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리운 어머니의 치마폭 냄새

지역내일 2010-05-25
지난해, 최인호 작가가 암 투병으로 <샘터>에 35년간 연재하던 소설 ‘가족’을 중단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덜컹했다. 그와 일면식도 없고 열광적인 독자도 아니었건만, 그 순간 스친 안타까움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 가수, 국민 배우가 있다면 그는 국민 소설가다. 그의 소설을 사춘기부터 읽은 세대는 그의 소설과 함께 중년이 되었다. 귀한 소설가를 잃을까 봐, 그가 더 오래 우리 곁에서 좋은 소설을 써주기 기원했다. 아직 그의 쾌유 소식은 모르지만 <천국에서 온 편지>를 보고 다소 마음이 놓인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발행된 이 에세이집은 작가가 42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쌓아온 이야기-사모곡과 회한의 기록이다.
마흔여덟에 남편을 잃고 하숙을 치면서 여섯 형제를 키워낸 당신, 언제나 자식들이 입다 버린 러닝셔츠만 골라 속옷으로 입고, 자식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식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그러나 자식 여섯 명을 뒷바라지하는 동안 어머니는 억척스럽고도 촌스런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찾아온 어머니를 누구냐고 물으면 언제나 할머니라고 대답했다. 이웃들과 악다구니를 하고, 성묘 길에 주위의 시선엔 아랑곳없이 비석을 붙들고 긴 울음을 토해내고, 칙칙한 쥐색 두루마기를 입은 어머니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런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아들은 팔순의 어머니가 사진을 찍기 위해 화장을 했을 때도 버럭 화를 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환히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비록 남루한 인생이지만 결코 여성임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어머니의 소망을 무시한 자신의 잔인함을 눈물로 용서를 빌 뿐이다.
높은 데서 떨어져 다리를 못 쓰고, 당뇨 합병증으로 눈도 잘 못 뜨는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준 자식들은 없었다는 작가의 고백 앞에 누군가의 자식으로 사는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무너지고,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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