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었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던 아내 수진(손예진 분)은 유난히 건망증이 심하다. 편의점에 가면 산 물건과 지갑까지 놓고 나오기 일쑤다. 또 도시락을 쌀 때는 반찬 대신 밥만 2개 넣어주고, 매일 가는 집조차 찾지 못하고 헤맨다. 남편 철수(정우성 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수진의 증세는 점점 심각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병원에서 수진은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 발생하는 병으로 알려진 치매가 최근 60~70대가 아닌 30~40대 여성들을 위협하고 있다. 노인성 치매보다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여서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KBS 2TV 인간극장의 ‘사랑해 기억해’ 편에 소개됐던 초로기 치매환자인 김나연씨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실제 인물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후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중 남편 오창석씨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식사를 하던 김씨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기억을 잃었고 진단결과는 치매였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김씨의 병세는 깊어져 옷을 입거나 볼펜 뚜껑을 닫는 것조차 힘들어졌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갔다. 이제는 남편과 두 딸의 이름을 기억해내기도 어렵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녀는 가족들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곁을 떠나 요양병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치매는 병명이라기보다 우리 대뇌의 기능장애로 초래되는 다양한 증상을 말한다. 기억력을 포함해 다른 인지기능 중 한 가지 이상의 장애가 있을 때, 즉 연령과 상관없이 인간이 가지는 기억력, 주의력, 계산력, 언어기능, 시공간능력, 판단력 및 전두엽 집행기능에 장애가 생긴 상태를 일컫는다.
단순한 건망증으로 시작
이제 치매는 더 이상 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젊다고 해서 치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다. 알츠하이머병은 20세기 초 알츠하이머라는 독일의사가 자신의 환자 중 51세의 한 젊은 부인이 기억력과 지남력(시간·공간적 파악력)장애 발생 5년 후 심한 치매상태에 빠져 사망하자 부검을 통해 세상에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이는 지능의 기능저하로 인하여 일어나는 치매(후천성 뇌상해로 인한 지능저하)상태로 노인성치매보다 이른 나이에 급격하고 강하게 발생하며 특히 여성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건망증이 심한 정도로 나타나지만 차츰 기억력, 이해력, 판단력, 계산력 등이 둔해지면서 치매의 증상이 뚜렷해진다. 알츠하이머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독성단백이 뇌에 축적되어 뇌세포가 파괴되고 뇌가 위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개발된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와 같은 항치매 약제가 증상완화에 도움이 되며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또는 항정신제 등이 치료약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기억력, 자체는 손상되지 않는 전두 측두엽 치매도 있다. 일반적인 치매와 달리 초기에는 기억력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치매인 줄 모르고 지나쳐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정자(49)씨는 겉으로 봐서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전두 측두엽 치매를 앓고 있다. 처음 발견한 것은 2년 전으로 기억력 상실로부터 오는 일반 치매환자들과는 달리 이씨는 잘 웃지도 않고 성격이 예민해지는 등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는 세대
그러나 최근 10~20대 젊은이들도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디지털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단순 기억력이 감퇴하는 ‘디지털 치매’를 앓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디지털기기가 사용됨에 따라서 우리 생활이 많이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젊은이들의 기억력은 오히려 감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치매는 휴대전화, PDA(개인휴대 정보단말기), 내비게이션, 계산기 등 휴먼인터페이스에 익숙한 현대인이 기억력이나 계산력, 방향감각 등을 상실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가족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간단한 산수계산에도 쩔쩔매는 모습이 모두 디지털 치매의 일종이다.
효과적인 치매치료를 위해서는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있을 때는 즉시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해야 한다. 치료 가능한 치매는 신경계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 적절히 치료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치료 불가능으로 분류되던 퇴행성 치매도 최근에는 분자 생물학의 발달로 새로운 신약이 개발돼 치매진행을 지연시킨다.
서초구보건소 건강지원팀 주형순 팀장은 “치매환자는 평소에 청결을 유지하고 감기에 조심하며 무엇보다도 가족의 따뜻한 보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간호가 불가능할 때에는 사회복지시설 등을 찾아 상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며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생활요법으로는 항산화제와 비타민 투여, 금연, 금주 등의 절제된 건강생활과 각종 성인병 및 신경질환의 예방 그리고 폐경이후의 여성에게는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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