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 맹인 안마사로 더 익숙해진 사람들이 바로 시각장애인 안마사다. 그런데 이젠 그 말마저도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 장애인의 생존권과 결부된 시각장애인 안마사 위헌 결정은 그들을 더욱 더 어두운 골방으로 밀어 넣는 결과가 되었다.
“열다섯 까지는 저도 다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머리가 아프고 구토증세가 있더니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시골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호전 되지 않아서 종합병원으로 옮겼지만 치료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후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거구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삼철(40)의 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일까. 아니면 지난 세월 속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다 발효시킨 것일까. 시각장애라는 힘든 시간을 견뎌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얼굴이 맑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앞을 볼 수 없게 되면서 바로 서울에 있는 한빛 맹학교에 진학하여 점자를 읽히고 안마일을 배웠다는 김삼철씨.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안마일 뿐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제한이 장애를 갖지 않은 국민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재 위헌 결정이 나오면서 어려움이 따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간간히 들어오던 안마일도 요즘에는 뚝 끊긴 상태라고 한다.
“일을 하고 싶은데 기초생활수급자는 일을 못하게 되어 있어요. 저의 가족은 현재 국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데 막상 가족 중에서 한사람이라도 일을 하게 되면 수급비가 줄어든다고 해요. 그래서 설사 일이 있다고 해도 맘 놓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아예 많이 벌지 못할 것 같으면 밖에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으라는 말인 것 같아요”
장애인들의 생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초생활수급법이 오히려 이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놓은 상황이다. 김씨의 또 다른 고민은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지만 막상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게 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온 가족의 부양 부담을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어린 자녀가 다 떠맡아야 하므로 너무 힘든 일이라고. 그래서 주변에서는 하는 수 없이 제 자식을 호적에서 빼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자기 자식을 호적에 뺄 수 있겠냐는 고민을 털어놨다. 그래도 그는 삶을 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니고 열다섯 살까지는 세상을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저는 열다섯까지 세상을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또 E.T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아요. 처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면 하늘의 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을 텐데 저는 알잖아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제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아내의 얼굴보다는 아이들의 얼굴이 더 보고 싶어요.”
네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가꿔가고 있는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것이 희망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사람이었다.
조용숙 리포터 whdydtnr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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