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치에서 부곡지킴터까지 길게 난 오솔길
산 이름에 ‘악’자 들어간 산치고 험하지 않은 산 없다는데, 치악산도 이름에 ‘악’자가 들어간 산 중 하나다. 하지만 산이 크면 길도 많고 골도 많은 법, 험란하기만 하겠는가? 산을 힘들어하는 여자나 아이들을 데리고도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초보자 코스도 있을 법 한데, 치악산에서 가장 편한 코스를 찾아보면 어디가 나올까?
곧은치를 넘어 부곡으로 가는 치악산의 옛길이 그렇다. 곧은치는 해발 800여m 정도의 낮은 능선이라 치악산 저편 강림면 부곡 사람들은 이 곧은치로 치악산을 넘어 다녔다. 장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무거운 물건을 지고 일부러 험한 길 택하지는 않았을 테고 가장 편한 길로 다녔을 테니 이 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다니기 쉬운 길로 인증이 되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터이다. 말하자면 곧은치를 넘는 것은 원형이 잘 보존된 원주와 강림면 부곡리 간의 옛길을 걷는 것이다.
사람들은 봇짐을 메고 장에 내다 팔 것들을 지고 보따리를 들고 호환이 두려워 주막에서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우르르 이 산을 넘어 다녔을 것이다.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짐에는 색시에게 줄 노리개며 노모에게 드릴 군것질거리가 소중하게 담겨있었으리라. 옛 사람들의 삶을 담은 편안한 등산로 관음사에서 부곡리까지 약 30리 길을 넘어 운곡 선생님이 은거하였던 치악 저편의 깊은 숲과 계곡을 다녀왔다.
●은둔하고 싶은 충동...상념이 숲의 나뭇잎처럼 무성하다.
부곡계곡의 폭포, 계곡이 크고 수량이 풍부하다.
황골의 길카페에서 출발하는 여정이다. 커피 한 잔, 그리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 물 한 잔을 마시며 꼼꼼하게 등산로를 살펴본다. 등산로는 C코스. 초보자 코스다. 약 6km 정도 치악산의 저편 부곡리까지 치악산이 악산이냐는 듯이 초보자 코스로 표시된 것이 놀랍다. 치악산은 악산이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관음사부터 곧은치까지는 가파르다.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지만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금방 치악산의 주능선을 밟고 올라선다. 곧은치는 이처럼 짧은 코스라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곧은치는 중간기점으로 거쳐 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긴 완경사를 타고 내려가는 부곡리까지는 숲길이 약 4km에 걸쳐 이어진다.
숲은 깊고 길은 험하지 않으니 왠지 상념이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4살 우리 아들도 데려올 걸’ 하는 생각부터 ‘부곡에서 다시 되짚어와 국향사로 내려갈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다. 애초에 강림까지 걸어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원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일정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하고 마누라 몰래 쓴 외상 들통 났을 때의 아찔한 임기응변이라던가, 시국의 험함, 장래의 희망 등이 우후죽순처럼 삐죽거린다.
거대한 산에 비하면 미미한 일개 인간의 상념이 숲의 나뭇잎처럼 무성하다. 하지만 맑은 계곡의 폭포소리와 산죽 밭에 바람 스치는 소리에 상념들을 조금씩 비워 가며 몸도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그래! 산행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부곡계곡의 숲. 숲이 4km 길게 이어져 있어 깊은 원시림의 느낌을 받는다.
이 치악의 숲에는 아주 오래 전 은둔했던 대 유학자가 있었다. 원주 원씨의 시조이신 운곡 원천석 선생이다. 그는 태종 이방원의 스승으로 제자였던 왕자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깊은 시름으로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상념을 안고 치악에 은거하였다. 스승을 찾아오는 이방원을 피해 치악산의 깊은 숲으로 숨어 은둔자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운곡 선생처럼 거창한 은둔의 이유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숲길을 거니는 일반인의 마음에도 충동이 느껴진다. "나도 이런 곳에서 은둔하고 싶다!"
● 운곡 선생과 태종의 숨바꼭질 이야기
멀리서 본 태종대의 모습. 비각 안에는 주필대라는 비석이 있고 절벽에는 태종대라고 음각되어 있다.
노구소. 옆 모래사장에는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천렵을 하고 있었다.
멱을 감는 아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바위 쪽이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
태종대 하면 부산이 떠오른다. 맑은 날에는 일본 땅이 보인다는 그 곳. 원주에 태종대가 있다는 말에 "태종대가 치악산에도 있어?" 딱 그 정도 흥미 정도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치악산이 품고 있는 태종대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들렸다는 명승지 태종대와는 또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단순한 명승이 아니라 인재를 구하는 왕의 마음, 스승을 그리는 제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풍광을 즐기는 마음이 아니라 애절하게 구하는 애틋함이 서려있는 곳이다.
태종대에는 비각 안에 태종이 말을 매어 놓고 있었다는 의미의 주필대라고 새긴 비석이 있으며 절벽에는 태종이 머물렀다는 의미에서 태종대라고 음각되어 있다.
태종대에 서면 치악산의 여러 골짜기들이 잘 바라보이고, 치악산에서 보면 태종대도 잘 보이 자리인지라 태종이 치악산의 언저리를 보며 스승의 흔적을 찾았듯이 운곡 선생도 어딘가에서 태종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을 법한 자리이다. 비록 스승이 제자를 피하니 만나볼 수 없었지만 멀리서라도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태종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했다.
부곡리에서 태종대까지는 4km 거리다. 부곡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깔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변암(弁巖)이 있고 손가락을 비껴 가리켰다 해서 횡지(橫指)암이 있다. 운곡선생은 변암에서 은거했었는데, 태종을 만나지 않기 위해 빨래하던 노파에게 다른 곳(횡지암 쪽)을 알려주라고 신신당부한다.
노파는 본의 아니게 임금을 속이게 되었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노파는 깊은 소에 빠져 죽게 되었다. 노파가 죽은 소는 노구소라 불리게 되었다. 노구소는 태종대 아래쪽에 아직도 깊고 시커먼 속을 보이며 흐르고 있다.
● 시간도 더디 흐르는 강림에 제비들이 집을 짓고
우문현답일까? 우문우답일까? 새싹이 파릇이 돋고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나면 애써 산을 찾는 버릇이 있다. 산에는 도대체 왜 가는 것일까? 애써 정상을 정복하는 쾌감을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극기를 즐기는 타입이라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과 한없이 무거워지는 다리를 끌고 끝까지 산행을 마치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사람도 아닌데??? 관음사에서 곧은치를 오르며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산에 가는 것일까? 아니, 왜 산이 좋은 것일까?’
멀리서 보이는 산은 단지 하나지만 산이 품고 있는 생명은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다. 그 불가사의한 포용력이 자꾸 나를 이끄는 것은 아닐까? 온갖 차이와 다름에 상관없이 차별하지 않고 거대한 그늘이 되어주는 산의 포용력이 신비롭다. 산이 안아주니 산에 간다. 6월의 산행은 조금 덥겠지만 계곡은 시원하리라.
부곡의 숲과 계곡은 원시의 때 묻지 않은 정취로 유명하다. 단 한번 그리로 넘어봤지만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길이다. 옛 길을 걸으며 상념에 빠지고 또 털어내고 비워내기에 부곡의 원시림을 걷는 것보다 좋은 게 있을까?
강림면의 시장 통에는 아직도 제비들이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고 있었다. "왜! 제비가 돌아오지 않지?"라고궁금했었는데, 너무 많이 환경이 변해서이지 않을까?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강림에는 아직도 오지의 마을인양 제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강림면에서 들를 만한 곳
통나무학교
한국 통나무학교는 현존하는 통나무 기술 중 가장 정교하고 예술적인 캐나다식 통나무 기술을 교육한다. 높은 기술력,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 효과적인 교육체계 등으로 앞서가는 통나무학교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 113-4
문의 : 033) 342-9596~7
천문인마을
하늘을 좋아하고 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덕초현. 덕초현 천문인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전국의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99년 5월 1일 이 일대를 별빛 보호지구로 선포하고 천체를 관측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덕초현 천문인마을
문의 : 033) 342 - 9023
응향원
응향원은 응향(凝香) 박춘숙 선생이 설립한 도예원이다. 박춘숙 선생이 가르치는 명지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 제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실험하는 전문 도예공방이다. 한국 최초의 화기 도예원인 응향원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생활도자기, 도자기 교육 및 실습도 겸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 765
문의 : 033) 342 - 1424
글/사진 : 최종필(둘레 여행가)
홈페이지 : http://namulbo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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