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부들 사이에서 여유로운 삶의 기준을 따질 때 ‘브런치를 하느냐’ 와 ‘하지 않느냐’로 양분된다는 얘기가 있다. 아침 끼니를 놓쳐 어중간한 때 식사를 하는 브런치.
하지만 브런치가 단순히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소비적인 데서 벗어나 자기 계발을 위한 금쪽같은 시간 관리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친목을 가장한 수다 모임에서 나를 채우는 브런치의 진화 말이다.
‘아점’을 넘어 문화와 지식의
충전… 브런치
브런치는 아침을 뜻하는 breakfast와 점심을 가리키는 lunch의 합성어. 보통 ‘아침 겸 점심’을 뜻하며 아점으로 불린다. 브런치가 변종 식사의 개념에서 이렇듯 주부들의 문화로 자리 잡은 계기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크다. 뉴욕에 거주하는 여주인공 4명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유를 내 친구들과 음식, 수다를 나누고 문화를 즐기는 생활이 새로운 감성으로 다가왔기 때문. 사실 미국에서 브런치는 일요일 늦은 오전에 즐기는 주말 여가 활동.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브런치는 평일에 즐기는 ‘아점’의 영향이 컸다.
“2004년경 브런치라는 용어가 화두가 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브런치 카페입니다. 평일에도 즐기는 개념이다 보니 주부들이 주요 소비층이 됐고요.”
대중문화평론가 김수연씨는 브런치라는 동경하고 싶은 외국 문화와 외식 업계의 틈새시장 개발 전략이 맞물리면서 브런치가 문화의 코드로 자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 외식 기업의 조사에서 브런치를 운영하는 외식 업소의 전체 매출 중 브런치 메뉴가 차지하는 비율이 40퍼센트 정도라는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
먹고, 보고, 배우고, 즐기는
브런치
먹는 브런치에서 보고, 즐기고, 배우는 브런치로 변화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끄는 ‘GS칼텍스의 시네마 브런치’와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밸리 브런치 시네마’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기업 마케팅이 낳은 브런치 이벤트다.
어디 이뿐인가? 공연 업계는 주부들의 문화 감성을 살찌운다는 취지 하에 마의 시간으로 먼지만 날리던 객석을 주부들로 채우는 브런치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4년 시작된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동부이촌동 주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브런치 콘서트>가 그 예다.
“어차피 오전 시간에 공회전하던 객석을 원래 공연 가격의 절반만 받아도 기획자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죠. 주부들의 강한 문화 욕구가 먼저인지, 공연계의 마케팅 전략이 먼저인지 몰라도 윈윈하는 겁니다.” 김수연씨의 설명이다.
전시를 보는 브런치 문화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한송은(41·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한 달에 한 번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전시장이나 미술관에 간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미술관 나들이는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로 이어진다.
“과거 맛집을 찾던 친목계를 미술관 나들이와 엮으니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느낌이에요. 수다만 떨고 가던 여고 동창생들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취미가 생겼죠.”
일부는 돈이 많이 들 것이라는 선입관으로 반대도 했지만 무료 나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는 전시장이나 미술관도 많아 반응이 좋다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웃음 치료 강좌를 듣는다는 오인혜(41·서울 강남구 역삼동)씨는 처음에는 취미로 수강했는데 들을수록 욕심이 난다고.
“예전에는 브런치 타임에 주변 엄마들 집을 전전하며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는데, 문화센터 수강 이후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뿌듯해요.”
주부기 때문에 얕고 넓기만 한
브런치 문화?
단순한 수다 모임이든, 즐기든, 보든, 배우든 브런치 시간에 많은 주부들이 집에서 나와 나름의 문화를 즐기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30대 초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만 해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육아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브런치 문화라는 돌파구를 찾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먹고, 즐기고, 배우고, 보는 브런치가 마냥 만족스럽지 않다는 주부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브런치 문화를 즐긴다는 것이 다분히 소비 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브런치 공연을 봐도, 전시를 감상해도, 교육을 받아도 왜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을까요?”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의 주부 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너무 단타적이에요. 커리큘럼이 지속적이 않아 아쉬워요. 공연도 한 시간짜리가 많고요.”
이에 대해 연세대학교 인문예술대학 임정희 교수는 “현재의 만연한 브런치 문화가 주부들의 요구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닌, 시장경제 생존의 도구로 먼저 자리했기 때문에 문화에 깊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집단화를 통해 주부들은 쉬운 강좌를 들어야 하고, 어려운 것은 회피한다는 선입관에서 출발한 모델링이 문제라는 것. 그런 이유로 주부들 대부분 브런치 문화를 그룹 혹은 커플로 즐기려는 경향이 크다고 임 교수는 전한다.
“브런치는 주부들에게 황금 시간이에요. 물론 그 시간에 모자란 잠을 자고 밀린 집안일을 하며 동네 엄마들이랑 수다를 떨 수 있어요.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혼자 학습할 수 있는 브런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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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런치가 단순히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소비적인 데서 벗어나 자기 계발을 위한 금쪽같은 시간 관리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친목을 가장한 수다 모임에서 나를 채우는 브런치의 진화 말이다.
‘아점’을 넘어 문화와 지식의
충전… 브런치
브런치는 아침을 뜻하는 breakfast와 점심을 가리키는 lunch의 합성어. 보통 ‘아침 겸 점심’을 뜻하며 아점으로 불린다. 브런치가 변종 식사의 개념에서 이렇듯 주부들의 문화로 자리 잡은 계기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크다. 뉴욕에 거주하는 여주인공 4명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유를 내 친구들과 음식, 수다를 나누고 문화를 즐기는 생활이 새로운 감성으로 다가왔기 때문. 사실 미국에서 브런치는 일요일 늦은 오전에 즐기는 주말 여가 활동.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브런치는 평일에 즐기는 ‘아점’의 영향이 컸다.
“2004년경 브런치라는 용어가 화두가 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브런치 카페입니다. 평일에도 즐기는 개념이다 보니 주부들이 주요 소비층이 됐고요.”
대중문화평론가 김수연씨는 브런치라는 동경하고 싶은 외국 문화와 외식 업계의 틈새시장 개발 전략이 맞물리면서 브런치가 문화의 코드로 자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 외식 기업의 조사에서 브런치를 운영하는 외식 업소의 전체 매출 중 브런치 메뉴가 차지하는 비율이 40퍼센트 정도라는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
먹고, 보고, 배우고, 즐기는
브런치
먹는 브런치에서 보고, 즐기고, 배우는 브런치로 변화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끄는 ‘GS칼텍스의 시네마 브런치’와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밸리 브런치 시네마’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기업 마케팅이 낳은 브런치 이벤트다.
어디 이뿐인가? 공연 업계는 주부들의 문화 감성을 살찌운다는 취지 하에 마의 시간으로 먼지만 날리던 객석을 주부들로 채우는 브런치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4년 시작된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동부이촌동 주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브런치 콘서트>가 그 예다.
“어차피 오전 시간에 공회전하던 객석을 원래 공연 가격의 절반만 받아도 기획자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죠. 주부들의 강한 문화 욕구가 먼저인지, 공연계의 마케팅 전략이 먼저인지 몰라도 윈윈하는 겁니다.” 김수연씨의 설명이다.
전시를 보는 브런치 문화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한송은(41·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한 달에 한 번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전시장이나 미술관에 간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미술관 나들이는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로 이어진다.
“과거 맛집을 찾던 친목계를 미술관 나들이와 엮으니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느낌이에요. 수다만 떨고 가던 여고 동창생들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취미가 생겼죠.”
일부는 돈이 많이 들 것이라는 선입관으로 반대도 했지만 무료 나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는 전시장이나 미술관도 많아 반응이 좋다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웃음 치료 강좌를 듣는다는 오인혜(41·서울 강남구 역삼동)씨는 처음에는 취미로 수강했는데 들을수록 욕심이 난다고.
“예전에는 브런치 타임에 주변 엄마들 집을 전전하며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는데, 문화센터 수강 이후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뿌듯해요.”
주부기 때문에 얕고 넓기만 한
브런치 문화?
단순한 수다 모임이든, 즐기든, 보든, 배우든 브런치 시간에 많은 주부들이 집에서 나와 나름의 문화를 즐기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30대 초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만 해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육아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브런치 문화라는 돌파구를 찾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먹고, 즐기고, 배우고, 보는 브런치가 마냥 만족스럽지 않다는 주부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브런치 문화를 즐긴다는 것이 다분히 소비 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브런치 공연을 봐도, 전시를 감상해도, 교육을 받아도 왜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을까요?”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의 주부 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너무 단타적이에요. 커리큘럼이 지속적이 않아 아쉬워요. 공연도 한 시간짜리가 많고요.”
이에 대해 연세대학교 인문예술대학 임정희 교수는 “현재의 만연한 브런치 문화가 주부들의 요구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닌, 시장경제 생존의 도구로 먼저 자리했기 때문에 문화에 깊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집단화를 통해 주부들은 쉬운 강좌를 들어야 하고, 어려운 것은 회피한다는 선입관에서 출발한 모델링이 문제라는 것. 그런 이유로 주부들 대부분 브런치 문화를 그룹 혹은 커플로 즐기려는 경향이 크다고 임 교수는 전한다.
“브런치는 주부들에게 황금 시간이에요. 물론 그 시간에 모자란 잠을 자고 밀린 집안일을 하며 동네 엄마들이랑 수다를 떨 수 있어요.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혼자 학습할 수 있는 브런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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