지르는 옹고집이 감대진(48). 감미로운 목소리로 4집 앨범까지 발매한 실력 있는 가수다. 강약의 리듬으로 엮는 새로운 하루와 꿈을 일구는 부단의 노래가 비처럼음악처럼에서 연출된다. 라이브비처럼음악처럼은 개성 있는 콘셉트로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무대, 다양한 장르와 수준 있는 노래가 흐르는 카페이다. 이곳을 통한 수준 있는 지역문화의 매김이 그의 꿈인 바. “밑 빠진 독도 안되지만, 조류에 흔들리는 건 더욱 싫습니다. 처음 마음 그대로 끝까지 최선할 거예요.” 느긋한 음성과 연한 표정에 담긴 왠지 모를 내공이 느껴지는. 문화를 겨냥한 순수와 진정이 경제 논리와 떨어지지 못한 채 늘 평행인 까닭에서 나오는 말이다. “걱정 없이 자라는 동안 우정과 의리가 성장 모토”였고. 피아노치고 음악 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바이엘 체르니 안 배워도 기타와 피아노 칠 수 있었으니. 가수를 위한 운명의 인자들이 내재된 행운아(?)였던 것일까.
친구를 위해 불렀던 노래
잘나가던 고등학생 감대진이 82학번 법대생이 됐다. 유학온 시골 친구가 카세트를 갖고 싶어 했다. “친구를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무대에 나갔어요” 당시 마산mbc아마추어노래자랑’에 나가 카세트를 탔고 내친김에 월말 세탁기도 탔다. 연말대회에서 포니2승용차까지 따냈지만 우여곡절도 함께였다. 84년 대학가요제경남대표로 뽑힌 상태와 연말대회 날짜가 겹친 것. 대학가요제 합숙일정에 하루 늦게 합류했고 점수가 깎였다. “아버님께 포니는 선물로 안겨 드렸지만 대학가요제엔 미운털 생겼겠죠.” 수상은 못해도 실력은 인정받아 출전곡 ‘어제 불던 바람’이 앨범 뒷면 금상 다음에 수록된다. 때와 함께 감 씨는 본격 가수의 길을 걷게 되는데. 허공 미워미워의 작곡가 정풍송 씨가 적극 지지를 약속하며 감 씨와 그의 부모를 설득한 것이다. 새로 맞은 기로에서 가수의 길을 결정한 감 씨를 부모님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절정 직전의 터닝포인트..
지구레코드 전속 정풍송 작사 작곡 빗방울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장르는 트로트. 인기차트 7위까지 오르고 연말 신인가수상으로 주목받지만 감 씨의 가슴은 자꾸 다른 말을 했다. “스물셋 그 시절엔 왜 그리도 트롯이 싫고 부끄럽던지요..” 이범희 곡으로 장르를 바꾼다. 가수 이용이 도미하던 즈음이다. “그 때는 어리석은 생각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 못했어요.” 감 씨는 당시를 가수로서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라고 고백한다. 스물 초반의 혈기가 내밀한 이성의 능력을 앞지르던 그 때. 터닝 장르 ‘내 가슴에 그대 머물면’이 표절로 밝혀지며 방송 불가에 이른다. 설상가상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이선희와 듀엣으로 한강의 노래, 인기 홈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주제를 불렀지만. 첫 단추의 어긋남으로 순조로운 질서의 맥과 리듬은 끊기고 엉겨들기 시작한 상태. 기회를 품고 잠실 쪽에 라이브 카페를 차려 거기서 노래했다. 장사도 잘되고 아내도 만나면서 세월이 쑥쑥 흘렀다.
그러다 부친의 대장암 선고로 97년 귀향해 아버지의 일을 마무리하는데 힘썼다. 선산 북면에 누워 계시는 아버님을 두고 떠날 수 없어 잘나가던 카페를 간단히 정리하고 귀경도 포기했다. 만개 직전의 기대를 결단과 순응으로 터닝하며 내려놓은 것. “손해 본 일이 많지만 후회하거나 아쉬움에 빠지지 않아요”라며 바로지금에 최선 하는 긍정의 힘을 전한다. 순응함에 들어있는 강한 힘 엿보게 한다. 인테리어를 하며 노래를 떠난 세월로 살다 2007년, 지금 자리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인수한다. 가수로서 새로운 출발이었다. “음악하는 사람에게 노래는 마약과도 같아요. 노래 안하고는 못 배기죠.” 존재감과 삶 자체가 노래와 뗄 수 없으니 노래로의 귀향은 또다시 운명이었다.
비처럼음악처럼 영원한 라이브로..
상남분수 바로 옆 10층에 “이름이 맘에 들어 인수했다”는 라이브 비처럼음악처럼이 있다. 클라리넷을 전공한 실력 좋은 연주자와 섹소폰, 건반, 기타, 드럼 등이 있고 이경민 박영운 진이 현정 장미정 등 가창력 뛰어나기로 소문난 가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공단도시 창원은 노는 문화가 넘칩니다. 그래서 듣는 기호와 문화를 의도하며 출발했어요.” 직접노래하려는 손님 때문에 당황도 하던 초기에 비해 지금은 자리 잡혔지만 대신 수지가 안 맞다. 그래도 “창원 가면 들을만한 무대, 괜찮은 라이브가 있다는 매김을 희망하며, 처음 의도와 지향대로 갑니다”라며 “클래식과 엮는 연출 등 더 좋은 무대를 선사하고 싶은 꿈”도 살짝 전한다. 컴퓨터에 의한 신세대음악 추세 위에 듣는 음악의 침체인 지금 “음악적으로 들을만한 곳 편안한 곳이면 좋겠어요. 비처럼음악처럼의 취지를 기억하고 지지하며 시민들이 많이 도와주기 바래요”라며 삶의 중심에 음악에로의 진정을 품은 가수 지망생이나 후배가수에게 다리역할로 살아갈 꿈과 자기규정을 전한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에 카리스마가 조화롭다”는 주변 평과 “사람 사귀기를 가장 큰 재산으로 알며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본인의 말에 음악 하는 친구들이 건강하게 노래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윤영희 리포터 ffdd7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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