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사람들 홍승기 변호사

“취미가 아니라 진짜 배우입니다”

지역내일 2010-07-06

 



 


논현동 법무법인 신우의 홍승기(51) 변호사는 여섯 편의 영화와 다수의 연극에 출연한 중견 배우다. 그는 고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온 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사법고시를 합격했다. 배우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했다. 다른 사람들은 “변호사이면서 배우가 되었구나.”  생각하겠지만 본인은 변호사보다 배우가 먼저라고 말한다. 사법 연수원 시절에 성인배우로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으며 그 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나 연극에 출연했다.
그리고 마흔 살에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공부도 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땄다. 돌아와서는 변호사로, 모교 로스쿨 교수로, 책 저자로, 또 배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계획이 많다. 그 많은 생각 중에도 가장 확실한 결심은 배우로서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것이다. 한 때 잠깐 배우를 하고 싶었던 변호사가 아닌 모양이다. 그는 진짜 배우다. 


감성적인 청소년기, 갈등하던 대학시절
홍 변호사는 대구에 있는 계성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이창동 감독의 친형인 이필동 선생이 연출한 ‘따라지 향연’에서 뻬뻬니에로 역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춤추는 벌레’의 스친키, 배비장전의 서동 역을 했다.
당시 대구 MBC 전신인 영남 TV의 측에서 계성초등학교에 아역 배우를 할 학생을 의뢰했고 전교 회장이었던 그가 발탁되었던 것이다. 단발로 한 것이 아니라 계속 캐스팅이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대구 아이면서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나름대로 분석했다.
초등학생 시절 대구에서 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홍 변호사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중2때 서울 신림중학교로 전학을 했다. 대구에서는 이름난 스타로 지냈지만 서울에서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아 기분이 상했던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전학 온지 석 달 만에 전교 1등을 했다. 그제서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 번 일등을 하고 나서는 학교 공부보다는 책도 많이 읽고 국립극장에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는 감성적인 청소년으로 지냈다. 경동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시 극단 가교에서 했던 ‘철부지들’이란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연출도 하고 주연도 하면서 그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때 대본을 복사를 할 수 없어 손수 베껴 함께 배역을 맡은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열정적으로 연극을 준비했다.  
79학번인 그는 고대 법대 학생회장을 했다. 그때는 제 5공화국 시절로 대학생이 공부에 전념하기 힘든 시국이었다. “당시 투쟁경력이 약해 운동권이라고는 할 수 없고 활동권 학생이었다.”고 회상하는 홍 변호사. 그는 평생을 직장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려져 투병중이고 둘째 형은 막 외무고시에 합격해 사무관을 시작하려는 가정 상황 때문에 자신이 학생회장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 심각하게 갈등하며 고통스런 시기를 보냈다고. 





 


변호사와 배우의 경험으로 또 다른 세계 펼쳐
원래 홍 변호사는 배우를 하고 싶었는데 집안에서 반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가 감수성이 풍부한 그에게 공부해서 꼭 변호사가 되어야한다고 닦달한 경우도 아니다. 5형제 중 네 째인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법대에 진학하고 싶었고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다시 연기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1990년 말 그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무렵 ‘낙타는 울지 않는다’라는 영화에 배우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가명으로 지원서를 냈다. 결국 이 작품에는 발탁되지 못했지만 이때 이석기 감독과 인연을 맺어 ‘아주 특별한 변신’에 출연할 수 있었다. 당시 홍 변호사는 결혼도 했고 딸도 있었다. 부인은 남편의 이런 행동에 무척 황당해 했다. 급기야 시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남편을 만류해달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주변에서는 “이제야 알았느냐? 홍성기는 원래 그렇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는 주연배우 안성기 씨의 친구 역으로, 저예산 영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에서는 거지로 출연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안기부장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10년 동안 꾸준히 지상파 방송과 유선방송에서 방영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매번 인사를 받곤 했다.
2003년에는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배우 박희순, 백종학 씨와 함께 연극 ‘아트’ 초연에 출연했다. 낮에는 변호사 업무를 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매일 연습하느라 서너 시간 밖에 잘 수 없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했다. 아니 오히려 펄펄 날아다닐 것처럼 기운차게 지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주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장애인 인권 영화 ‘섹스 발론티어’에서 신부님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홍승기의 시네마 법정’이란 책도 썼다. 31편의 영화를 소개하면서 그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사건과 그 비슷한 판례를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또 저작권위원회 회원으로 저작권에 관련된 강의도 열정적으로 한다. 이 외에도 변호사와 배우로서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맡아 하고 있다. 


배우라 행복한 사람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태어나면이란 전제 아래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것은 현실에서 자신의 직업이나 처지를 바꿀 용기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그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도 변호사와 배우를 함께 하는 행운아다. 
처음에 그가 영화에 출연했을 때 원로 변호사들은 그의 행동이 변호사의 위상에 맞지 않다며 마땅치 않아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요즘은 동료나 선배 변호사들이 딱딱한 법조인의 이미지를 친화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한다며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연극계에서는 홍 변호사가 배우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 쪽 사람, 동료’라는 표현을 쓰며 환영한다. 영화 ‘축제’를 찍을 때 함께 출연했던 원로배우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며 환영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변호사와 배우를 하며 어떤 일을 할 때 더 행복하냐는 질문에 홍 변호사는 단연코 배우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범죄 수사극의 범인으로 비열한 깡패 보스 역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최대한 못된 짓을 하고도 증거를 남기지 않아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범인. 어쩌면 범인의 심리를 잘 아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역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  이창화 작가(스튜디오 ZIP)
이희수리포터 naheesoo@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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