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계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특성화를 선택한 학교들이 주목 받고 있다. 진로와 연계한 조기 전공 교육의 경쟁력을 발판 삼아 웬만한 인문계고 못지않은 높은 대학 진학률을 기록한 학교들은 이미 특목고 부럽지 않은 유명세를 얻고 있다.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지원이 늘면서 입학 문턱 또한 높아지는 추세이다.
그러나 특성화고 학생들의 주요 대학 진학 통로였던 ‘전문계고 동일계열 특별전형’의 관문을 뚫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대입의 지름길’이라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선택해선 곤란한 것 또한 사실이다.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맞춤형 교육으로 정체성 찾기에 한창인 특성화고 바로보기, 졸업생과 교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분화된 맞춤형 전공 수업으로 진로 구체화
종전 전문계에서 특성화로 변신을 시도한 이들 학교들의 장점은 대학에서 배우는 전문 교과 과정을 선이수할 수 있다는 점. IT 분야만 하더라도 정보통신과, 웹운영과, 테크노경영과, 멀티미디어과 등으로 세분화돼 있고, 미디어 분야 안에서도 인터넷미디어과, 영상미디어과, 미디어디자인과 등으로 나뉘는 식이어서 자신의 적성과 관심 분야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 선린인터넷고 정미숙 교사는 “웹콘텐츠와 게임 개발동아리, 청소년 창업 동아리 등 각 과마다 3~4개씩 있는 전문동아리를 통해 관심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활동이 가능하고, 선배들의 네트워크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실제 대학에 진학한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이 전공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이러한 교육 과정 덕분. 획일적으로 인문계고에 진학하기보다 자신의 소질을 일찌감치 계발하고 싶은 우수 학생들이 원거리 통학을 마다하지 않고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배원석 학교기업팀장은 “방송 PD가 꿈이던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편집 작업도 해보고, 실제 직업 현장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이전까지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자신의 진로를 고등학교 3년 동안 적극적으로 탐색해 구체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여기에 서울대를 제외한 대학들이 정원 외로 선발하는 전문계고 특별전형 확대와 2005학년도 입시부터 수능에 전문계고 교과목 중심의 직업탐구 영역이 개설된 것도 특성화고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배경. 2010학년도 입시에서 직업탐구 영역에 응시한 학생은 총 4만3천225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7천705명 증가했고, 2011학년도 입시에서는 총 159개 대학이 전문계고 특별전형으로 1만2천205명을 선발한다.
대학 진학률만큼 입학 문턱도 높아
특성화고에 쏠리는 관심을 입증하듯 인기 학교들의 입학 문턱은 종전 전문계고에 대한 편견을 깰 만큼 상당히 높은 수준.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일반전형의 경우 합격생 평균 내신이 선린인터넷고는 13퍼센트,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13퍼센트, 서울관광고는 25퍼센트대다. 2008년 23퍼센트였던 합격생 평균 내신이 특성화 첫 해 18퍼센트, 올해 16퍼센트로 상승한 해성국제컨벤션고 정영택 교사는 “방학 기간 동안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리더십 캠프를 개최하고, 교사들이 직접 2개 학교씩 맡아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 우수 자원들이 많이 몰린 것 같다”며 “실제 외고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컨벤션영어과에 상당수 지원했다. 특성화고 전환 후 지원 학생들의 내신 성적 상승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입학생 성적 상승과 맞물린 상위권 대학 합격자 수의 증가도 눈에 띈다. 연세대와 고려대 등이 전문계고 특별전형에서 요구하는 수능 최저학력기준 2~3개 영역 2등급을 충족시키는 학생들이 늘었기 때문.
선린인터넷고의 경우 올해 고려대 5명, 연세대 7명, 성균관대 31명, 이화여대 4명, 한양대 8명, 서강대 4명, 경희대 8명, 중앙대 9명이 합격했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도 고려대 3명, 연세대 1명, 성균관대 4명, 이화여대 5명, 경희대 8명, 중앙대 3명이 진학했으며, 해성국제컨벤션고는 고려대 1명, 연세대 6명, 성균관대 7명, 이화여대 6명, 한양대 2명, 서강대 2명, 경희대 10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거뒀다.
수능 자격 기준 강화, 지원자 수 증가…
관문 뚫기 만만찮아
그러나 이 같은 수치만 놓고 특성화고 진학이 대입에서 인문계고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은 섣부르다. 82단위 이상 이수해야 하는 전문 교과목에 비해 국·영·수 등 수능에 필요한 공통교과목 수업 일수가 인문계보다 적기 때문에 실제 특성화고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전공 수업과 수능을 둘 다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고 토로한다. 선린인터넷고 장광영 교사는 “동일계열로 진학했을 때 인문계고에 비해 높은 성취도를 보일 수 있는 전제 조건은 교육과정의 절반 이상인 전문 교과목에 대한 소질과 적성, 국·영·수 공통 교과에 대한 기본 성적을 갖추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또 상위권 대학의 전문계고 특별전형 자격 기준이 인문계 학생들보다 완화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원자 수가 점차 늘고 응시생들의 성적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자격 기준을 충족했더라도 합격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유의해야 할 부분. 서울관광고 박흥서 교사는 “상위권대 선발 인원이 워낙 적은데다 작년까지 2개 영역 2등급만 충족해도 지원 가능했던 성균관대가 2011학년부터 4개 영역 중 3개 영역 등급 합 6 이내로 변경하는 등 대학들이 요구하는 자격 기준이 계속 올라가는 추세”라며 “중위권 대학의 경우는 전문계와 인문계 응시생들의 성적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계고 특별전형을 통한 대학 진학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실제 학교 정보공개 사이트인 ‘학교 알리미(www.schoolinfo.
go.kr )’에서 검색해보면 아직까지 취업률이나 전문대 진학률의 비중이 훨씬 높은 특성화고가 더 많다.
대학 연계 교육 필요한 분야까지 지원
혜택 줄까 우려
현재 5퍼센트인 전문계고 특별전형을 2013학년도부터 3퍼센트로 줄이는 등 전문계고의 직업 교육 기능 강화를 강조하고 나선 정부 발표도 진학 희망자가 80퍼센트를 넘는 특성화고 입장에서는 고민되는 부분이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김병만 교감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영상이나 디자인, IT 등은 고등학교 단계부터 기초 전문 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심화된 전문 교육을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분야”라며 “진학보다 취업 전망이 높은 분야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겠지만, 대학 연계 교육이 필요한 분야에 대한 혜택마저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특성화고의 성공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던 전 선린인터넷고 천광호 교장(현 서울영상고 교장)은 “특성화의 본질은 기능 훈련이 아닌 개인의 성장을 위해 소질과 적성, 꿈이 일치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인문계와 전문계의 이분법적 접근보다 자기주도적으로 인생을 설계, 선택 가능한 다양한 트랙을 제시하는 것이 21세기형 교육”이라고 보는 입장.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진로직업교육과 관계자는 “마이스터고 예산 지원 등으로 다른 전문계고들이 심리적 박탈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종전 진학률이 높았던 학교들에 불리한 정책을 펴는 건 아니다. 사회적 여건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에 선취업 후진학의 길을 열어주려는 정책들을 우선 기획하고 있다”며 “우수 학교들의 높은 진학률에 대한 홍보가 이뤄지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일러스트 홍종현
사진 이의종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