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든 아이들
지난 5일 오전, 율동공원.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인산인해를 이루던 율동공원 배드민턴장에 분당 중앙고 봉사동아리 ‘다나인’ 회원 23명과 장애인 시설인 ‘예가원’ 식구 13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다나인’은 다솜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뜻. 다솜은 사랑의 순우리말.)
점심시간 전에 다나인 회원 2명과 예가원 식구 1명이 조를 이뤄 율동공원을 한바퀴 돌고 와서인지 모두들 맛있는 점심을 기다리는 눈치.
어느덧 돗자리 위에는 엄마들이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 후라이드치킨, 음료수 등이 펼쳐졌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곳이 있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가원 진석용 씨에게 학생들 중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자 아주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바로 앞에 앉은 허인영(고3) 양, “아저씨, 그냥 보이는 대로 말씀하시면 돼요” 한다. 그러자 진씨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본인의 표현대로) 생긴 건 중학교 2학년이지만 고2’라는 송형일 군, 이름표를 들이밀며 “아저씨! 그대로 읽어주세요” 애교 섞인 협박(?)이다. 과묵한 진씨 아저씨, 학생들의 성화에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진다. “모두 다 너무 예뻐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 사라질 때까지
다나인은 지난해 이맘때 쯤 결성됐다. 1년차 동아리라고 활동이 미미했을 것이라는 속단은 금물. 다나인을 결성하는데 중심이 됐던 회장 천영우(고3) 군의 이야기다.
“학생회 회원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지만, 그 전에 1년 정도 준비과정을 거쳤죠. 제가 관심을 둔 것은, 장애인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시간 위주의 봉사가 아닌, 양보다 질로 봉사하자고 회원들끼리 약속했죠. 우리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활동을 하자,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를 배워보자, 회원 모두가 이런 생각에 공감하면서 예가원 식구들을 만나고 있어요.”
예가원 박연미 사회복지사는 많은 단체와 학생들이 예가원을 찾고 있지만 분당 중앙고 다나인 학생들은 각별한 데가 있다고 칭찬한다. “지난 겨울방학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왔어요. 예가원 식구들과도 많이 친해져서 오늘 이렇게 바깥나들이도 함께 하게 된 겁니다.”
맛있는 점심시간이 끝났다. 다나인의 2011년을 책임질 부회장 홍성진(고2) 군. 축구 하다가 다친 손에 붕대를 감고도 예가원 식구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 사회는 장애우를 차별하잖아요. 다나인 회원들처럼 장애우들을 꾸준히 만나다 보면 그런 차별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예가원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죠.”
‘아빠의 청춘’을 멋들어지게 부를 줄 아는 양선영씨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김동은(고1) 양. 동아리 가입과 동시에 처음 행사에 참여했단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거라는 동은 이는 “중학교 때는 치매 중풍 어르신을 위한 봉사를 했는데 오늘 예가원 가족을 만나서 기분이 좋다”며 수줍게 웃었다.
몸이 약해 보이는 임대호씨의 등을 연신 쓸어주고 있는 이상민(고3) 군. 덩치가 커서인지 상민 군이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하자 이내 씨익 웃으며 “대호 아저씨가 점심 먹고 감기약을 드셨어요. 이렇게 하면 소화가 잘 되지 않을까요?” 한다.
고3, 수능이 부담스러울 때 아닌가? “고3이요? 물론 부담될 수 있죠. 하지만 오늘 예가원 식구들과 보낸 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이잖아요. 일주일로 나누면 1시간 정도고요. 제가 잠 1시간을 줄이면 할 수 있는 일인데 뭐가 부담스럽죠?” 한다. 기자, 좀 머쓱해졌다. 이 군의 말이 이어진다.
“60시간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데요, 저는 이미 100시간도 넘게 했어요. 봉사시간 채우려고 예가원에 가는 거, 아니거든요.(웃음) 예가원 식구들을 만나고 집에 가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뭔가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죠. 혹여 봉사활동 60시간 때문에 시작했더라도, 처음 만남은 의무적이었더라도, 입학사정관제니 뭐니 그런 계산된 행동이었더라도, 일단 장애인들과 만나는 봉사활동을 시작하면, 제가 그랬듯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흐뭇할 거예요. 여러분도 해보세요.”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
미니인터뷰 - 천영우 다나인 회장
천영우 군은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천 군은 “고1때 네팔로 자원봉사를 다녀오면서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다”고 했다. 어머니 이윤경 씨에 따르면 “네팔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면 안 되겠느냐”고 했을 정도. 고2때 다시 네팔을 다녀온 영우 군은 학교 내에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겉보기에 대학 준비하는 스펙 쌓기 아니냐, 이런 시선도 있을 거예요. 그것 때문에 가입하고자 하는 애들도 있을 거고요. 헌데 동기야 어찌 됐든 예가원 식구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내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봉사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몸으로 부딪쳐서 행동해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대학, 그 이상의 것을 배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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