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에서 학원, 학교에 이르기까지 ‘자기주도’라는 단어가 교육시장의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특목고/외고 입시전형에 있어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강조하는 요강이 발표된 이후 그 정도는 훨씬 더 빈번해진 경향을 보인다. 한편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 ‘공부의 신’을 통해 공부의 의미와 자기극복의 과정의 중요성을 실감한 학부모와 자녀들이 ‘자기주도적’ 학습방법을 찾게 되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이렇게 드라마로 인해 공부는 ‘하면 된다’ 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기주도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자기주도 학습을 숙제처럼 해선 안 된다
공부 동기가 있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학습 매니저와 최고의 과목별 선생님들, 상담선생님까지 붙여 교과과정을 무시하고 개인교습에 가까운 합숙과 고된 학습을 하는 공부환경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인가. 교육열이 뜨거운 강남에서조차 이러한 공부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러한 공부환경에서 선생님들은 최고의 학습법을 제공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한다.
학습방법에 대해 “왜?”는 용납되지 않으며 철저한 준수만이 요구된다. 학생들은 이러한 최고의 방법에 어떻게 적응해 자신에게 체화하고 어떻게 커리큘럼에 맞춰 따라갈 수 있는가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 그 결과 진짜 아이들은 ‘공신’ 내지는 공부 기계가 되었다.
하지만 공신이 된 학생들이 보여주는 자기주도적 인식의 힘이나 문제해결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임을 짐작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픈 동물 때문에 봉구가 수능 시험일에 지각할 뻔한 사건과 천하대 지원가능 성적임에도 자신의 꿈인 춤을 위해 지원 자체를 포기한 찬두의 사례가 그것이다(찬두는 천하대에 합격하고도 춤을 위해 천하대를 포기하는 모습이 지원도 안 하고 천하대를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나와 남들에게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게 된 ‘공신’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될 사랑, 취업, 가정생활 등 숱한 영역의 달인이 될 그릇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많은 자기주도 학습 솔루션에서는 저마다 “자기주도를 위한 최적의 방법, 최고의 노하우!”라고 얘기하며 각각의 성향, 능력, 스타일이 다른 학생들에게 ‘여기에 맞추라’고 한다. 계획하는 법,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법 등을 습관화하도록 요구한다. 좀 더 나은 공부법, 공부관리법이기에 아이들은 순간 따르지만 결코 그것들이 쉽게 내 것이 될 리 만무하다. 내 마음과 힘으로 선택하고 고민해서 내 공부 방식에 맞춰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주도 학습방법조차 숙제처럼 ‘해야 될 일’같은 느낌이라면 절대 자기주도적 방법이 될 수 없다.
학습의 경영자로 키우자
학습도 ‘경영’이 되어야 한다. 경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걸 결정한다.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 진정한 경영자가 될 수 없다. 경영자가 하는 가장 큰 일은 선택, 결정 그리고 책임지는 일이다.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말은 ‘학습의 경영’과 같은 말이다. 내 수준이 현재 어느 정도인지, 각 과목과 단원, 학습방식에서 어떤 부분이 강하고 약한지, 언제 학습의욕이 떨어지고 언제 몰입이 잘 되며 이럴 때는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해 스스로 조정하고 평가하고 선택/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학습법이라 하더라도 ‘주어진 방법’이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가는 방법’보다 좋을 수는 없다. 결국 ‘자율성’ 없고 ‘생각과 고민’이 없이는 진정한 자기주도 학습도 없다.
여기서 어떤 부모들은 자율이 자녀의 방종이 되고 안 그래도 잘 안 되는 공부와 담을 쌓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지금 그러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도록 놔두었을 경우 제대로 해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때는 질문을 해보자. 이번 학기의 목표는 무엇인지, 어떤 점이 전략적으로 집중할 부분인지, 무엇이 잘 안 되고 있고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강요나 채근이 아니라 답할 수 있는 수준부터 같이 논의해 본다는 생각으로 하자.
경영자는 답을 아는 사람이다. 학습을 경영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답을 준비해 놓는다. 왜 공부를 안 하는지를 물어볼 게 아니라 먼저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찾아나갈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과 답을 통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자기주도 학습의 기본 태도인 것이다.
우경천 수석코치
루드베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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