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약의 의미와 단주

지역내일 2010-04-02

마음이 급하면 귀가 얇아진다고 했던가? 심각한 질환에 걸려 상태가 급한 환자는 무엇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맹목적으로 따라 하려 한다. 그렇지만 알코올중독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단주를 해야겠다고 정신과를 찾고서도, 치료 지침을 처음부터 흔쾌히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약을 복용하는 데에 특히 이런 행동 특성이 두드러진다.


치료 조언을 따르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이다. 입원이 꼭 필요해도 어느 정도의 강제나 강요가 없는 한 바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장 기본인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 투약 문제이다.


알코올의존은 매우 위험한 치명적인 난치성 질환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약을 꺼린다. 지난날 훨씬 많은 해악을 끼친 술을 마실 때는 의식조차 하지 않다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해로울까 봐 안 먹겠다고 버틴다. 큰 병이라면서도, 약의 힘을 빌려 자신의 감정과 정신을 다독거리는 것은 나약하고 못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약으로 드는 비용을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로 받아들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처음에는 약을 거부한다. 의지로 끊겠다고 하다가 결국에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고 나서야 투약을 받아들인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약효가 있는 화학적 물질을 몸에 투입한다는 약리적 생리적 현상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더 중요한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의미가 들어있다. 약리 작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알코올의존이라는 병은 내과가 아니라 정신과적 병이다. 그래서 이 병으로부터 회복은 약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약에 대한 태도에서 자신의 병과 회복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정신적 질환으로부터 회복은 병과 치료 나아가서는 삶에 대한 태도 교정이 근본적이고, 바로 이점이 투약에 대한 자세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처방에 따라 약을 잘 먹는다는 것은 회복을 위한 기본적인 바른 태도이다. 이는 반드시 약리적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중병으로부터 회복에 합당한 겸허한 자세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자세라야 하루하루 삶이 회복적이다.


투약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이런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취약성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항복해야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는 가족이나 치료진과 완강하게 승부를 거는 듯한 부질없는 고집에서 자유롭다. 다른 질환과 달리 이 병은 그래야만 회복의 시동이 걸리는 그런 유별난 중병인 것이다.


 

 



신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w.alj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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