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담아내는 아날로그 인생, 좋지 아니한가?
인터넷 블로그를 운영하며 고송(孤松)이라는 온라인 별명으로 알려진 김경규(63·보정동)씨. 젊어서부터 취미로 가꿔온 사진기를 둘러메고 이웃과 세상을 담아내는 일, 은퇴 후 그가 꾸려가는 일상이다. 나이가 드니 아날로그로 사는 게 편해진다며 일부러 느리게 걷고, 느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다는 그를 만나 25년에 이르는 세월의 장벽을 넘어봤다. 애써 꾸미지 않고 날것으로 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넷과 블로그, 그리고 사진이야기
자랑은 아니지만 20년 넘게 꼬박 부어 타게 된 연금으로 생활하는 연금생활자다.
퇴직 전 아이들 가르치고 시집, 장가 다 보내 이젠 마누라와 둘만 남았다. 넓은 집에 둘만 사니 조금 적적하긴 해도 대신 15년 된 개를 상전처럼 모시고 살고 있다.
사진과 인연은 대학 다닐 때부터다. 틈틈이 찍곤 했는데 회사생활하면서도 기록사진, 증명 사진은 도맡아 찍어왔다. 퇴직 하자마자 사진을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싶어 서울 충무로 근처 사진 공방에서 공부를 했다. 선생님이 나오지 말라고 할 때까지 다녔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활도 점점 아날로그가 좋아진다. 주변을 잘 봐야하니까 너무 빨리 지나치면 못 보는게 많아진다. 그래서 일부러 걸어 다니고 가다가 힘들면 완행버스 타고 그러다 또 힘들면 기차를 타는 식이다. 우리네는 그렇다. 남는 게 시간이니 제주도를 가더라도 아날로그식이다. 버스타고 완도까지 가서 배타고 제주까지 가는 방식이다.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지만 이렇게 가면 제주까지 1박 2일이다. 그래도 오며가며 사람들 구경하고 주변 경치 구경하니 사람 사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고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펼쳐놓는 게 지금 내가 즐기는 일상이다.
‘고송의 블로그’는 200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진 위주로 올리다가 내가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자 해서 사는 이야기와 생각, 놀기 좋아하고 술 잘 먹는 이야기를 올렸더니 댓글을 달아 주더라. 그런 재미에 계속 하게 된다.
은퇴, 사기… 노부부이야기
나도 공기업 임원으로 퇴직 했지만 높은 직위에 있었다고 권위 의식만 갖고 있으면 퇴직 후에 아무도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불편해 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무게감, 권의 의식을 내려놓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리고 지킬 건 지켜야 한다. 난 금요일까지만 돌아다니고 주말엔 쉰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주말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나가지 보태 줄 일은 없잖은가. 평일에는 하루 6km를 왕복하며 걷는 것도 주 일과다.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한 것이 벌써 한참 됐다. 40대에 심근 경색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덤으로 사는 거라 생각한다. 담배도 그때부터 끊었다. 혈압 약만 보약삼아 먹고 있다.
퇴직하고 나면 투자자들이 엄청 모여든다. 부동산 투자, 상가투자 등 말만 들으면 당장에라도 금방 뭐가 될 것 같다. 열에 일곱 여덟은 현혹되기 십상이다. 퇴직금 노리고 달려드는 사람들 99%는 사기라고 보면 된다. 나도 1억 정도는 손해를 봤다. 그냥 비싼 인생 공부 했다 치고 있다. 지금은 내 명의로 된 재산은 모두 집사람한테 돌렸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래야 남편한테 재산의 반을 떼어주기 싫어 황혼이혼을 안한다나, 못한다나. (웃음) 그리고 이제야 말하지만 아내가 시비 거는 일도 없어졌다.
봉급생활자들은 부부끼리 취미 맞추고 살기가 어렵다. 내가 직장 생활하는 동안 집사람은 본인 좋아하는 관심거리 찾아 해왔으니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다보면 되레 어깃장이 난다. 그냥 서로 인정하며 살면 되는 거다. 난 사진 찍느라 돌아다니고 집사람은 성당 일에 바쁘니 공평하다. 그래도 우리는 두 달에 한번은 영화 보러가는 날로 정하고 가고 있다. 집 사람과 내가 영화 보는 취향이 달라 조금 힘들지만 옆에 남아 준 집사람이 새삼 고맙더라. 의지하며 잘 살아야겠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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