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받는 요즘 남자들의 심리 보고서

우리도 ‘남보원’이 필요해!

지역내일 2010-04-30 (수정 2010-04-30 오전 10:10:25)


 


여아 선호 사상이 눈에 띄고, 엄마들의 입김이 세지고, 기업 마케팅도 주부들을 위해 열을 올리는 시대. 더 이상 아내는 남편을 두려워하지 않고, 문화적으로도 남성이 소외되는 분위기가 현저하다. 지금 당장 TV 개그 코너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라도 찾아가고픈 이들의 텅 빈 속을 여자들은 알까?

직장에서 소외되다
남성 파워, 청일점은 어디로?

초콜릿 복근, 짐승돌…
외모에서 밀리다
김아무개(42·서울 마포구 아현동)씨는 남자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 다녀와 흥분하는 아내를 보고 씁쓸했다. 아내의 나이는 마흔둘. ‘꽃미남’ ‘초콜릿 복근’ ‘짐승돌’ 같은 키워드에 흥분하는 아내를 보면 불룩 나온 자신의 배가 민망하기만 하다. 이아무개(41·서울 송파구 가락동)씨네 부부 싸움도 꽃미남 연예인 때문에 일어났다. “아내는 젊은 남자 가수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모조리 녹화해 돌려 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다는 말에 이제 남편인 나를 통해 얻는 행복은 없는 것 같아 서글펐다.”

양성 평등인가, 여성 우위인가?
남성 파워가 대세던 직장에서 최근 이직해 직원 80여 명 중 남성이 5명뿐인 곳으로 간 조아무개(45·경기 안양시 관양동)씨는 뜻밖의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경력으로나 연배로나 남자들 의견에 따라올 줄 알았는데, 여직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니 받아칠 수가 없더란 것. ‘돋보이는 청일점’은 커녕 ‘주눅 든 소수’로 묻어가고 있단다.
그동안 경쟁자로 생각지 않던 여성이 승진이나 고과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어쩌면 사무실 구석 소파에 웅크려 앉은 남자는 ‘여직원 휴게실’에서 아늑한 휴식을 취하는 여성들을 보며 ‘양성 평등’이 아니라 ‘여성 우위’라는 불만의 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정에서 소외되다 머슴 남편, 그림자 아빠로 산다?

“일찍 들어와~”가 웬말?
두 살, 다섯 살 두 자녀를 둔 임아무개(39·경기 성남시 구미동) 씨는 퇴근을 해도 퇴근이 아니다. 집 창가를 올려다봐 불빛이 없으면 주차장에서 무한 대기. 아내가 아이들 재우는 시간인 게 뻔한데, 무턱대고 들어가 깨웠다간 애써 재운 노고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아내의 짜증이 폭발할 게 뻔하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몸이 고생 하는 게 낫단다.
김아무개(47·서울 광진구 구의동)씨는 아이들 시험 기간이면 야근을 자처한다. “집에 일찍 가 봤자 애들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며 아내 원성이 자자하다. 어설프게 학습에 개입했다가는 교육 세태도 모른다며 부부 싸움만 생기니 일찍 퇴근해도 근처에서 저녁밥을 해결하거나 PC방에 앉아 있다 간다.”고.   
교육 문제에서는 ‘남편 말 들으면 안 된다’는 게 엄마들 사이에 정석으로 통하는 세태. 남편들은 이제 아이 일에도 ‘상의’보다 ‘통보’ 받는 일에 익숙하다.

주말에도 남자는 그림자…
모처럼 휴일을 챙긴 박정근(43·서울 강북구 수유동)씨. 가족나들이를 기대하며 잔뜩 설레었는데, 아내와 아이는 주말 스케줄이 빽빽했다. “차마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끼니 챙길 일에 당황하는 아내한테 ‘약속 있노라’ 거짓말했다.” TV를 벗 삼아 지낸 하루가 처량했지만 가족에게 걸림돌은 되기 싫어 배려한 것이다.
중학생 두 자녀와 모처럼 나들이를 간 이아무개(46·경기 안양시 평촌동)씨는 뜻밖의 반응에 놀랐다.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이나 할 걸 그랬다’며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데, 이젠 아빠로서 해줄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아이들의 시간에 흡수되지 못하는 소외감이야말로 아빠들을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상처다.

소외는 싫다,
남자가 움직인다

‘자기 계발’하러 백화점 가는 남자들
신세계백화점 본점 문화센터에서는 남성 전용 강의‘크라브마가’를 운영 중이다. 특공무술, 격투기의 일종으로 올해부터 오후 8시대에 남성 전용 강의로 진행하고 있다. 퇴근 시간 이후나 주말을 이용해 ‘리얼 복부 트레이닝’ ‘신사복 제대로 입는 법’ 같은 남성을 위한 1회 강좌를 챙겨 듣기도 하고, 디지털카메라나 와인, 재테크 강좌를 찾는 남성들도 있다.  
2008년 4월 통계청에서는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할 소비자 그룹 중 하나로 ‘요리하는 남편’ ‘아이 보는 아빠’를 꼽고 이들의 편의를 위한 아이템을 유망 사업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변해가는 남성들을 향한 기업체의 마케팅도 분주하다. 늘어가는 쇼핑 파파를 배려해 남성 휴게 공간을 따로 마련하거나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한 백화점이 등장했고, 기혼 남성들이 조리 도구와 같은 생활 용품을 직접 사면서 여성 소비 성역을 깨고 있다.  
나를 위해 변화하고 나를 위해 산다
이성우(46·경기 안양시 평촌동)씨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좋은 아버지 모임’에 가입했다. 첫 모임 이후 자신과 생각이 같은 아빠들 틈에서 그간 느낀 소외감을 벗고 ‘함께’한다는 위안을 받았단다. “나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가족과 일상적으로 친밀감을 나누고 자주 대화하는 게 필요함을 깨달았다. 남자가 먼저 움직인다면 소외될 일도 없을 것 같다.” 휴일 낮잠을 반납하고 가족과 등산을 한다는 김성현(39·경기 의왕시 내손동)씨도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기보다 스스로 즐기며 실천하니 그것이 곧 자기 계발이더라”고 공감했다.
최유정 리포터 meet1208@paran.com
일러스트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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