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와 제대로 느끼기

지역내일 2010-05-14

새 봄이 오는가 했더니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소위 만춘이라 할 만한 농염한 봄이 지나가고 있다. 불행히도 과음하는 생활에는 봄도 없고 계절도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 지난 과거와 마찬가지인 지겨운 일상만 반복할 뿐이다. 밝아도 어두어도, 추워도 더워도, 시간이 그리고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 채 삶을 허송한다. 유한한 인생을 전부 그렇게 소진해버린다. 느낌이 없이 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봄이 인생에 남아있는 유일한 마지막 봄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보낼 작정인가? 더구나 지금이 당신의 인생에서 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슨 수단으로라도 이 봄날 한철 하루 한 시간을 더 절절이 느끼고 누리며 기쁘게 살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단주를 하면 감각이 돌아온다. 그 동안에 아예 보고 듣지 못 한 것들을 처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수도 많다. 막연하게 뜻 없이 보고 들었던 것들마다 새롭게 느끼기도 한다. 당연히 새로운 해석과 생각이 가능하다. 무언가 어려움에 부닥쳐도 달리 보고 달리 생각하면 예전과는 달리 여러 가지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자신이 주도하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자아가 확립한다.
생업으로 운전을 하는 K씨는 단주를 한 것이 마치 개안 수술을 한 것 같다고 한다. 지난날 여름철이면 폭염과 과로에 짜증만 쌓여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요즘에는 발견한다고 한다. 짙푸른 가로수들 사이로 후딱후딱 내비치고 지나가는 여름 햇빛이 너무나 상쾌하더라는 것이다. 지난날에도 태양빛은 똑 같았을 텐데, 그때는 햇살이 따갑기만 하여 신경질이 났었다는 것이다.
단주를 하고나서야 계곡물 소리가 그렇게 시원한 줄 처음으로 알았다는 L씨도 있다. 산기슭 밭을 일구느라 수도 없이 지나다녔건만, 한 번도 물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단주를 하고 새벽 운동을 하면서 흐르는 물소리가 그렇게 좋은 줄을 처음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술을 마실 때에는 어린 두 남매가 끊임없이 싸우고 다투는 것에 늘 화만 났었는데, 술을 끊고는 그런 모습에서조차 성장과 발달의 강인한 기를 발견하게 돼, 더 이상 짜증나지 않더라는 젊은 엄마 M씨의 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단주를 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제대로 느껴야 맛을 알게 된다. 인생의 맛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나아가 인생의 멋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신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w.alj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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