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할머니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 들어볼래?
‘한 마리 참새가 날아와 머리 위에 앉았다. 딱딱하다. 딱딱하다. 돌멩이 같다. 짹짹짹짹…’
머리엔 귀여운 참새 한 마리를 오려 붙이고 조금은 둔한 허리춤을 누구에게 뒤질 새라 열심히 흔드는 사람들. 오늘 만나볼 주인공들이다.
평균 나이 68세, 혹 무엇을 시작하거나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라 생각했다면 이들의 코웃음을 듣게 될 것이다. 봄 새싹 같은 생동 에너지를 가득 채워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 구연 연습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분당구 금곡동에 문을 연 시니어타운 ‘더 헤리티지’의 입주민 12명이 모여 만든 동화구연 동호회. 마음은 언제나 푸르다는 뜻의 ‘푸른 향기’로 이름을 정하고 매주 토요일 마다 열정을 담아내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도 조금은 서툰 손놀림으로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며 동화대본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제가 여기에 입주하기 전에는 일산에서 10년 동안 동화구연 강사를 했어요. 유치원에 봉사활동을 나가며 정말 재미있고 바쁘게 살았는데 이곳에 오니 그동안 해왔던 일이 단절되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동호회 회원을 모집했고 지금은 12명의 회원들에게 동화구연의 노하우를 가르치며 다시 기대와 흥분으로 살고 있어요.” 이곳에서 가장 활발한 동호회로 자리잡기까지 역할을 톡톡히 했던 회장 이영자(71)씨의 소회다.
입주해 몇 달은 적응하느라 바빴고 동호회를 구성해 첫 만남을 가졌던 것이 지난 1월. 매주 토요일 마다 알록달록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며 손 유희 인형과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들고 실감나게 구연 연습을 하는 것이 회원들의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12명의 회원들이 만드는 푸른 동심의 세계
“이곳에 영화, 탁구, 골프 등 9개의 동호회가 있어요. 저도 여러 개의 동호회 활동을 병행하느라 바쁘지만 이곳 동화구연 동호회가 가장 활성화 되어 잘 운영되고 있지요. 모두 열성적인 회장인 덕분입니다.” 4월부터 유치원에 동화 구연 강사로 활동을 앞두고 있는 회원 이순자(65)씨의 말이다.
동호회 맏언니격인 김금순(79)씨도 활동 감회가 남다르다. “예전부터 좋아하는 취미가 책 읽기였어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동호회에 들어오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모아 놨잖아요. ‘이 나이에 뭘~’이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재미있게 배워서 유치원 꼬맹이들을 만나야죠. 하하”
부천 소재 유치원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종희(72)씨는 “회원으로 등록한 지는 얼마 안됐지만 오리고 붙이고 양손을 많이 쓰고 동화 대본도 자주 읽어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 같다”며 “열심히 배워 재미난 이야기꾼 이사장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푸른 향기’회원들은 동화 구연을 하면서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 같아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제 유치원에 가면 얼굴에 주름이 많은 할머니인데도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고 반겨줘요. 일종의 코드가 맞는다고 할까요?”
요즘 보바스 어린이병동 봉사를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인 회원들. 초록이 짙어지는 6월쯤엔 가족과 지인들을 모아 공연을 열 계획에 벌써부터 마음이 부풀어 있다.
“푸른 향기라는 이름처럼 마음만은 언제나 푸르게 살고 싶어요. 서툰 솜씨지만 서툰 대로 열심히 연습해 어린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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