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 2.54cm,지름7.62cm의 퍽(puck. 아이스하키용 작은 원반형 공)이 은빛 얼음판을 가른다.튼튼한 헬멧과 두툼한 보호대, 스틱으로 중무장한 초등 아이스하키 군단이 얼음판을 장악한다. 스틱들이 잽싸게 움직이며 퍽을 따라잡는다. 날렵한 스케이트들이 종횡무진 빙판을 가른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6시. 탑동 아이스링크(수원시 탑동 소재)의 풍경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던 수원 유일의 아이스하키팀 레드이글스. 냉정한 빙판을 열정으로 녹이는 수원 레드이글스 초등부를 만나보았다.
취미로 시작했다가 영원히 매료되는 스포츠
사실, 수원 레드이글스의 명성은 수원에서보다 타 도시에서 더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레드이글스는 12개 팀. 이 중 수원 레드이글스는 2002년 창단 이래 전국규모 대회 4회 우승. 올해 전국체전에는 은메달까지 획득한 명승부사다. 전국대회가 없는 평소에는 홈그라운드와 원정경기를 번갈아가며 레드이글스 리그전을 치른다. 수원 레드이글스의 뛰어난 경기력은 이미 알려진 사실. 승리의 배경에는 수원 레드이글스 김성수 감독만의 남다른 노하우가 있다. 아이스하키 명문인 휘문고와 고려대를 거쳐 국가대표까지 거친 김감독은 학부형들 사이에서 ‘열혈감독’으로 유명하다. 스케이트를 전혀 못 타고 엄마 아빠 손에 무작정 이끌려 온 아이들도 김감독 휘하에만 들어가면, 아이스하키 마니아가 되고 만다. “기본기부터 충실히 다집니다. 차근차근,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면 아이 스스로가 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김감독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확신이 있었다. 국내 최초로 아이스하키 본고장 캐나다의 교육시스템을 도입해, 기본에 강한 아이스하키를 가르친다. 레드이글스 팀원의 절반 이상이 수지, 분당, 안산에서 탑동 아이스링크까지 찾아오는 것도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 때문이다. 좋은 시설을 갖춘 아이스링크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지만 탑동아이스링크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토요일, 일요일 저녁 6시 이후부터는 오직 레드이글스 전용 아이스링크가 됩니다. 온전히 아이들만의 연습장이 되는 거죠.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아이스하키는 취미로 하든, 진로로 하든 연습을 거듭해야 실력이 늡니다. 탑동 아이스링크는 아이스하키를 가장 열심히, 그리고 편안히 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김성수 감독의 설명이다.
얼음판을 녹이는 붉은 독수리들
수원 레드이글스의 자격은 가족전체로 봐도 무방하다. 유치부(6세~7세),초등저학년과 초등고학년, 중고등부, 파파팀(부모 선수팀)까지 있기 때문이다. 자칫 외곬수이기 쉬운 요즘의 아이들에게 단체운동을 알려주고 싶어 찾았다가 누나도 레드이글스, 엄마 아빠도 레드이글스가 되어 버린다. 초등부에 다섯 명이나 되는 여학생 선수도 바로 이런 경우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는 대학진학에도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아직은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중학교까지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 상비군이 될 가능성도 높고, 대학진학시에도 유리하다는 것. 남학생의 경우 초등부에서 4~5명 가량이 아이스하키로 진로를 결정, 아이스하키부가 있는 서울지역 중학교로 진학하기도 한다. 지난 3월에 펼쳐진 한일교류전에서는 초등 국가대표 22명 중 4명이나 선발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한편, 수·금요일 밤 10시부터는 부모들이 팀워크를 이룬 파파팀이 얼음판을 달군다. “아이스하키가 고급스러운 스포츠라 생각해서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을 접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한번 장비가 갖춰지면 계속 쓸 수 있고, 레드이글스가 자체 보유한 장비도 필요할 때마다 임대해 쓸 수 있거든요. 생각보다 문턱이 높지 않고요. 얼음판의 짜릿한 매력, 맛 본 사람은 다 압니다.” 대기실에 있던 학부모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순발력, 판단력, 집중력 향상으로 학업에 크게 도움 돼
학교 공부에 사교육까지 바쁜 상황에서 아이들이 아이스하키에 할애할 시간이 있는지 못내 궁금했다. 아이가 레드이글스 4년차인 학부형 주한열씨(수원시 탑동)는 “처음엔 취미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이 스스로가 욕심을 낸다. 레드이글스 아이들은 공부도 모두 최상위권인데 운동에서 생긴 집중력, 그리고 판단력이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레드이글스 3년차에 접어드는 현상민 학생(수원잠원초 4)은 “빙판을 탈 때 시원함, 그게 정말짜릿하다. 뜨거운 여름도 아이스링크에서 시원하게 날 수 있다”며 좋아했다.
아이스하키, 일반적으로는 아직 낯선 스포츠다. 그러나 낯설기 때문에 매력 있고, 대중적이지 않아 끌린다. 스케이트나 스키처럼 휩쓸려가는 스포츠가 아니라, 드넓은 빙판을 독야청청 장악할 수 있는 존재감의 스포츠다. 레드이글스는 아이스하키를 통해 ‘나를 나답게’ 자라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듯했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의 새싹을 발굴하는 이 중요한 일이, 수원의 어느 아이스링크 한 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권일지 리포터 gen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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