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에 대한 이런저런 상담을 하다보면 보람을 느낄 때가 많지만 안타까울 때도 있고 마구 화가 날 때도 있다. 근심과 걱정을 가득 안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언제 기쁨의 날이 오리라는 메시지를 전해 줄 때, 절망과 좌절에 빠져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언제 어둠이 걷히고 서광이 비치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찾아 줄 때, 그리고 시방 사귀는 남녀가 궁합이 맞아서 잘 살 것이란 판단을 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덩달아 즐겁고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죽도록 사랑하건만 도저히 맞지 않으므로 헤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한 상책이라며 이별을 권고할 때는 안타깝다.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너무나 고단하여 그만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찾아 온 사람에게 한 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을 때 안타깝다. 절로 한숨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절망의 메시지는 전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 저렇게 노력해보라고 조언한다.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날 때는 어떤 경우인가. 과거 엉터리 혹은 사이비 역술인한테서 들은 바를 꺼내며 필자의 설명에 태클을 걸 때,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 희망의 나라로 가는 빛을 찾아주었는데도 그 빛의 가치를 길거리서 파는 핫도그 값쯤으로 인식할 때이다. 진실로 화가 나는 경우는 궁합이 나쁘니 결혼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가 파경을 맞은 후 다시 찾아온 사람을 볼 때이다. 파경은 혼자만의 불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보면 첫째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불행해진다고 누누이 강조한 필자의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를 당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화가 나고, 둘째 정통명리학에 근거한 궁합법을 미신쯤으로 여기고 우습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가 난다. 셋째 끝내 두 사람의 불행을 확인한 후에 오는 안타까움과 속상함 때문에 화가 치민다. 이 화가 진정한 화요 인간적인 화이다. 더욱이 이혼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할 그 사람의 고통을 생각하면 궁합을 외면한 처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3년 전 30대 후반의 여성이 40대의 전문직 남자와의 궁합을 의뢰했었다. 당시 필자는 두 사람은 음양오행의 조화가 맞지 않다, 성격이 맞지 않다, 성적 조화가 맞지 않다, 남자에게 돈복이 없다, 남자는 여자의 고집과 강단성을 부채질한다. 남자에게 여자는 도움이 되지만 여자에게 남자는 짐이 되는 존재이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 조급해 하지 말고 더 좋은 남자를 찾아보라고 했었다. 최근 이 여성이 다시 찾아왔기에 소식을 물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그럴까 싶어 결혼을 했고, 남자가 잔잔하고 유치해서 싸운 끝에 결국 갈라섰다며 눈물을 보였다. 애통했다. 택일을 잘 해서 결혼했으면 흉을 덜 수 있는데 왜 그냥 했느냐고 나무랐지만 부질없는 말이었다.
“부모님께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 드리고 싶어 결혼했는데….”라는 여자가 아직도 그 남자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으므로 2년 후 재결합을 시도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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