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루 꼴값, 구경한번 하세요

지역내일 2001-09-05
한없이 나른한 친구, 아시죠?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친구말이예요.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듯이 말이죠. 옛날부터 그랬어요. 언제나 같은 말만 하고, 똑같은 문제로 맴맴 그랬어요. 결혼생활도 변함없이 맴맴 하더군요. 장장 18년 동안 말이죠. 생각만 해도 나른해 지는 거, 이거 그냥 미친답니다.
언제나 문제거리를 들고 와요.
와서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죠. 앵무새를 날마다 삶아 먹는 모양이에요.
“애 아빠가 또 직장을 옮겼어. 속 터져 죽겠어.”
이 정도는 누구나 결혼생활 하면서 겪는 일이죠.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시댁 때문에 속 터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요? 변함없이 나른하게 주절거리다가 가는 그 친구 뒷모습을 보면 내가 울화통이 터져요. 친구 남편이 맘에 들고, 안 들고 하는 잣대는 딱 한가지잖아요? 친구를 고생시키면 나쁜 놈이고, 호강시키면 좋은 사람인 거요.
그 친구 남편은 이런 면에서 전자에 속합니다. 아직도 사글세 단칸방에서 살아요. 애 셋을 데리고요. 내, 참! 돈이야 뭐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런 저런 속이나 안 썩히면 나른한 기분이 들지도 않을 거예요. 그 남자 허파는 세월 지나도 곰팡이가 쓸지 않나 봐요.
“자기 나이 체면도 있고, 어떻게 쬐꼬만 차를 끌고 다니냐면서 그랜저를 몰겠다고 난리야. 아마 모르긴 해도 나 몰래 끌고 다니는 거 같아. 아유, 속 터져.” 이런 남자를 이뻐 할 수 있겠어요? 이런 나른한 친구, 다들 한 두 명씩은 다 있지요?
오늘은 그 친구가 원치도 않는 남편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왔답니다. 겨우 집 장만은 했어도 아직 집들이 할 형편은 아니거든요. 짐정리도 덜 끝난 상태라 좀 어수선했어요. 뭐 우리사이에 어떠냐고, 그러면서 그야말로 들이닥쳤어요. 슈퍼타이 달랑 한 개를 흔들며 말이죠. 형편이 어려우니 들여다 봐주는 것만도 고마워야 하는데, 그 남자 면상을 보니 슬슬 내 마음이 꼬이더라구요.
“이거, 이거, 뭐 집이 이럽니까. 하하하. 썰렁하네. 썰렁해.” 이러면서 가구하나 변변한 게 없다고, 휑한 운동장 같다며 어찌나 퉁박을 주던지. 그 인간, 누가 가구점 점원 아니랄까봐 이방 저방 온 데를 다 돌아다니며 가구점검에 열을 올리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거실에 쇼파 하나는 제대로 된 거 들여놔야지, 하하하.”
묻지도 않는 말을 혼자 지껄이고 돌아다니는 꼴이 보기 싫어 미운 놈 떡 하나 줄 요량으로 점심준비를 했답니다.
“쯧쯧쯧. 아이고, 이건 또 뭐야? 아이고, 쯧쯧…….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구만, 없어.” 부엌까지 들어와 엉성한 식탁을 가리려고 천을 떠다가 덮어씌운 거 까지 들춰 내며 혀를 차더라구요. 남편보기가 너무 민망한건 둘째치고, 친구년 한테 화가 뻗치대요? 어째 이런 꼴을 보고 웃기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정말 나른한 년이지 뭡니까.
잡담 한마디 : 아, 아! 정말 나른하네요. 미운 놈이 똥싸는 격이군요. 그렇다고 똑같이 똥싸고 뭉갤 수 없고 말이죠. 그 인간 밥 속에 주먹만한 돌 덩어리나 하나 얹어 줘요. 먹다가 이라도 부러지면 한동안 그런 짓 못하겠죠, 뭐! 아이고, 나른하다-아.
박남 시인의 꽁트칼럼(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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