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고장 진면목을 보여줘야지요"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에 재학중인 배상철 씨는 매우 이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99학번인 그는 사실 30살의 만학도이자, 사물놀이패인 '동남풍'의 일원이다. 또 곧 열리는 전주 세계소리축제의 대학생 홍보단장이기도 하다.
장구를 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
그가 사물놀이를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였을 거예요. 막걸리를 한 잔 하신 할아버지께서 장구를 두드리시는 것을 봤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없으시고 엄격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흥에 겨워 장구를 두드리시는 모습에 어떤 이상한 느낌을 받았죠. 아마 그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국악에 관심이 생긴 것 같네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사물놀이를 배우게 된 그는 고등학교를 거쳐 91년 호원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입학하자 사물놀이 동아리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동남풍'이라는 사물놀이 패를 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물놀이를 연습하는 공간이 많이 없었어요. 장소만 생기면 학교 운동장이건, 어디 건 간에 장구를 두들겨댔죠.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몇 년 동안 정신없이 사물놀이에만 매달렸죠."
그런 그가 한국음악과에 입학하게 된 것은 학력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때문이었다고 한다. 타악을 전공으로 정했지만 다른 악기도 다룰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기타와 클라리넷 등 그는 15가지가 넘는 악기를 다룰 줄 안다.
"음악학과는 학과 특성상 대화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남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늘 젊게 살기 때문에 세대차이 같은 건 잘 못 느낍니다. 수업을 받는 것에도 별 어려움은 없죠. 처음에는 교양 때문에 애도 먹어 학점이 잘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학과 수업만 받다보니 장학금까지 받고 있어요."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죠"
아직 학생인 그는 한편으로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같은 학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하는 후배를 만나 보금자리를 튼 지 1년.
"처음 후배였던 아내와 사귄다고 하자 처갓집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지금 아내가 스물 두 이거든요. 또 사물놀이 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 장인, 장모님을 만나서 앞으로 2년 간 따님을 그냥 옆에서 도와주는 선배로만 생각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만나다보니 결혼해도 좋다고 허락을 하시더군요."
얼마 전에는 예쁜 딸도 태어났다. 참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름도 예진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도 생겼지만 워낙 하는 일이 많다보니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저녁때는 피곤해서 아이에게 신경도 쓰지 못합니다. 대신 아침에는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서 예진이와 놀아줍니다. 그리고 학교에 나오면서 아내와 예진이를 처갓집에 맡기고 다시 저녁이면 데리러 가죠. 피곤이 쌓여 있을 때면 간혹 아내에게 짜증을 내곤 합니다. 곧 금새 후회를 하곤 하지만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죠."
처음에는 나이 어린 후배와 결혼한다고 놀리던 선후배들도 이제는 분유와 기저귀를 한아름 싸들고 놀러오기도 한다고 한다.
이왕 늦은 김에 평생 배운다는 기분으로...
그는 요즘 곧 있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대학생 홍보단장을 맡아 가뜩이나 바쁜 일상이 더욱 바빠졌다. 올 여름에는 열흘 동안 동남풍 놀이패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소리축제를 홍보했다. 우리의 소리를 배운다면 예전 선배들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해보자고 하던 차에 소리축제 조직위에서 의뢰를 해와 선뜻 응했던 일이었다.
1천 회 이상의 공연경력과 지난 여름 영광 법성에서 열렸던 전국국악대경연에서의 대상수상 경력 등 녹록치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놀이패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 그야말로 열흘 내내 북과 장구를 두드리고 다녔다.
"팀원들 중에서 저까지 3명이 늦깍이 대학생입니다. 다들 공부하는 입장이어서 자주 모이기도 힘이 드는데다가 워낙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게 아쉽죠. 지금 저희들은 어디가서 한 1년 만 아무 것도 안하고 연습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들 마음이 맞아 지금도 눈빛만 보고도 잘 알기 때문에 연습을 안해도 호흡이 잘 맞지만 이왕에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부에 더욱 욕심들이 생기는 것이죠."
그는 소리축제만 끝나면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연습에만 매달릴 계획이라고 한다.
"제 소원이요? 그냥 다른 사람들이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신은정 리포터 purmye@korea.com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에 재학중인 배상철 씨는 매우 이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99학번인 그는 사실 30살의 만학도이자, 사물놀이패인 '동남풍'의 일원이다. 또 곧 열리는 전주 세계소리축제의 대학생 홍보단장이기도 하다.
장구를 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
그가 사물놀이를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였을 거예요. 막걸리를 한 잔 하신 할아버지께서 장구를 두드리시는 것을 봤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없으시고 엄격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흥에 겨워 장구를 두드리시는 모습에 어떤 이상한 느낌을 받았죠. 아마 그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국악에 관심이 생긴 것 같네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사물놀이를 배우게 된 그는 고등학교를 거쳐 91년 호원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입학하자 사물놀이 동아리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동남풍'이라는 사물놀이 패를 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물놀이를 연습하는 공간이 많이 없었어요. 장소만 생기면 학교 운동장이건, 어디 건 간에 장구를 두들겨댔죠.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몇 년 동안 정신없이 사물놀이에만 매달렸죠."
그런 그가 한국음악과에 입학하게 된 것은 학력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때문이었다고 한다. 타악을 전공으로 정했지만 다른 악기도 다룰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기타와 클라리넷 등 그는 15가지가 넘는 악기를 다룰 줄 안다.
"음악학과는 학과 특성상 대화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남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늘 젊게 살기 때문에 세대차이 같은 건 잘 못 느낍니다. 수업을 받는 것에도 별 어려움은 없죠. 처음에는 교양 때문에 애도 먹어 학점이 잘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학과 수업만 받다보니 장학금까지 받고 있어요."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죠"
아직 학생인 그는 한편으로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같은 학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하는 후배를 만나 보금자리를 튼 지 1년.
"처음 후배였던 아내와 사귄다고 하자 처갓집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지금 아내가 스물 두 이거든요. 또 사물놀이 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 장인, 장모님을 만나서 앞으로 2년 간 따님을 그냥 옆에서 도와주는 선배로만 생각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만나다보니 결혼해도 좋다고 허락을 하시더군요."
얼마 전에는 예쁜 딸도 태어났다. 참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름도 예진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도 생겼지만 워낙 하는 일이 많다보니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저녁때는 피곤해서 아이에게 신경도 쓰지 못합니다. 대신 아침에는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서 예진이와 놀아줍니다. 그리고 학교에 나오면서 아내와 예진이를 처갓집에 맡기고 다시 저녁이면 데리러 가죠. 피곤이 쌓여 있을 때면 간혹 아내에게 짜증을 내곤 합니다. 곧 금새 후회를 하곤 하지만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죠."
처음에는 나이 어린 후배와 결혼한다고 놀리던 선후배들도 이제는 분유와 기저귀를 한아름 싸들고 놀러오기도 한다고 한다.
이왕 늦은 김에 평생 배운다는 기분으로...
그는 요즘 곧 있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대학생 홍보단장을 맡아 가뜩이나 바쁜 일상이 더욱 바빠졌다. 올 여름에는 열흘 동안 동남풍 놀이패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소리축제를 홍보했다. 우리의 소리를 배운다면 예전 선배들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해보자고 하던 차에 소리축제 조직위에서 의뢰를 해와 선뜻 응했던 일이었다.
1천 회 이상의 공연경력과 지난 여름 영광 법성에서 열렸던 전국국악대경연에서의 대상수상 경력 등 녹록치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놀이패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 그야말로 열흘 내내 북과 장구를 두드리고 다녔다.
"팀원들 중에서 저까지 3명이 늦깍이 대학생입니다. 다들 공부하는 입장이어서 자주 모이기도 힘이 드는데다가 워낙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게 아쉽죠. 지금 저희들은 어디가서 한 1년 만 아무 것도 안하고 연습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들 마음이 맞아 지금도 눈빛만 보고도 잘 알기 때문에 연습을 안해도 호흡이 잘 맞지만 이왕에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부에 더욱 욕심들이 생기는 것이죠."
그는 소리축제만 끝나면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연습에만 매달릴 계획이라고 한다.
"제 소원이요? 그냥 다른 사람들이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신은정 리포터 purmy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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