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를 변화시키는 ‘행동하는 시니어’

지역내일 2010-03-15

전 세계가 지구 촌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대가 된지 오래다. 얼마 전 방송되어 인기를 모았던 ‘아마존의 눈물’처럼 우리는 안방에 앉아 지구 반대편 밀림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구글어스를 켜면 가보고 싶은 나라의 작은 마을 지붕 색까지 확인할 수 있다. 지구촌의 작은 변화를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만큼이나 우리가 발을 담구고 있는 지역의 가치를 확인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들도 많아지고 있다. 작은 먹을거리 하나부터 지역 토산물을 이용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의 유래와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재조명 하려는 노력들이다.
특히 이런 지역 발견의 중심에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에도 열정과 에너지를 담아 행동으로 옮기는 시니어들이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청소 봉사를 해 주는 일명 ‘청소 할머니’부터 이름 없던 동네 야산에 숨겨진 이름을 찾아주고 작은 능선 사이에 핀 들꽃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발견해 내는 백발의 젊은 시니어가 있다. 또 황폐해지는 지역 환경을 지키고 복원해 사라져가는 반딧불이를 아이들에게 되찾아 준 이들도 있다.
힘겨운 투병의 고통 속에 있는 지역 환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평온을 전해주는 호스피스 봉사대까지… 모두 지역을 움직이는 작지만 큰 불씨들이다.
특히 이들이 소중한 것은 요란한 구호와 헛헛한 약속이 아니라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행해 지역에 변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애써 겸양을 보이는 이들의 열정이 모여 지역을 움직이는 커다란 파동이 되고 있다. 비록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얼굴엔 세월이 흔적이 묻어나지만 심장은 누구보다 젊고 뜨거운 지역의 맹 파워 시니어들을 만나보았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분당 맹산자연학교 자원 활동가 정운채씨
“반딧불이를 보려면 맹산으로 오려므나”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팍팍 불빛을 내는 것은 파파리반딧불이고 불빛이 조금 약하고 느리게 움직이면 애반딧불이에요.”
분당의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 요즘은 깊은 산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반딧불이를 직접 관찰 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반딧불이를 찾아주고 환경의 가치를 전해주는 전직 공무원 출신의 숲 해설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직에서 은퇴한 후 2006년부터 맹산자연학교에서 자원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분당환경시민의 모임 정운채(67·야탑동) 공동 대표가 그 주인공.
“처음엔 시민단체라 해서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었는데 맹산에 왔다가 우연히 자원 활동가 모집공고를 보고 교육을 받게 됐어요. 지역의 환경을 살리기 위해 묵묵히 땀과 노력을 기울이는 좋은 단체더라고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봄에는 버들피리를 불었고 여름엔 밤하늘을 반짝이며 수놓는 반딧불이를 만났다. 가을이 오면 벼베기를 했고 겨울이면 아이들과 볼이 빨개지도록 논 썰매를 탔다.
“한번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형설지공’하게 반딧불이를 잡아달라는 거에요. 채로 몇 마리 잡아다 살펴보고 다시 날려주자 했더니 아쉬워하더라고요. 하하”
작년 여름엔 반딧불이가 밤하늘의 별만큼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로 지역 환경이 살아나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는 정 대표.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때론 오해를 사기도 했다. 지금은 맹 협조를 퍼붓는 아내지만 한때는 밤만 되면 반딧불이를 만나러 집을 나서니 미심쩍어 했다는 웃지 못 할 일화다.
그렇게 은퇴 후 지역에서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해오던 그에게 2년 전 또 한 번의 중책이 주어졌다. 분당환경시민의 모임 공동 대표라는 임명장을 받게 된 것.
자원 활동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의 감투라 생각하고 더 신명나게 의욕을 불태운다는 정 대표는 작년 말 성남시자원봉사센터의 개인 우수봉사자로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분당은 도심에서 찾기 어려운 쾌적한 환경을 간직한 곳이에요. 이런 환경을 잘 살려 후대에 물려주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답니다. 올해도 봄이 익으면 앵두불기, 감꽃 목걸이 등 잊혀 가는 우리 놀이들을 아이들과 한껏 해 볼 랍니다.”
권미영 리포터

#용인의 산과 들꽃 재발견, 산수(山水)꾼 이제학씨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산이 내게로 오더라

용인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많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산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동네 뒷산으로 부르는 산부터 이름의 유래를 알기 어려운 산, 부르는 이름과 붙여진 이름 이 따로따로인 산 등등. 그러나 이런 용인의 이름 없는 산과 들에 아름다운 이름을 찾아주고 숨을 불어 넣어 준 사람이 있다. 작은 뒷산과 골짜기에 꼭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고 숨어 있던 본래 이름을 찾아내 멋스럽게 불러주는 산수(山水)꾼 이제학(61·용인 김량장동)씨다. 용인의 웬만한 산과 들에는 이 사람의 눈길과 발길이 수없이 닿았을 만큼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역을 소개해온 향토 산악인.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다닌다 하여 사람들에겐 ‘백두’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용인의 산하를 재발견하게 된 계기 또한 남다르다.
“15년도 더 전이죠. 한 지인에게 ‘지세가 좋은 용인의 산 곳곳에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놓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쇠말뚝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어요.”
민족정기를 끊는 쇠말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용인의 크고 작은 산들을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샅샅이 찾았지만 문제의 쇠말뚝은 없었다. 대신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했던 지역의 산과 들, 꽃들을 재발견하게 되었고 그 아름다움을 알려야한다는 새로운 중요 임무가 생겼다. 지역 신문에 ‘용인의 산’이란 주제로 산과 능선, 지류를 소개하는 연재를 실었다. 그것을 재밌게 읽은 소설가 박범신씨의 권유로 94년엔 ‘용인의 산수이야기’라는 책도 낼 수 있었다. 책에는 발과 가슴으로 찾아낸 하천, 고개, 약수터 등 용인의 구석구석과 그곳에 얽힌 이야기부터 지역의 역사, 지형, 전설들을 속속들이 담아냈다. 또 그런 노력들이 모여 성산일출, 조비산, 가실벚꽃 등 ‘용인 8경’을 선정하는 위원으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머리에는 백발이 내렸지만 2007년부터는 인터넷에 ‘용인의 산수이야기’라는 개인 블로그를 오픈했다. 현재까지 용인의 산행 코스와 지류를 소개하고 들꽃들을 사진과 시로 담아 지역을 알리고 발견하는 일에 열정을 담아내고 있다.
“광교산(수지구)과 석성산(동백), 시궁산(이동면)과 오봉산(양지면)등 용인에도 좋은 산이 많습니다. 한번쯤 지역을 다시 둘러보세요.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곳곳에서 반겨줄 겁니다. 하하.”
권미영 리포터

#성남호스피스센터 자원 봉사팀 조정기ㆍ이병옥씨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이 보람과 만족을 줬어요

성남시 호스피스센터에는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지역의 말기 암 환자들의 편안한 임종을 도와드린 호스피스 시니어 팀이 있다.
바로 조정기(69·야탑동), 이병옥 (64·야탑동)씨가 그들로 지역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고 있는 2인 1조 팀이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유방암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옆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도와드리지 못하고 가셨는데 회한이 남아 제가 3개월은 눈물바람으로 지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호스피스 교육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등록을 하게 됐지요.” 이병옥씨의 시작 동기다. 이 씨의 권유로 함께 교육을 받은 조정기씨와  2인1조가 되어 지역에 봉사를 나간 것이 벌써 강산이 변할 세월.
임종을 앞둔 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터. 하지만 옆에서 손발 쓰다듬고  말벗을 해드리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이 좋아하고 편안해 지는 걸 목격했단다. 
“보바스병원에 근육암을 앓던 42살의 젊은 엄마가 있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이 있었는데 아이를 두고 가야하는걸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많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틈만 나면 찾아가 이야기 들어주고 마사지 해주고 마음을 읽어주었는데 마지막에는 아주 편안하고 고요히 임종을 맞았죠.”
조정기, 이병옥씨는 호스피스활동이 결코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진작에 그만 두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저희가 찾아가면 그렇게 반가워하고 좋아들 하세요. 아주 작은 도움을 드리고 훨씬 많은 보람을 얻어 오는 거죠. 환자분들이 먹고 싶은 것은 어떻게는 구해서 갖다드리면 그 행복해하는 모습에 저희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니 안할래야 안 할 수 가 없죠.”
이들은 봉사를 오래하기 위해선 내 자신이 편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의 협조가 없으면 절대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 마음이 잘 맞는 짝꿍이 있다면 서로 도와가며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구요. 앞으로도 저희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보람과 만족을 주는 이 일을 계속 해나갈 겁니다.”
권미영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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