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 여름 휴가. 휴가 즉 바캉스의 어원은 ‘텅 비우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피서지에서 신나게 즐기고 편히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다보면 일상의 찌든 때도 비워지기 마련이지만 종종 잊지 못할 추억으로 채워 오는 경우도 많아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데. 여름날 대표적인 휴가지 바다에서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 몇 토막.
입술이 파랗게 질리도록 뽕 찾아 헤매
여름을 유독 좋아하는 정 모(32·좌동) 씨. 장마철이 끝나고 날씨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면 남들은 더위 걱정인데 마음 한쪽이 설렌다는 별난 정씨는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어려서는 반바지에 민소매 입고 무작정 갔던 해수욕장이지만 요즘 해운대가 어디 그런가. “쭉쭉빵빵 비키니 사이에서 반바지에 면 티는 좀 너무하죠. 그래서 지난여름 큰맘 먹고 비키니를 장만했어요”
출산하고 살은 조금 쪘지만 아직 괜찮은 몸매인데 문제는 가슴. 원래 아담사이즈였는데 일 년 가까이 수유를 하고 나니 남은 건 절벽에 껌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슴에 더 신경이 쓰이던 정씨는 빈약한 수영복 뽕을 보강하기 위해 자체 제작한 뽕을 끼워 넣었다.
남편 친구들 가족동반으로 해수욕장에 가게 된 정씨. 새로 산 수영복 입고 아이는 남편에게 맡긴 채 신나게 바다수영 실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헉! 자체 제작한 한 쪽 뽕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차라리 물속에서 나머지 뽕을 제거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계속 잠수하며 뽕 찾아 헤맸던 지난 여름바다. 그래도 또 새 뽕을 구입하고 올 여름바다를 준비했다는 정씨는 마냥 즐겁다고 한다.
짜릿한 파도타기에 흠뻑 빠져봅시다
바다라면 질색이던 김 모(38·우동) 씨는 아이들에게 모래놀이가 좋다는 말에 억지로 바다에 가기 시작했다. 온가족이 바다에 가도 파라솔 밑에서 짐만 지키던 김 씨. 끝도 없이 발에 들러붙는 모래와 끈끈한 바람이 싫었다고 한다. 게다가 집에 돌아오면 일거리는 모두 김 씨 차지.
그런데 2년 전 함께 간 형부가 강제로 끌고 들어가 처음으로 바다에 제대로 들어갔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에 파도타기라는 것을 했죠. 큰 튜브에 함께 매달려 정신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타는데 어째 좀 재미가 있더라고요. 머리 위로 덮치는 파도 속으로 빠질 때면 아찔하긴 했지만 짜릿한 맛이 그만이었죠”
더위는 까맣게 잊고 아이처럼 신나게 놀았다는 김 씨. 스릴을 즐기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 것이 더 놀라웠다고 한다. 이제 아이들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게 된 김 씨는 여름바다의 매력을 알려 준 형부가 정말 고맙다고.
워터파크에서 물 한 번 못 적셔본 서글픈 사연
주부 최 모 씨는 물놀이를 떠올릴 때면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며 말을 꺼냈다.
몇 해 전 친정에 아이들만 보낸 시누이 덕분에 모처럼 멋진 삼촌 흉내를 내며 조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가겠다고 나서는 남편을 따라 가까운 워터파크로 갔다. 나름 조카들과 딸을 위해 수영복도 한 벌씩 사 입히고 기대에 부풀어 수영장에 도착했건만, 조카들과 남편은 신나게 노는데 정작 최 씨의 딸은 물이 무섭다고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우는 아이를 내내 안고서 노는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물에 발 한 번 못 적셔 보고 돌아왔다고 했다. 자기 딸은 어쩌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이 조카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 남편이 그렇게 야속했다고. 게다가 돌아와서도 엄청나게 쌓여 있는 빨래에 한숨을 쉬었다며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물놀이라 회상했다.
형님 가라사대 “숨넘어가는 줄 알았네!!”
시어머니 생신이 8월이라 온 가족이 모여 영도 중리 자갈마당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일이 연중행사인 이 모(남천동, 39세)씨. 보통 이 씨는 가족들을 챙기고 해수욕은 남편과 딸아이 몫이었다. 평소 느긋하기로 소문난 남편과 딸은 얼마 전 여름에도 같이 바다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몇 겹 되지도 않는 옷을 갈아입는 데만도 세월아 네월아로 장장 10여분을 소비. 선크림을 안 발랐다며 또 하세월. 어깨가 탈 거 같다며 다시 티를 꺼내 입고 깎아놓은 과일 몇 점 집어 먹으니 모든 채비를 마치고 들어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0분가량.
드디어 남편과 딸아이를 바다로 보낸 뒤 숨 돌리고 앉은 이 씨에게 손위 동서는 “준비하는 거 옆에서 보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며 “잠수하러 가냐? 그냥 바다에 잠깐 들어가는 데 30분이나 걸려? 느긋한 줄은 알았지만 정말 징하다” 고 혀를 내둘렀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무려 30분씩이나 걸려 바다에 들여보내 놨더니만 10~20분 정도 놀더니 배고프다며 손잡고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아니 그렇게 빨리 돌아올 거면 왜 들어갔냐고요오!!!!
그 여름 이후 이 씨는 남편과 딸에게 10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바다로 뛰어들 것을 종용한다고 전했다.
해수욕의 묘미는 일찍 가서 일찍 놀고 일찍 돌아오는 것
해운대 근처에 사는 이 모 씨는 해마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아침 일찍 해수욕을 하러 간다고 한다. 일찍 가면 사람도 별로 없는데다 물도 비교적 깨끗한 편이고, 튜브 빌리기도 쉽고, 나름 쾌적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이유.
9시 정도에 걸어가서 튜브를 빌리고 11시정도까지 열심히 놀고 정리해서 집에 오면 12시. 그 뒤로 샤워하고 점심 먹고 낮잠 자는 것이 진정한 해수욕의 묘미라며 반드시 아침 일찍 갈 것을 권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대나 뭐래나.
에구머니! 수영복이~
결혼 후 점점 나오는 배로 인해 아침수영을 시작한 정 모(42·수영동)씨. 독한 마음을 먹고 뱃살을 빼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수영을 배웠단다. 강습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어느 정도 뱃살이 들어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남자가 몇 안 되는 데다 키도 훤칠해 특히 같은 반 할머니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했다고.
뱃살도 빠지고 수영에도 자신감이 붙어 열심히 레인을 돌던 어느 날. 그날따라 어찌나 몸이 가볍던지 쉬지 않고 수영을 하고 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더란다. 바로 수영복이 벗겨진 것. 뱃살이 빠지면서 수영복 고무줄이 헐거워진 탓인지 그만 훌러덩 벗겨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몇 바퀴를 돌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웃으면서 수영복을 주워주더란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들어갈 텐데 그날따라 웬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정 씨는 수영장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자신만 보면 미소를 짓는 할머니들의 얼굴과 그 날 잠수를 하며 힐끗거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갈 자신이 안 생기더라는 정 씨. 앞으로 몇 년간은 수영할 마음이 안 생길 것 같다나?
공포영화가 따로 없네
남해 바다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일찌감치 펜션 예약을 해 둔 이 모(36·대연동)씨.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며 본 펜션 정보에 펜션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단다.
남편과 아이들을 이끌고 찾아간 남해. 남해대교를 건너면서부터 군데군데 펼쳐진 바다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펜션에 도착해 짐도 풀기 전, 바다에 뛰어들 마음에 아이 둘을 데리고 서둘러 바다로 향했다.
오는 길에 펼쳐져 있던 넒은 해안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놀기 딱 좋은 아담한 해안이었단다.
해수욕을 즐기려 바다에 뛰어든 이 씨와 아이들은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해안은 바위해안이라 굴 껍데기가 붙어있어 온 다리와 손에 상처가 난 것이었다.
해수욕은 고사하고 온 몸의 상처투성이로 피를 흘리며 나타난 이 씨와 아이들을 본 남편은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고 말한다.
필름은 그 어디로
용호동에 사는 박 모 씨는 대학 4학년 때 친구들과 한적한 바닷가를 찾았다. 여행지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는데 어라, 계속 찍다보니 어느 순간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랬다고. 필름을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확인해보자며 조심스레 카메라를 열었는데 아뿔싸. 필름이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디카가 없던 시절에 일반 카메라로 찍을 때면 한 장의 사진도 소중하게 온갖 자세를 잡아가며 수고를 했던지라 너무나 허탈했다고. 특히 한 친구는 새로 산 신발을 사진 찍을 때마다 눈치 못 채게 살짝 넣었다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었다. 그 사건 이후 디카로 찍는 요즘 다른 건 몰라도 메모리카드는 열심히 챙긴다는 박 씨다.
김부경, 김영희, 이수정, 장정희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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