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처음처럼, 한 번 맺은 인연은 거스를 수 없어
그를 만난 날은 3.1절 오후였다. 광주 3.1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를 하고 온 운동복 차림이었다. 부슬비가 간간히 왔지만 마라톤은 예정대로 치러졌고 그는 당당히 코스를 완주했다. 1999년, 전주지검장 시절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그는 지역의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단지 머리가 좋고 공부만을 잘해서 이 자리에 올라선 것은 결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피나는 노력이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의 후일담임을 알아야 한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달리는 일은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달린다. 내 몸에 일할 수 있는 특별한 에너지를 무한히 제공하려는 것이다”고 자신의 의지를 설명한다.
운동과 독서로 탄탄한 체력과 의지를 다진 그는 넘치는 에너지를 ‘사회운동’에 쏟는다. 2004년에는 (사)한국효도회에서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 어르신들을 섬기는 자세가 남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예의바른 큰절과 무의탁 어르신들을 공경하며 모신 결과였으며, 실제로 그는 어린 나이에도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목욕탕으로 화장실로 직접 시중을 들며 모시며 다녔다한다.
동서화합과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
“스스로 몸을 낮추고 스스로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여러 가지 겸손에 대한 원칙을 정하면서 스스로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유로 28살에 검사로 임관해 26년 동안을 법무부, 대검, 각지의 검찰청 지청장, 법무연수원장까지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었다”고 그는 살아온 시간들을 말한다.
그는 광주서중을 나와 서울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경기고 안에서 교우관계는 그가 평생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무언으로 알려주었다. 바로 동서화합의 일이다. 그는 고교시절 만났던 경북지역의 교우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2004년에는 경북중고등학교 재경동창회의 명예회원1호가 되었다. 경북중고등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화합의 장을 열어가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북지역의 명문고로서 어떤 면에서는 무척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경북중고가 그들과는 무관한 호남인을 명예회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은 무척이나 남다른 인연이 있었음을 알려준다”고 웃는다. 첫 인연은 2002년 3월 전주에서 있었던 경북고와 전주고의 교류행사에 당시 전주지검장이었던 그가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이것을 물꼬로 이후에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성공기원 하프 마라톤 대회에 직접 참가해 ‘활기찬 대구’라는 마크가 인쇄된 티셔츠를60여 참가 검찰직원들에게 입혀 뛰게 했으며, 광주고검 차장 시절에는 영호남 학생교류 사업에 따라 전남대에 유학 온 경북대생 110여명과 울산대10명을 위한 환영의 밤을 열기도 했다.
아이티난민 돕기 발 빠른 행보로 전개
‘광주.전남발전 정책포럼’의 공동대표인 그는 아이티 난민 돕기 성금모금 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광주.전남발전 정책포럼’은 광주.전남지역을 선진 복지 사회로 만들기 위한 정책 검증과 개발을 선도하며 시민사회의 자기 혁신과 상생의 윤리의식의 제고를 통해 ‘광주.전남 지역의 발전을 목적으로 2008년 11월 창립하여 활동 중이다.
아이티 난민 돕기를 진행한 그의 이웃돕기 실천에 대한 생각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봉사가 누구를 위해 한시적으로 보여주는 일회성 행사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기존의 어느 사회단체보다 발 빠르게 지진 참사로 고생하고 있는 아이티 돕기 프로그램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적극적인 행사에 나선 것은 행복은 결코 물질적인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자원봉사의 가장 큰 최대의 행복이다”
이런 기본적인 배려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그가 실천하고 있는 여타의 일에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시설 청소년을 위한 정기적인 페스티발, 노인, 장애인,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의료 서비스 및 법률상담, 장애인 돕기 행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말한다.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능력과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30%정도일 뿐이다. 원동력은 각자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과 신뢰와 사랑이다. 오십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은 중요한 일들을 챙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에 쫓겨 살아가는 것보다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도리를 하며 인연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정말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개개인이 행복해야 한다.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개인의 행복이라는 전제조건 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문의 : 010-4624-8331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