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고 떠난 일본 여행

활기찬 오사카에서 여행의 참맛을, 교토와 나라에서 문화를 만나다

지역내일 2010-05-28 (수정 2010-05-28 오전 10:04:18)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인기 있는 쥬라식 파크


실은 작년에 떠났어야 했던 일본 여행이었다. 친정아버지의 칠순을 겸해 가족 모두 떠나려고 했으나 신종플루라는 복병을 만나 미뤘던 것이다. 올해는 무조건 간다라고 작정하고 아버지, 나, 딸, 여동생, 조카 이렇게 5명이 일본행을 예약했다. 보통은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나였지만 일본어를 할 줄 몰라 4박 5일 패키지로 정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했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그저 즐기면 되는 편한 여행도 좋겠다 싶었다.
모름지기 여행에 쾌청한 날씨가 따라주면 더없는 행운이겠으나 날씨는 나의 영역이 아닌 관계로 그저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번 일본 여행도 첫날부터 비와 함께였다.


교토의 동원원사 - 일본의 절에는 단청이 없다


제대로 즐겨본 유니버설 스튜디오

18시간에 걸친 배 여행은 멀미만 뺀다면 나름 즐거웠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식사는 꽤 맛났고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사우나도 색다른 재미였다.
오전 10시 30분쯤 일본에 도착해 곧바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향했다. 유명한 영화를 주제로 한 쇼와 라이드 어트랙션(타는 놀이 기구)이 많아 우왕좌왕하다가는 헛되이 시간을 보내기 일쑤라 인기 있는 어트랙션을 미리 골라 타고 다녔다. 평일인데다가 비까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재밌어하는 스파이더맨은 무려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1시간도 예사로 기다린다고 하니 주중에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간 점심 메뉴는 칠면조 다리였다. 다른 음식에 비하면 그나마 저렴하다고 한 게 우리 돈으로 거의 만원. 참으로 비싼 다리를 뜯어 먹어가며 실컷 놀다보니 어느새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었다.


맑고 깨끗한 청수사


오사카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유니버설을 선택한 우리는 저녁 식사를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에사카역 근처였다. 도톤보리가 있는 남바역까지 고작 6~7 정거장을 가는데 도시철도 편도 요금이 270엔. 우리 돈으로 3500원 정도였다. 일본 사람들이 자전거를 애용하는 이유가 바로 비싼 대중교통 때문이라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가격 대비 훌륭하다고 블로거들이 입 모아 추천한 ‘니뽄이치 스시’. 한 접시 당 무조건 130엔으로 지갑이 가벼운 여행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가게였다. 일본은 절대 공짜가 없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잠시 망각하고 미소된장국을 3그릇이나 시켜버린 실수만 제외한다면 매우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먹다가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점이 많은 오사카 도톤보리는 갖가지 다양한 메뉴와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간판들로 눈과 입 모두 즐겁게 했다.


돌보는 이 없어 쓸쓸해보였던 귀무덤


문화유산의 도시 교토와 나라

조식 뷔페를 든든히 챙겨먹고 향한 곳은 교토와 나라.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로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이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동본원사’로 현재는 교토 주민의 휴식처와 같은 절이다. 뒤이어 ‘헤이안 신궁’으로 향했다. 1895년 교토가 수도로 정해진지 1100년 된 것을 기념해 세운 신사라고 했다. 붉은 색을 많이 써 화려한 건물이었다.
다음 장소는 교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하나인 ‘청수사(淸水寺)’였다. 5월은 일본도 수학여행과 소풍이 많은 달이라 어딜 가나 학생들로 북적였다. 청수사는 말 그대로 깨끗한 물이 있는 절로 절벽에서 10m 가량 튀어나온 부타이라는 혼도의 마루를 172개의 마루기둥이 떠받치고 있어 유네스코의 관리를 받는 곳이다. 꽤 높은 곳이라 절에서 교토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청수사 주변은 오래된 나무들로 빼곡해 더욱 고풍스러워보였다.
잘 정돈된 건물과 달리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귀무덤은 아주 초라하게 제대로 손질도 안 된 상태로 있어 속이 상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나라로 이장되어 무덤 모습만 남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사슴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워하는 일본 학생들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 나라의 동대사

동대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나라공원으로 사슴의 천국이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편하게 쓰다듬고 먹이도 줄 수 있어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동대사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엄청난 규모의 목조 건물이었다. 특히 대불전에 있는 대불은 그 손바닥 위에 어른 16명 정도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본 절은 8세기경에 지어졌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709년에 원래 규모의 3분의 2크기로 재건되었다고 했다. 그 옛날에 이토록 큰 절을 만들자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겠다 싶어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근엄한 불상 옆으로는 떡하니 기념품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나왔다. 절 안에 어떻게 가게를 허락했을까? 우리와는 참 다른 모습이다 싶었다.
교토와 나라 관광을 마치고 도톤보리와 신사이바시를 둘러보고 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일본에서 마지막 밤이라 좀 더 즐겨보자 싶어 호텔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별 특징 없는 거리였지만 타국의 밤거리를 걷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화려하고 웅장한 오사카성


오사카의 상징 오사카성

오전에 들릴 곳은 오사카성 한 곳이라 조금 느긋하게 출발했다. 오사카성은 일본의 구마모토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성(成) 중 하나로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들었다. 오사카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웅장한 천수각과 거대한 돌담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수가 쌓은 성이라 그리 썩 예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하게도 대단히 멋있는 성이었다.
“엄마, 왠지 일본 사람은 나쁜 것 같다”라는 딸아이의 말에 조용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둘러본 유적지들이 대부분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된 건물이었고 일본에서는 존경받는 장수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에게는 잔인한 전범일 뿐이니까.



돌아오는 배 안에서 부드러운 거품 맛이 일품인 아사히 생맥주를 마시며 짧지만 즐거웠던 여행을 조금씩 음미했다. 다행히 계속 날씨가 좋아 근사한 일몰도 보고 같이 탄 전북여고 학생들의 장기자랑도 감상하니 긴 배 여행도 그리 지겹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마법 같이 사람의 마음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이런 신선함 때문에 사람들은 또다시 여행을 꿈꾸는 것일 게다. 행복한 기억이 이내 증발해버리지 않도록 오래오래 붙잡고 싶어졌다.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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