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참 바쁩니다. 학교 갔다 학원 다녀오면 벌써 한밤중인데, 피곤해도 자지 못하고 또다시 숙제와 공부. 가족과 저녁 한 끼 먹기도 힘든 이런 생활은 초등학생부터 시작됩니다. 공부를 우선순위로 두는, 맘껏 뛰놀지도 못하는 교육 현실에 엄마는 아이들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니 아이들의 생활력이 점점 떨어집니다. 자기 방 청소, 준비물 챙기는 일도 다 엄마 몫으로 넘기는 아이들. ‘머리에 든 건 많아도 생활 능력 지수는 빵점’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걱정스럽지만 해법이 없는 것 같아 엄마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해법은 뭘까요?
Research 01
시험 점수는 백점, 생활 지수는 빵점?!
시은이는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3 학생이다. 학교 내신 성적은 상위 3퍼센트 이내. 학교생활도 성실하고 성격 좋다는 칭찬도 많이 듣는다. 꼼꼼하고 야무진 성격이라 주변에선 ‘엄친딸’ 소리를 하며 부러워할 정도. 그러나 그건 속내 모르는 이야기라고 엄마 김미숙(43·서울 용산구 한남동)씨는 말한다.
“교복도 옷걸이에 똑바로 못 걸어요. 좌우가 대칭되게 걸어야 반듯하잖아요. 항상 삐뚤게 걸어놔요. 처음엔 성의가 없어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직도 가위질을 똑바로 못 하고, 이불도 각 잡아서 못 개요. 꼭짓점끼리 딱 맞아야 반듯하게 개진다는 것을 모르더라고요. 공부 가르치듯이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해보라고 했더니 그제야 하더라고요.” 일화는 또 있다. 텝스 시험 처음 보러 간 날, 시험지 싸놓은 비닐을 뜯지 못해 쩔쩔맸단다. 뒤에 앉은 언니가 보다 못해 비닐을 뜯어줘서 시험을 봤다는 것. 시험지가 빈틈없이 싸여 있어 뜯기 어렵긴 했지만 샤프 같은 것으로 가장자리에 틈을 내서 찢으면 되는데 그걸 못 했다는 소리에 김씨는 내 아이가 바본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Research 02
하고 싶은 것 많지만 혼자서는 못 해
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는 6학년 아들. 뭐라고 연설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연설문을 써달라고 했다. 엄마 정지원(46·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회장 선거에 나가는 이유에 대해 본인의 생각대로 조리 있게 말하라고 조언했는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조리 있는 것인지 모른다며 무조건 써달라고 조르더라는 것.
“연설문 쓸 능력이 안 되면 선거 나가지 말라고 했더니 울고불고 난리더라고요. 하고 싶은데 엄마가 못 하게 한다는 거예요. 어이없지만 도와줬죠. 나 혼자 다 해주는 건 아니다 싶어 아이와 함께 연설문 쓰고 연습시켜서 회장이 됐어요.” 아이는 그다음엔 전교 임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전교 임원 선거 준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벽보용 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 연설문도 시간 맞춰 써야 했다. 선거용 피켓도 필요했다. 할 것이 많은데 아들은 엄마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과 벽보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풀을 덕지덕지 발라놔서 포스터를 지저분하게 만들고, 피켓을 만들라고 했더니 두꺼운 종이를 자르지 못해 끙끙대더라고. 전교 부회장에 당선된 날, 뛸 듯이 좋아하는 아들을 보고 정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하려는 마음이 있고 시키는 대로 노력하니 그것도 칭찬할 일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전 5남매 중 넷째였어요. 원하는 일이라면 주위 도움 없이 스스로 하도록 배워왔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 혼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할 줄 모르고 욕심만 내는 것 같아 자식을 잘못 키운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는 정씨다.
Research 03
열다섯 살에 라면도 못 끓이는 딸, 어쩌죠?
김선경(48·경기 성남시 정자동)씨는 두 딸의 엄마다. 큰딸이 열다섯 살, 작은딸이 열두 살이다.
딸이 둘이고 클 만큼 커서 설거지도 도울 것 같지만 그 반대다. 한번은 급한 일이 있어 저녁 챙겨 먹으라 하고 외출했다 돌아오니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난장판. 라면 스프가 곳곳에 떨어져 있고 달걀은 가스레인지에 반은 풀어져 있고, 식탁은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했다. 화가 난 김씨, 열다섯 살이나 돼서 라면 하나 제대로 못 끓이고 뒷정리도 못 하냐고 소리쳤더니 큰딸이 “물이 뜨거워서 수증기 때문에 스프를 제대로 넣을 수 없었고, 달걀은 갑자기 팍 깨져서 밖으로 흘러버렸으며, 식탁은 깨끗이 닦은 건데”라고 하더란다. 물이 뜨거우면 불을 좀 줄여서 한 김 빠진 뒤 스프를 넣으면 되고 라면 스프를 찬물에 풀어도 된다, 달걀은 젓가락으로 위를 살짝 깬 뒤 반 가르면 되고 행주는 한 번 닦고 빨아서 다시 닦아야 식탁이 깨끗해지는 것이라고 일러주자 두 딸이 모두 “아!” 하더란다.
Research 04
귀할수록 가르칠 것은 가르치자
젓가락질 못 하면 상놈 취급 받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세대도 밥상에서 손등 맞으며 젓가락질을 배웠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한 반 열에 여섯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 한다고 한다. 젓가락질 시험을 보는 초등학교가 있다니 현실은 못 따라오고 필요성만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도 된다. 젓가락질 못 하는 것쯤 흉이 아닌 시대가 머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캔과 페트병 음료수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 병따개로 음료수 병 따는 일도 어려워한단다. 해보지 않아서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 교사인 김희숙씨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너무 기본적인 일조차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1학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이 우유팩 열어주는 일이었다고. 몇 번 해보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서 우유팩 여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며 숟가락질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친척들과 왕래가 적으니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으면 친척 호칭도 제대로 모르고, 조부모와 같이 살지 않으니 제대로 된 문안 인사도 모른다. 전자 기기 조작법은 능숙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일은 서툰 것이 요즘 아이들의 특징이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엄마가 식사 준비하면 당연히 부엌일 거들어야 하는 줄 알았고,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해야 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요즘 애들은 공부가 바쁘다는 이유로 다 차려놓으면 나와서 먹잖아요. 그것도 같이 먹을 시간이나 있나요?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고 가정교육이 예절 교육의 근본이라는데, 시간 있으면 한숨이라도 더 재우고 싶고 차라리 내가 하지 싶은 생각이 드니 제가 아이를 망치는 걸까요?” 유현미씨의 말이다.
‘어떻게 키워야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일까?’ 하는 고민은 부모라면 누구나 하겠지만, 그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식이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아간다면, 스스로 문제 해결하며 보람 있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내 자식이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면 더 늦기 전에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일선 교사의 조언이다.
유병아 리포터 bayou84@naver.com
일러스트 홍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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