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약속한 봉사는 꼭 지킨다’는 신조로 20년 이상 봉사활동 이어와
하루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조규권씨. 그의 일주일 스케줄은 모두 봉사활동으로 빼곡하다. 그의 나이 일흔하고도 중반을 바라보는 노령이다. 하지만 주름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아직도 이팔청춘. 불로장생의 묘약이 바로 ‘봉사’에 있다고 말하는 그는 날개 없는 천사가 분명하다. 그는 또 봉사단체 사이에서는 ‘날쌘 가위손’으로 통한다. 미용 가위만 손에 쥐었다하면 수혜자의 마음에 꼭 드는 마술같은 스타일을 연출해 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젊은 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우연히 배운 이발 기술이 평생 봉사활동의 밑천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봉사할 때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는 이미 봉사에 만성 중독됐다.
원조 사회복지사
그의 봉사활동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 초반 광주에 사회복지협회가 구성될 무렵이다. 협회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7~8가지 봉사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사회복지사 원조인 셈이다. “당시 영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생활고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협회 회원들이 봉사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목욕, 생활 안내, 이미용 서비스 등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어요.”
‘나’보다도 ‘남’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자, 제때 끼니를 못 챙겨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양곡을 걷어서 직접 밥을 지어주는 ‘사랑의 식당’ 봉사활동에 합류하게 됐다. “여러 사회단체들이 이 사업에 적극 동참해 쌀과 반찬 등을 지원했다. 지금의 사회복지의 근원이 되는 나눔 실천 운동이었다. 당시 획기적인 봉사활동 규모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양곡을 나눠줬던 사람들도 점점 십시일반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으로 이어져 봉사의 영역이 확대됐다. 노인 일자리 사업도 조 씨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벽보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일자리에 노인들을 참여시켜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수익금으로 사랑의 식당에 김치를 담아주는 등 조 씨는 오직 봉사활동에만 전념했다. 그의 봉사 정신은 입소문으로 퍼져 그 공로가 인정받았다. 보건복지부상, KBS 대상, 광주경찰서 등에서 굵직한 포상을 수차례나 받았다. 당시 사랑의 식당은 영세민들에게 든든한 보험과 같았다.
봉사는 가족 행복의 원동력
요즘은 봉사단체도 많아지고 정부나 단체 지원 절차도 수월해져 남을 도울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다. 그래서 굳이 그가 나서지 않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원군이 많았다. 조 씨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다시 찾았다. 바로 이미용 봉사다. 한 가지 봉사로 여러 곳을 다니다보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요양원, 병원, 장애우 시설, 시골마을 등 봉사단 회원들과 일주일 내내 돌아다닐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실 봉사정신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봉사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하는 것이 내 생활신조다. 어떤 대가나 바라고 대충하려면 안하는 것만 못하다.”
봉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낄 때 가장 가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도 분명 봉사의 대가는 있었다. “한 때는 돈이 없어 가계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힘들 때가 있었다. 그 때 당장이라도 봉사활동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막노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좋은 일을 해서였을까.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가족의 행복만큼은 언제나 충만했다. 그는 그것을 봉사의 대가로 해석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어려운 시절에는 봉사활동에 대한 후원도 은근히 기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돈 앞에 욕심이 없는 사람 있겠는가. 수고한 대가가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아 조심스럽다.”
봉사 인증 시스템 제도화됐으면
봉사활동 덕분에 건강하다고 믿는 그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봉사 수혜자들의 진정어린 감사인사가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말이 봉사지, 가는 곳마다 미용을 할 수 있는 시설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태반인데 불평이 쏟아질 법도하다. “의자 하나 달랑 놓고 어두운 등불 밑에서 허리를 굽히고 하루 종일 서서 머리를 만지면 허리가 부서질 듯 아프다. 하지만 봉사는 분위기와 말과 행동 모두가 봉사여야 한다. 불평을 토로하면 그것은 봉사가 아니다.”
그런 그가 2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해오면서 봉사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픈 작은 바람이 있다. “봉사 인증시스템이 정착됐으면 한다. 65세 이상이 되면 그 인증을 수혜 받을 수 있게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됐으면 한다. 더불어 제2의 봉사자인 가족에게도 행정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봉사자의 아름다운 얼과 마음과 손길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의: 062-351-2114
김영희 리포터 beauty02k@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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