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높은 영어 레벨을 자랑하는 아이들이 상당수다. 남보다 빨리 높은 레벨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뿌듯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글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는데…. 단어 뜻조차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김하림(40)씨는 얼마 전 미국 교과서 2학년 과정 수업을 하던 초등 2학년 딸의 학원행을 중단했다. ‘모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라’는 라이팅 숙제를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학원에서는 한 줄만 써도 학습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사고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다소 어려운 주제를, 그것도 영어로 표현하라는 건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저학년 높은 영어 레벨,
브레이크 걸리는 까닭은?
영어 조기 교육의 영향으로 저학년 때 높은 레벨을 꿰차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영어유치원만 졸업해도 그림책은 ‘수준에 안 맞는다’며 글자 많고 두툼한 챕터 북을 시리즈로 장만한다. 학원의 교재도 높은 레벨은 활자가 작고 주제가 어렵다. 더구나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몰입 교육’이 관심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미국 교과서를 채택해 영어 교육을 한다. 미국 교과 과정은 기초 단계를 마친 뒤 들어갈 수 있는 수업으로, 학원마다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과정의 상위 레벨로 배치한다.
그러나 높은 레벨이라면 자부심을 갖던 엄마들이 레벨 업을 마다하며 브레이크를 거는 시점이 온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를 연발하며 영어에 흥미를 잃는 아이를 보는 때가 고민의 시작. 정철어학원 주니어담당연구원 심은숙 부실장은 “문제는 학습자의 연령, 영어 수준, 성장 환경, 배경 지식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어려운 교재를 병행하면서 영어로 지식을 습득하는 목표에만 중점을 두는 데 있다”고 말한다.
엄마들이 말하는
‘난 이런 방법으로 도와준다!’
아이 흥미 살려 환기하는 것도 방법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미국 교과 과정 프로그램에 보내던 강은선(37)씨는 지난달부터 스피킹 중심의 영어학원으로 옮겼다. 그동안 4~5학년 수준의 교재로 공부하면서 시험은 그런대로 잘 봤지만, 혼자서는 숙제를 소화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내린 대안이다. 한국말로 설명해주면서 예습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수업 준비도 버거워진 상태. 강씨는 “어려운 어휘가 많은 리딩 중심의 수업에서 탈피하니 아이가 ‘쉽다’면서 다시 흥미를 찾았다. 가정학습도 당분간은 일상 회화 위주의 화상 영어를 활용할 생각”이라 했다.
학원 옮길 때 유념할 부분들
아들이 영어 학원에 개설된 클래스 내 초등 3학년 중 가장 높은 레벨을 받았다는 강선아(37)씨는 교재를 보고 등록을 포기했다. 레벨이 낮은 교재와 다르게 활자가 너무 작고, 시각적 흥미 요소가 전혀 없더라는 것. “일찍부터 영어를 시작해 영어 수준이 높은 저학년이 늘어가는데, 학원들은 종전에 개발한 교재를 그대로 사용하니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따라서 학원을 선택할 때 같은 레벨이라도 저학년과 고학년 교재를 달리하는 곳을 주시하라고. 저학년 중심의 학원 중에는 우리나라 교과 과정과 미국 교과 과정을 비교·대조해 공통된 주제와 내용으로 자체 교재를 만들어 보완한 곳도 있다.
아이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배경 지식 충분히
어린아이들은 스토리 위주의 ‘픽션’보다 사회, 문화, 역사 등의 내용이 담긴 ‘논픽션’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다방면의 배경 지식이 필요한 내용이 다소 생소한데다, 특정 분야의 단어에서 막혀 여러 차례 읽어도 내용 이해는 어려운 것.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장선화(37)씨는 엄마표 학습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이해력을 보완했다. “학년이 높아진다고 해서 어휘력이 단번에 좋아지는 건 아니다. 영어 책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에서도 이해 못 하는 어휘가 나오게 마련이다. 한자어나 어려운 말은 최대한 우리말로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문장 표현도 같은 의미로 쉽게 바꿔서 대입해주니 좀더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레벨 한계 벗어나기 위한
학습 요령
한계에서 계속 밀어붙이면 실력 안 늘어
심정미(42)씨는 또래보다 영어 레벨이 높은 딸을 초등 4학년 때부터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학원 수업에 흥미를 잃고 한계에 봉착했을 때는 밀어붙여 봐야 실력이 안 는다”며 아이가 수월하게 학습할 수 있는 교재를 골라 엄마표 학습으로 꾸준히 이끌고 있다.
학원 수업 진행은 학생별 수준 차이가 고려되지 못할 뿐 아니라 기간이 채워지면 레벨을 올려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엄마가 영어 교육에 대한 정확한 로드맵을 갖고 도와줘야 한다. 영어 교육에 대한 확실한 원칙과 실천력이 없으면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겉돈다.
H어학원 강사 주아무개씨는 “레벨이 높으면 영어를 잘한다고 긍지를 갖지만, 실상은 못미치는 학생들이 많다. 초등 저학년부터 레벨 경쟁이 심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실력이 드러난다. 영어유치원이나 저학년 레벨은 영어 실력 향상과는 별 관계가 없다. 책 읽기와 듣기를 통해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학원 수강은 보충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영어 레벨보다 연령과 관심사 먼저
송민경(43) 씨는 레벨이 높아도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학원을 찾다 결국 6개월째 가정학습을 하고 있다. 저학년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진도 나가기에만 급급한 학원 수업에서 맞춤교육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 위주로 끌고 가는 방식도 여지껏 영어를 즐겁게만 접하던 아이에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되었다고.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토론 위주의 수업에 보내는 한승경(37)씨는 “요즘 저학년도 정치, 경제, 논픽션 교재로 토론을 하는 수업이 많은데 영어 자체로 비판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이끌어내는 공부를 하기에 저학년은 사고력도, 배경 지식도 부족한 듯하다”고 말한다.
최유정 리포터meet1208@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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