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가족은 부러움의 대상?

잦은 이사, 얇아지는 통장, 자녀교육 어려움 3중고 겪어

지역내일 2010-04-14
대사 부임을 명령받으면 해당 외교관은 우리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는다. ‘국가원수를 대신해 업무를 수행하는 특명전권대사’라는 문서를 받는 절차다. 정부는 이 신임장 수여식 행사에 반드시 배우자가 참석토록 하고 있다. 배우자도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외교의 임무를 받아 부임하는 만큼 책임을 다하라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책임을 부여하는 만큼 권리도 다양할까.
외교관 가족의 생활은 겉보기처럼 화려하지 않다. 우리 외교관은 의무적으로 선진-후진국을 교차근무토록 하고 있다. 소위 ‘냉탕온탕’ 발령이다. 2~3년마다 한번씩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새로운 곳으로 발령이 난다. “잦은 외국근무로 주변의 경조사를 놓치다보니 정작 내가 큰 일을 치를 때 청첩장·부고를 돌릴 사람이 없더라”는 어느 외교관의 토로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부임 2~3일을 앞두고 날벼락처럼 발령이 들이닥치면 이삿짐과 가족은 남겨둔 채 외교관 혼자 임지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남겨진 배우자가 젖먹이를 업고 헌집 처분에서 새집 구입까지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 이사비용(이전비)이 전액 지원되는 것도 아니다. 주택임차료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치안과 교육문제를 알면서도 외곽으로 쫓겨갈 수밖에 없다.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직원들은 서울 한남동 빌라촌에 살지만 카자흐스탄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흐루시초프 시절에 지어진 60년대 아파트에 산다. 그래서 우리 외교관들은 삼성, LG 등 대기업 해외 주재원의 후한 복지혜택을 부러워한다.
외교관이 재외공관에 근무하게 되면 그 부인과 가족에게도 ‘외교관 여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이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따라 외교관과 그 가족의 신분보호를 위해서일뿐 외교관 여권이 주는 특혜란 많지 않다. 면세구입이 사실상 유일한 혜택인데 정작 지출이 가장 많은 생필품은 면세가 안 된다. 우리 외교부의 경우 배우자와 27세 미만의 미혼 자녀에게만 외교관 여권을 부여하고 있다. 직계존속(부모)의 경우 생활력이 없다는 증명을 해야만 근무지에 동행할 수 있다.
자녀교육은 외교관들이 갖는 최대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좋은 학교에 다니며 어려서부터 외국경험을 쌓는다’는 부러움의 대상은 극히 일부에만 해당된다. 잦은 환경변화로 지적·정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외교관 자녀들이 많다. 심지어 자폐 등 질환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특례입학제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쉽게 대학보내기’의 장점도 사실상 없어졌다. 학비는 70%까지만 지원되기 때문에 2명 이상 자녀를 둔 경우 빚을 지기도 한다.
부부가 외교관일 경우엔 생이별의 아픔까지 감수해야 한다. 외교부에는 현재 7쌍의 부부 외교관이 있다. 하지만 이 중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김원수-박은하 커플이 유일하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 업무수행을 잘 하도록 김원수 특별보좌관을 파견하면서 취해진 예외적인 조치다. 우리나라 재외공관의 70%가 3~4인으로 구성된 ‘소인수공관’이고 보면 비슷한 또래의 부부 외교관을 한 대사관에 근무할 만큼의 인원 배분이 되지가 않는다.
한때 외교관은 외국인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장관의 허가도 받아야 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외교관만큼은 예외였던 것. 이 규정은 1995년 없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직업으로서의 여성 외교관 매력은 꽤 높아졌지만 결혼시장의 사정은 다르다. 여성 외교관의 결혼중매회사 회원등록비가 남성 외교관의 10배라는 우스개소리마저 나올 정도다. 지난 70년간 미국에서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공관장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은 모두 111명. 이 가운데 77%가 미혼이라고 ‘외교이야기(최병구 노르웨이 대사 지음)’ 책은 밝히고 있다. 우리라고 같은 상황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사명감과 애국심만 강조하기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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