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문화 사라져야 한다(2) 만인의 만인을 위한 접대공화국

이권 이익 좇아 너도 나도 기름칠

지역내일 2001-08-08 (수정 2001-08-09 오후 3:42:38)
“한국에서 왕처럼 살고 있소”
지난 5월 미국계 투자회사인 칼라일 그룹의 한 20대 교포직원이 “한국에서 온갖 향응을 받으며 왕처럼 살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외국 친구들에게 보내 국제적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이 직원은“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대형 아파트에서 거의 매일 골프와 저녁 술대접을 받고 있다”“포르쉐로 출근하고 매일 평균 3명의 여자에게서 밤을 같이 보내자는 제의를 받고 있다”며 자신의 제왕적 호사생활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IMF 이후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외자를 유치하려는 상황에서 돈줄을 쥔 외국계 펀드들이 집중 로비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공정한 룰보다 향응과 접대를 무기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한국판 접대문화를 앞세우다 ‘한국은 봉의 나라’라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한국사회에서 접대는 업무의 연장이자 생활의 일부이다. 특히 계층과 계급을 초월해 이권을 겨냥해 벌어지는 온갖 접대는 일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위 기름칠을 해야 돌아가는 한국사회는 ‘만인의 만인을 위한 접대 공화국’이 된 셈이다.
국세청이 지난해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96∼98년 3년 동안 기밀비, 교제비, 사례금 등을 포함, 접대비로 썼다고 신고한 돈은 모두 9조9898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액수와 기업인이 아닌 민원인이 공무원을 접대하는 비용을 제외시켰다는 점에서 실제 접대비는 훨씬 많다.
이처럼 매년 3조원이 넘는 돈이 접대비로 흘러들어가다 보니 기업경영은 물론 우리 경제구조도 왜곡시킬만큼 막대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막대한 접대비를 조성하려고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 투명한 기업활동을 할 수 없고 국가는 국가대로 독버섯처럼 번식한 유흥 향락산업의 각종 폐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로 올해 경찰청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5월말 현재 유흥주점은 모두 2만1214개로 95년 1만2909개에 비해 6년 동안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남자 750명당 1개의 룸살롱이 있는 셈이다.
특히 벤처기업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는 지하층이나 1층에 하나씩 룸살롱이 없는 빌딩이 없는 실정이다.
전국에서 가장 큰 룸살롱으로 알려진 서울 모 호텔 D 룸살롱의 경우 방만 무려 92개에 달하고 고용된 접대부만 300∼4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바이어가 김포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출국할 때까지 풀 코스로 접대하는 것이 당시 국내 수출기업의 생존전략이었다. 바로 이 접대문화가 지금 사회 각 분야로 퍼져 부패와 비리의 원천이 됐다. 386 당선자들의 광주 술판사건이나 시민사회단체 명망가들의 잇단 성추문 등이 여기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과 정치인만 접대받는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다. 백화점 매장에서 좋은 매장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의류회사 직원은 백화점 직원에게 접대해야 되고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업체 직원은 대기업 담당자를 상대로 향응을 제공해야 한다.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인은 은행 등 금융회사 직원의 기분을 맞춰야 하고 심지어 룸살롱 사장도 세무공무원, 경찰, 조직폭력배를 접대해야 한다. 이권과 이익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접대가 뒤따르는 사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고침> 7일자 시리즈 기사 가운데 ‘모 지검의 경우 골프부킹 민원을 제때 처리해주지 않은 관내 골프장 10여곳을 환경문제로 단속’ 부분은 확인이 안된 사실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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