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하려면…
유언장 작성하기, 사전의료지시서 등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교육 마련
“내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잘하는 거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거 밖에 못했다고 야단치고 비난하는 것으로는 절대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사한 벚꽃이 거리를 밝히고 있던 지난 4월 13일 성남시 호스피스센터.
수강생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명순(65) 상담 심리사 (전 서강대 교수)의 의사소통에 대한 강의가 펼쳐졌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강사의 열띤 강의에 들썩들썩 웃음과 감동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드는 사이 어느새 수강생들은 나와 가족에게, 그리고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눈빛이다.
오늘 펼쳐진 강의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기회를 통해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살도록 성찰해 보는 시간, 바로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웰다잉(Well-Dying) 교육이다.
성남시호스피스센터 웰다잉 교육 호응 높아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은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화두를 던졌다. 또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장기기증에 열린 마인드를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죽음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해주신 여러 성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또 그 의미는 웰빙에 이어 웰다잉에 대한 준비 역시 중요하다는 흐름과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비교적 시니어 인구가 많은 성남지역에서도 웰다잉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교육이 활기를 띄고 있다. 성남시 호스피스센터에서는 ‘건강한 삶,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로 웰다잉 교육을 실시한지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다.
“2007년부터 수정, 중원, 분당구 보건소 3곳을 방문하며 웰다잉 교육을 진행했는데 총 6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다음해엔 교육을 조금 더 확대했고 2009년엔 아예 저희 센터 내 고정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죠.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교육인데도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이 높은 걸 보면 이제 웰다잉에 대한 의식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거겠죠.” 김분한(60) 센터장의 설명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2시간씩 6주에 걸쳐 진행되는 강의의 내용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웰다잉,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문제
그래서인지 참석한 사람들도 40대 주부 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친구가 작년에 ‘이 교육을 받고 좋았다’며 권해줬습니다. 노후에 말년 준비를 제대로 안했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일단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다고 할까나? 나도 부모님 모시고 살다가 두 분의 임종이 갑자기 닥치니 어렵더구만. 내 자식들에게는 부담되지 않게 그렇게 준비를 잘하고 가야지요.” 5주차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듣고 있다는 최영일(69·산성동)씨의 교육 소감이다.
“평상시에도 자식들에게 쓸데없이 생명 연장시키지 마라, 갈 때는 웃으며 보내줘라, 틈날 때마다 얘기하는데 여기서 그런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알려주니 그저 고맙지. 집에 가면 마누라한태도 배운 내용 전부 얘기해주는데 재있어 하더라구.” 아직은 좋은 강의를 들으러 다닐 만큼 두 다리 튼튼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선우벽(80·야탑동)씨.
그런가 하면 2004년 유방암이 발병해 치료를 받고 현재는 휴면기에 있다는 차영희(52·이매동)씨는 강의를 받는 감회가 조금은 남달랐다.
“제가 호스피스 대상자였어요. 지금은 많이 편해져 이렇게 교육도 받을 만큼 좋아졌지만 죽음의 문제는 정말 나이와 상관없더라고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죽음이라는 문제가 조금은 수월해졌어요. 때가 언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함을 실감하고 있지요. 교육을 받으며 조금은 내려놓고 비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인생 2막과 웰다잉
이렇듯 다양한 이유과 감회로 강의를 듣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죽음이 삶의 다른 이름이라는 의견에 동감한다고 말한다.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남아있는 인생을 보다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 웰다잉 교육의 참된 이유라는 것.
한편 웰다잉을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또 다른 2막 인생을 펼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분당구 서현동의 황은식(74)씨가 그 주인공.
“은퇴 후 지인의 소개로 웰다잉 교육을 받게 됐어요. 내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귀한 시간이었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문젠데 아직까지 우리는 웰빙에만 집중하고 있구나. 하지만 이제는 ‘웰다잉이 중요한 화두가 되겠구나’를 생각하고 내친김에 지도자 과정을 공부했죠. 공부를 하면서 가족과 화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한때 서먹했던 아내와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황씨는 웰다잉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현재는 웰다잉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웰다잉을 쉽게 표현하고 알리기 위한 취지로 창단된 실버 연극단 단원으로 참여해 서울·경기지역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기관에서 공연 활동을 펼치느라 분주하다.
현재는 ‘춤추는 할머니와 립스틱 아빠’ 라는 연극으로 4월 28일 원주에서 공연할 연극연습에 여념이 없다. 웰다잉 문화연구소(010-8338-9100)의 김조환 소장은 “서울 경기 지역에 집중 되던 교육이 최근에는 지방에서도 의뢰가 쇄도할 만큼 웰다잉 교육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며 “웰다잉 교육이 비단 시니어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올바른 삶을 사는 중요한 거울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성남시에서 웰다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성남시호스피스센터(5/ 18일 2차 개강)와 분당노인복지관의 행복아카데미 (6월 선거 후 교육 시작) 등이 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웰다잉 교육에서 무엇을 배우나
보통 6회에서 8회 차로 진행되는 웰다잉 교육은 크게 4가지 방향으로 구성된다.
첫째로는 ‘품위 있는 죽음 준비의 필요성 살펴보기’를 통해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는다. 나의 인생 그래프 그리기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나누며,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유산이나 보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두 번째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것.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일을 떠올리며 그 방법을 찾아본다. 은혜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도 기억해 그 마음을 전달한다. 자서전 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가치 있으며 잘 살았다고 깨닫게 하는 것이 교육 목표 중 하나다.
세 번째 ‘죽음에 대한 실제적 준비’에서는 사전유언장이나 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를 거부하거나 고통 완화 조치를 최대한으로 해달라는 등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의 필요성과 내용을 이해하고 작성해보는 시간이다. 이때 장기기증이나 호스피스 이용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나의 사망기 작성’에서는 죽음 이후 남겨질 가족, 친지, 친구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작성해 본다. 유언장 작성과 장례식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사후 유산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리해보는 시간이다. 또 법률 전문가에게 유언장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도 배운다. 죽음 관련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소감 나누기와 장수사진 찍기 등도 포함된다.
권미영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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